토토, 나랑 같이 살래.

by 권길주


에린은 진수를 보자, 강진에 두고 온 그리움들이 어디선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자기의 마음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 그리움의 본체는 또 엄마였다. 그러나 엄마에게 최대한 냉정하게 말하는 게 에린은 습관적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아직도 에린에게 감정적일 때가 많았기에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는 게 엄마와의 사이에는 에린에게 늘 유리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늘 다른 사람에게도 버려질 수 있다는 경계심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에린은 엄마 때문에 알게 되었다. 남자에게 버림받았던 에린의 엄마는 늘 사람을 경계부터 했다. 어쩌면 엄마는 언제가 딸인 에린도 자신을 버리고 떠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에린에게 경계의 감정을 심각하게 나타낼 때가 있었다. 더 이상은 접근하면 안 되는 경계의 선이 엄마에게는 어딘가에 쳐져있었다.


에린은 진수를 봤다. 그가 골목에 서 있는 것을 그러나 에린도 엄마처럼 세상을 경계하고, 남자를 경계하는 습관이 있는 걸까, 갑자기 나타난 진수가 반가웠지만, 내색은 하기 싫었다.


"너 강아지 안 키우잖아, "


진수가 에린의 품에 있는 강아지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응, 내 거는 아니고, 요 앞에서 잠깐 길 잃은 거 같아서 간식 좀 사주려고 데리고 나갔다 왔어. 어제부터 혼자 골목에서 쪼그리고 있길래."


"너 유기견인줄 알고 데리고 다니다가 큰 오해받을 수도 있는데."


"괜찮아, 난 간식만 사주고 도로 여기 놓아주려고 했거든. 자, 토토야 여기 다시 앉아 있어라. 난 들어간다."


"응... 에린아, 이거 받아. 서울 입성 축하하고, 이사도 축하해. 멋지게 살아라."


"으흥, 고구마워. 너도 서울에서 잘 살아. 그리고 나 짐도 정리해야 해서 이만 들어갈게. 잘 가라."


에린이 평소처럼 조용히 말을 하지만 언제나 단호한 듯한 목소리가 진수는 살짝 서운했지만, 진수도 아직은 에린에게 그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에린에 눈을 다 맞추지 못하고 허둥댄다.

그때 갑자기 토토가 진수의 바지를 물어 뜯으며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에린은 깜짝 놀랐는데, 진수가 당황하지 않고 가만히 토토에 등을 쓰다듬으며 강아지를 달랬다.


"내 바지에서 무슨 냄새를 맡은 거지, 요 녀석 하하. 재미있는데, 우리 집 멍청이보단 네가 더 낮다."


진수는 자기가 키우는 다리가 짧은 강아지 이름을 멍청이라고 불렀는데, 월시코기 종류인 멍청이는 진수의 사랑을 듬뿍 받던 반려견인데, 진수는 멍청이를 서울로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데려오질 못해서 토토를 보자 반가움이 컸었다. 진수의 바지가 토토가 물어서 구멍이 난 것을 보자 에린이 당황한다.


"어, 괜찮아, 이 정도는 강아지 키우면 별일 다 있는데 뭘. 이건 네 개도 아니잖아. 미안할 것 없어."


에린이 진수에게 어쩌다 빚을 진 사람처럼 미안한 표정을 짓자 진수가 시원하게 입을 벌리고 웃었다.


"야, 인마 그렇게 미안하면 나 배고프거든 그 피자나 같이 먹던가, 아니면 나가서 나랑 밥 먹자.


에린은 진수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피자와 꽃을 들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물론 토토는 누구네 강아지인지 아직 주인을 알 수 없으니 그 골목에 두고 온 것이다. 맛있는 파스타를 사주겠다며 진수가 맛집 파스타를 검색해서 데리고 간 곳은 분위기도 좋았고, 파스타와 스파게티를 하는 곳이었는데, 진수가 두 가지를 다 먹을 수 있게 시켜서 에린은 정말 배가 부르도록 맛있게 먹고 나니 약간의 우울감이 사라질 정도였다. 에린은 이 저녁값은 자기가 낼 수 없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렇다고 진수에게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진수에게서 초등학교 때부터 사랑고백을 받아왔지만, 둘이 데이트는 처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강아지 때문에 첫 데이트를 한 셈이었다.


"너 아직도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은 시인...... 맞니?"


조명등 아래서 진수는 꽤 멋진 남학생으로 보여서 에린도 살짝 가슴이 설레었다. 그런데 에린에게 시인에 꿈을 물어볼 줄을 그녀도 몰랐기에 약간은 당황스러운 걸 에린이 참고 살짝 웃는다.


"왜, 너무 시시해서 그러니 내 꿈이."


"시시하긴 네가 시인이 되면 너무 근사할 것 같아서 그러지, 그런데 네가 시인이 되면 나랑 같이 안 놀까 봐 쪼금 걱정이 돼서 하하하"


진수가 약간은 짓궂게 그리고 약간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에린을 예리하게 쏘아봤다.


"시인이 되면 너랑 더 많이 놀아줄게 , 걱정 마, 원래 시인들은 별로 할 일이 없을 거 같아. 시 몇 줄 쓰려고 혼자서 산책이나 돌아다녀야 할 테니 말이다. 돈도 별로 없을 테고 그러니 그때는 너랑 많이 놀아줄게."


진수가 입을 다물지를 못하고 에린의 말에 감격한 듯이 입을 벌리자, 에린도 더 재미있게 진수를 골려주고 싶어서 둘은 약간의 장난도 하면서 처음으로 데이트를 즐겼다.


에린은 진수랑 있는 이 시간이 느리게 가길 바라는 마음이 자기 안에 있는 걸 느끼고는 얼른 핸드폰으로 시간을 봤다.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진수에게서 더 많은 무엇인가를 찾아낼 것 같은 이상한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를 좋아하게 되는 어떤 것들이라면 그녀는 지금은 자신의 마음을 거기까지는 건네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에린은 자신의 삶에 혼란을 가져오는 연애는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항상 다짐했기에 진수가 친구이기만을 바랬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그 좁은 강진에서 함께 학교를 다닌 동창생이 아닌가, 그녀는 진수가 부잣집 아들이건 의대생이건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동창생으로 자기와의 끈이 이어지기만 바랬던 것이었다.


피자와 꽃다발을 진수가 다시 들고 골목길에 들어서자, 아직도 토토는 에린의 원룸 앞에서 쪼그리고 떨면서 봄바람의 찬 기운을 이기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추위에 떨어서인지 토토가 먹은 토사물을 약간 골목 바닥에 토해놨다. 에린은 아무래도 토토가 자기랑 같이 살아야 할 존재라는 느낌이 그 순간 들었다.


에린을 보자 토토가 먼저 달려왔다. 에린이 토토를 번쩍 안아 올리자, 토토가 그녀의 품에 쏙 하고 안기는 것이 아닌가. 따뜻하고 물렁한 토토의 살과 털들이 에린의 품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들어오는 것 같아서 그녀의 마음도 따스해졌다.


"토토, 너 나랑 같이 살래. 네 주인은 이제 널 버린 거 맞는 거 같다."


진수는 에린이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은 아닌 것 같아서 약간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는 한 마디를 건넸다.


"에린아, 너 원룸에서 강아지 못 키울 텐데. 시끄럽다고 주변에서 뭐라고 할 수도 있고. 학교 가면 강아지가 혼자서 잘 있을까 걱정되네, 걱정돼."


에린은 진수에게 강아지를 데리고 가야 하니 피자와 꽃을 집안에 까지 넣어줘야 한다고 말하고 앞장서 걸어갔다. 에린은 이삿짐을 하나도 정리하지 않은 방을 진수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수의 마음엔 유명한 클로드 모네의 정물화 중에서 '봄꽃'을 보는 것처럼 에린의 방에서 봄의 향기와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듯이 에린이 참 아름다운 시를 쓸 거라는 느낌이 들자, 그는 에린의 검고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한 번쯤 손끝으로 살짝 스쳐보고 싶은 충동을 그 순간 느꼈다.


그때 진수옆에서 강아지를 안고 걸어가던 에린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나풀거리며 진수의 얼굴을 감쌌다. 그때 진수는 에린이 전국고교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았던 시가 떠올랐다.





제목. 어느 정원사의 꿈



언어가 뿌리내지 못한 정원에는 내가 이름도 모르는 정원사들이 살았다.

봄이 되어 살구꽃이 피던 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는 내 정원에 꽃들을 캐내고

그 대신 커다란 나무들만 심어 놓았다.


마음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자라서 내 창가에 이상하고 어두운 그늘을 드리울때

그리고 낙엽이 떨어져 내 정원에서 썩어갈때

나는 그 나무를 송두리채 뽑아 버리려 했다. 그러나 내 정원에 정원사들은

내가 하려고 하는 그 일을 말리고 또 말렸다.


언어의 폭력이란 말처럼 그 정원사들이 내게는 아주 심한 욕설까지 퍼부어서

나는 머리에 혹이 나고 종양이 생기고 결국엔 암까지 생겨버렸는데,

왜 내 정원에서 그 정원사들은 나이테만 늘리는 나무들을 뽑아주지 않는가.


그러다 비가 흠뻑 오던 봄, 그 나른한 오후에 비를 맞은 나무들이 다시 자라서

내 언어에 새 이름들을 달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에 매달려 있었다.


연두빛으로 온 너에 이름은 '비밀' 이였고,

그리고 '고백'이였고,

그리고 맨 나중에 도착한 언어는 '용서'라는 잎사귀였다.


비밀도 좋았고, 고백도 좋았지만, 용서는 내가 용서하지 않은 언어인데,

너는 왜 거기 연두빛 잎사귀 사이로 봄햇살 찰랑이며 당당하게 붙어 있니.


나는 내 언어의 정원사들에게 다시 물으련다.

내가 언제쯤이면 내 삶에서 '용서'라는 이 잎사귀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서

꽃이 피어나게 해야하는지를........


살구꽃이 내 엄마의 젖꼭지처럼 부드럽고 안타깝게 메말라서

나는 이제 먹을 수도 없는 그 젖 한방울에 내 심장을 키우고,

다시 사랑을 키워서 내 엄마에게 젖을 물려주신 외할머니와 그 증조외할머니까지

그리고 고조외할머니까지 그리워하며 내 언어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꿀수 있을지


............


오늘도 나는 언어의 정원사들이 퇴근 한 밤에

내 깊고 어두운 창가에서 살구꽃 피는 환한 밤을 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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