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 아저씨 2부.

21화. 기환이 쓴 '방개 아저씨' 소설이 영화화되다.

by 권길주



영화감독 박기환은 아내 차향숙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오랜 시간 방황을 했었다. 그는 아내가 떠나자, 세상을 떠돌며 살고 싶은 욕망을 뿌리치지 않고 자신의 삶의 굴레로 받아들이며 십 년이 넘도록 지구를 몇 바퀴는 돌아다녔다. 혼자서 세계 여행을 하면서 산 셈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글을 가지고 다시 영화 몇 편을 손에 쥐었다. 영화감독 박기환의 이름은 이미 세상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이름이었지만, 그 화려한 명성보다 값진 것은 사랑하는 한 여자였음을 기환은 아내가 죽고 나서야 깨달았다. 명성이나 이름은 있다가 없는 것이 되었지만, 한 번 이 세상을 떠난 아내라는 사람의 온기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의 방황은 생각보다 길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난 후유증을 세상을 여행하는 방식으로 기환은 자신을 달랬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것은 몇 편의 영화 대본과 영화에 대한 책을 내기 위한 원고들 그리고 영화의 명장면이 찍혔던 해외 여러 장소의 영화 촬영 현장 사진들이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쓴 영화 칼럼을 해외에서 찍은 유명 영화 촬영지와 함께 책을 발간했다. 박기환 감독의 유명세는 십여 년 동안 식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의 책은 발간하자마자, 날개 돋치듯이 팔려 나갔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다시 영화감독으로 영화계의 사람들에게 주목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박기환은 자신이 처음에 문단에 소설가로 등단해서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 '방개 아저씨 1. 2. 3부'를 영국을 여행하던 중에 시골마을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자신이 쓴 소설을 영화 대본으로 고쳐 쓴 것을 영화 기획사에 넘겼다. 그리고 기환은 십여 년 만에 방개가 살고 있는 아산에 찾아왔다.

이제는 주름진 얼굴에 촌부가 된 방개 아저씨의 늙고 구부정한 허리와 굵은 손마디를 보니 기환은 눈물이 흘렀다. 방개가 보는 기환도 이제는 오십 대 후반의 남자였으니 그도 젊은 날 이십 대에 서산의 비인 앞바다에서 자살을 시도하러 온 고시생이 아닌 중년의 중후한 남성이었다. 그도 이제는 더구나 아내마저 잃은 홀아비가 아닌가, 방개는 아내 차향숙을 잃고 세상을 떠돌다 온 기환이 가슴이 아파 그를 덥석 끓어 안으며 시커먼 얼굴에 눈물을 한 줌 뿌렸다.

"아저씨, 농사를 얼마나 열심히 지으셨으면 과수원이 이리도 멋있데요. 세상에 온 과수원 밭이 다 사과 배가 주렁주렁 달렸네요. 저 주황빛 단감들 봐요, 하늘에 주단을 깐 듯이 뷰티플 해요."

두 사람은 과수원 밭고랑 사이를 걸으며 지난 회포를 풀었다. 길고 긴 세월이 간 것이다. 방개도 풍파를 겪었고, 기환도 세월에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깊고 진한 인생의 맛과 같은 문학과 예술이 있었다. 방개는 기환에게 인생의 지게처럼 그에게 젊은 날 자신에게 기대고 글을 쓰게 해 준 은덕이 있는 사람이었고, 기환은 방개를 글이란 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스승과 같은 존재였기에

그들은 나이차이가 십여 년을 넘기는 차이가 있어도 형과 같기도 하고 부자 관계 같기도 하고 스승과 제자 같은 문우의 정도 있어서 그들의 관계는 언제 만나도 서로에게는 참 각별한 사이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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