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 전기불이 나갔다. 처음 이사 온 날인데 전기가 나가다니 에린은 멍하니 누워서 왜 전기가 나갔는지 모른 채 핸드폰만 쳐다본다. 그녀는 대학 1학년 첫날에 전기가 나간 방에서 잠을 잘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핸드폰 액정도 얼만 남지 않은 것을 보니 새벽이 오기 전에 핸드폰도 꺼질 것 같았지만 에린은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녀의 엄마는 초저녁에 잠들었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며칠에 한 번 꼴로 새벽에 꽃시장을 가는 엄마에게 초저녁 잠은 늘 꿈잠이다.
작은 원룸문을 열고 나가니 햇살이 원룸 앞에서 들어올락 말락 꾸물거리는 낯선 손님처럼 그녀를 맞는다. 봄을 맞은 신촌에 원룸 골목길은 이삿짐을 싣고 바삐 움직이는 트럭들로 좁은 골목이 꽉 차있다.
꺼진 핸드폰을 들고 우선 토스토라도 먹으려고 에린이 골목을 몇 걸음 걸었을 때였다. 희고 꼬물꼬물 거리는 것이 그녀의 발에 살짝 밟혔다. 핸드폰을 쳐다보느라 골목 귀퉁이에서 잠들어 있던 하얀 강아지가 발끝에 살짝 밟힌 것인데, 강아지는 어찌나 놀랬는지 에린을 겁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한참을 깽깽거린다.
에린이 강아지를 달래주려고 다가갔지만, 강아지는 두려움에 찬 눈길로 한 걸음 뒤에 서서 짖는 게 아닌가. 어젯밤에 정전이 된 자취방에서 혼자 자던 낯설고 두렵고 겁이 났던 순간보다 더 난감한 순간이란 생각이 들어서 에린은 강아지를 피해서 빠르게 골목을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신촌로터리에서 맘에 드는 햄버거 집에 들어가 햄버거를 하나 사서 콜라와 함께 먹으며 겨우 한숨을 길게 쉬었다. 정전이 된 길고 긴 하룻밤이 가고 이사 온 첫날 아침에 처음 먹는 음식이었다. 햄버거에 든 토마토와 계란 프라이 그리고 상추들이 그녀의 코에 익숙한 냄새를 풍기자 그녀는 겨우 안심이 되는 듯 다시 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에린은 자신의 강진에 있는 엄마가 이 시간 이면 화분을 들락날락 내놓으며 유리문을 닦고 화분들에게 물을 주고 있는 것이 풍경사진처럼 햄버거 가게 유리창에 찍혔다.
나 에린은 강진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던 여고생이었고, 난 우리나라에서 제일 센 여대에 국문학과에 입학을 한 것이다. 그리고 또 소원이던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엄마는 내 나이에 비해서 너무 늙어버렸다.
내가 스무 살인데 엄마 나이가 육십이라니.
창피하다. 난 늙어버린 엄마가. 내 친구들은 엄마가 이제 겨우 마흔두 살인 엄마도 있고, 제일 나이 많은 엄마가 오십인데, 내 엄마는 육십이라니 난 엄마가 나이가 많다고 맨날 투덜댔다. 더구나 꽃집을 오래 해서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다리까지 아프다고 맨날 끙끙거리는 소리가 난 너무 듣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난 엄마를 피해서 서울로 대학을 올라온 것이다. 엄마는 강진에서 꽃집을 한다. 그 꽃집에서 꽃을 팔아서 나를 이십 년 동안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그래도 내 엄마는 대학을 나오고 다산 정약용을 좋아하는 꽤 똑똑한 여자다. 하지만 난 내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부끄러워 학교에서 친구들과 집에 올 때면 엄마의 꽃집을 멀리서 돌아서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런 못된 나에게도 존경하는 시인이 있다. 바로 강진이 고향인 시인 김영랑이다. 나는 눈을 감아도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는 언제든 줄줄 외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늘 섭섭해 울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그랬다. 엄마와 살던 강진에서 나는 김영랑 시인의 고향집인 문학관에 가는 걸 좋아했고, 엄마는 다산 선생이 유배지에서 공부하던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 다산 초당에 가는 걸 좋아했다. 나는 영랑 시인처럼 되고 싶은 꿈에 그가 살던 초가집에서 시인의 향취를 맡길 좋아했기에 그 집의 근처에 있는 언덕에 오래된 동백나무와 대나숲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실학자인 다산을 좋아하듯이 내게 국문과 교수가 되길 원하고 난 김영랑 시인을 좋아하던 대로 시인이 되길 꿈꾼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강진은 늘 아름다웠다. 먼지도 별로 없고, 봄이면 금곡사 벚꽃 삼십 리 길에 핀 밤 벚꽃 길은 내게는 아버지가 없는 설움을 달래준 길이였다. 그리고 강진에 있는 섬들이 내게는 다 사랑스러운 시어같이 그곳에 살던 나를 시인이 되고 싶게 하는 묘한 마력의 고향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한테 들었던 김영랑 시인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그날부터 세계 최고의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고, 내 시는 반드시 전 세계인이 읽을 거라는 이상한 자부심도 있으니 국문과 교수가 되길 원하시는 내 엄마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에린은 혼자서 강진에 엄마와 자신의 꿈을 생각하다 말고 좀 전에 골목에서 자기 발에 살짝 밟혔던 강아지 생각이 났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있다면 뭘 사다 줄까, 에린은 어쩐지 정전이 된 원룸에 상태보다 강아지가 더 궁금해져 빠른 걸음으로 원룸촌이 빼꼭한 신촌의 골목길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5평 원룸이 에린이 이 년 동안 살아야 할 공간인데, 그곳은 그 시간까지 정전이 되어서 냉장고도 불이 들어오질 않았고, 심지어 방에 형광등도 나간 것이다. 에린은 꽃집을 해서 엄마가 한 달에 버는 돈이 삼백도 안 될 때가 많아 신촌 근처에 편의점에 알바를 구하기로 했다. 방값 55만 원을 자기가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강진에서 고 3 겨울 동안 편의점 알바를 했던 경험으로 내일은 편의점에 알바를 구해야 한다.
에린은 잠깐 강진에서 같이 서울에 온 진수를 생각했다. 전남에서 늘 1등을 했던 진수는 같은 신촌에 있는 대학에 의대를 들어왔다. 진수의 아버지는 강진에서 대대로 제일 부잣집 아들이다. 진수는 에린에게 초등학교 6학년 때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었지만 에린은 그런 시시한 감정은 나에게는 말도 하지 말라고 그의 말을 자르고, 그 뒤 진수가 멀리 복도에서 보이면 에린은 그의 시선을 피하고 달아났다.
"엄마, 초등학교 6학년이 사랑을 아나?"
그것이 그때 에린이 진수에게 가진 의문이었고, 엄마에게 한 최초의 사랑이란 말에 의미를 푸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에린은 진수가 말한 것이 가벼운 농담이 아닌 것을 고 3 때까지 확인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지만, 에린은 연애는 절대로 하지 않을 계획이다. 엄마의 늦은 연애가 자기를 잘못 낳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에린은 실패한 엄마의 연애를 약간은 증오하면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신촌의 봄에는 에린이 처음 맛보는 긴장과 외로움과 돈이 사랑보다 훨씬 위에 있는 것 같은 물질만능주의가 느껴져서 에린은 잠깐 가슴이 꽉하고 막혔다. 그 이유는 스무 살 에린이 살아가기에는 신촌은 어쩐지 돈을 벌기도 힘들고, 돈이 없으면 서 있을 곳조차 없는 기괴한 장소처럼 느껴진 것이었다.
에린은 자기가 살아야 하는 골목을 들어서자, 김영랑 생가 언덕에 피어있던 탐스런 동백꽃과 늦은 봄에 모란꽃이 그리웠다. 강아지가 멀리서 하얀 털을 보이며 아직도 그곳에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 끝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에린의 원룸 문 앞이었다.
에린은 하얀 강아지에게 가질 못하고 가만히 그 골목에 그녀도 주저앉아서 핸드폰에 시를 썼다. 다행히 아직 핸드폰은 꺼지지 않았지만, 에린은 엄마에게 전화도 하지 않은 채 골목에 주저앉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