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흙냄새
딸 조앤이 떠나고 엉가는 방개 아저씨와 '에덴 농장'에서 농부로 살았다. 방개 아저씨가 데리고 함께 살던 이십여 명의 청년들도 하나 둘 장가를 가고 도회지로 자신의 기술과 능력으로 살림을 차리며 떠나자 방개 아저씨는 혼자서 과수원일을 했었다. 필요할 때면 일꾼들을 사서 과수원에서 사과도 따고 복숭아도 땄지만, 그에게 이제 농사는 나이에 비해 너무나 과중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엉가는 틈틈이 팔을 걷고 방개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과수원 일을 도운 것인데, 엉가는 이제 화가로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는 흙을 만지는 농사가 자신을 더 편안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 이상했다. 보드라운 흙을 만지는 일이 자신에게 이토록 평안하고 순한 마음을 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마당에 화초를 가꿀 때는 그다지 깨닫지 못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조앤의 무덤가에 풀을 뽑던 날부터 그리고 과수원 고랑에 올라온 잡초들을 뽑아내면서부터 그녀는 흙이 주는 보드라움에 놀랐다. 그건 아크릴 물감이나 유화 물감에서 도저히 맡을 수 없는 흙만이 줄 수 있는 향기와 깊이가 다른 냄새였다. 엉가가 맡은 흙냄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다른 냄새였다. 봄에는 파릇한 새순들이 올라오고 꽃들이 피어나는 속에서 언 땅을 깨고 풀어내는 소녀의 볼 같은 흙의 향연이었고, 여름에는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뚫고 세찬 비바람에 밭고랑이 파일 때면 갈라진 땅은 처녀들의 목마름을 태우는 향내 같았고, 가을에 익어가는 과일들에서 나오는 과육의 향기와 먼 데서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는 아이 밴 여자의 뒤엉킨 마음처럼 흙먼지를 몰고 왔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땅속 깊이 언 땅들은 고뇌에 찬 늙은 아버지의 한숨의 소리처럼 땅은 그렇게 모든 것을 비우고 허허벌판이 되어서 과일나무들에게 갈라 터진 등을 받쳐주곤 했다.
엉가는 농사를 지으며 비로소 자신을 더 깊이 보았다. 그건 어떤 허세도 교만도 그리고 치장도 필요가 없는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한 사람의 정체였다. 땀과 먼지에 푸석한 머리 위에는 늘 모자가 씌워져 있었고, 얼굴은 예전의 세련되고 아름답던 엉가의 모습이 아닌 시골의 평범한 농부의 아내처럼 보이는 까맣게 피부가 그을린 촌스러운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그렇게 변한 외모에 전혀 불만스럽지가 않았고, 오히려 촌부와 같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다. 칠십 세가 넘어 버린 방개 아저씨의 구부정한 어깨와 쭈글거리는 얼굴에 비하면 자신은 그래도 아직은 젊고 이뻤지만, 자식을 앞세운 엄마로서는 이 모습도 왠지 하늘 아래서 부끄러울 때가 있다는 생각을 그녀는 가끔씩 거울을 보면서 했었다. 그건 자신도 모르게 어쩌다가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죄책감 같기도 했다. 굳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를 가끔씩 혼자서 끝없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는 예전에 유학생이었던 처녀 시절도 그리고 방황의 끝을 달리던 디자이너 시절도 그리고 아픈 딸 조앤을 위해 살았던 십오 년의 세월도 다 깎아내 버린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은 설사 새들이 다 떠나버고 아스라이 나무 끝에 매달려 있는 새의 빈 둥지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야 그 빈 둥지 안에서 자식을 다 떠나보낸 어미새처럼 홀로 그렇게 웅크리고 있는 것이 젊은 날 이국땅에서 조앤을 임신하고 죽음과 같은 시간을 보내던 때보다 그리고 아픈 조앤을 위해 하루하루를 조마조마하게 살던 때와 달리 조금은 더 평화로웠다.
철희는 붓을 내려놓고 농사에 온 힘을 쏟는 엉가를 바라보며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엉가를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을 삮히기라도 하듯이 젊을 때부터 더 오랜 시간 캔버스 앞에 앉아서 오로지 그림에만 목숨을 건 듯이 자신을 바쳤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서서히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대가의 대열에 들어가고 있었다. 철희는 엉가가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삶의 울타리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향한 욕심이나 욕망을 꺾은 지는 오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