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 아저씨 2부.

19화. 조앤의 장례식

by 권길주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한 번도 뛰지 못하고 조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조앤의 심장병은 손톱만 한 꽃잎들이 피었다가 지듯이 매년 아슬아슬 봄을 맞이했다. 그러나 하얀 사과꽃이 눈송이처럼 온 봄하늘을 하늘 거리며 과수원 흙바닥을 덮던 날, 조앤이 태어난 지 스무 해 되던 봄날에 결국은 아이는 엉가의 곁을 떠났다.

"하나님 여기까지 이 아이를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릴게요."

엉가는 조앤의 작은 무덤 앞에 십자가를 세워주고 혼자 저녁이 다 되도록 울고 있었다. 입술로는 다섯 살에 죽을 것만 같았던 조앤 앞에 엄마라는 이름으로 돌아와 십오 년을 함께 살았지만, 매일매일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조마조마한 세월을 살았다. 그래도 엉가는 조앤이 스무 살까지 살아 준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고마웠다. 하루도 빠짐없이 조앤이 아침을 눈을 뜨고 살아있다는 것에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던가. 엉가는 더 이상 조앤과 함께 하는 삶을 허락하지 않은 신을 원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로써 충분히 서로 행복했고, 아쉽고 슬픈 감정은 내려놓아야 세상을 떠난 조앤도 천국에서 평안할 것이라고 믿었다.

'에덴 농장 ' 뒷산에 조앤을 묻고 내려오는 엉가의 옆에는 방개 아저씨와 철희가 있었다. 이제 방개 아저씨는 머리가 하얗다 못해서 누렇게 변한 칠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었고, 엉가도 사십 중반을 넘긴 나이였고, 철희도 중년의 남자다운 체격으로 변해있었다.

그때 산중턱의 사잇길에 외제차 한 대가 숲사이에 숨어 있듯이 고요히 엎드려 있었다. 그곳에는 대기업 회장이 된 조승훈이 운전석 뒷자리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방개가 엉가 모르게 조앤의 죽음을 조승훈에게 알린 것이었다. 그러나 조앤의 장례식에는 나타나지 말아 달라는 방개아저씨의 부탁에 그도 승낙을 하고 왔지만, 자식의 무덤을 보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그의 감정을 끝 간 데 모르게 휘몰아쳤다. 조승훈은 엉가의 단호한 작별인사 후 단 한 번도 조앤을 만나러 오질 못했었다. 그러나 가끔씩 그도 그리움에 목이 메면 조앤이 다니는 학교 근처에 차를 세우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서울로 돌아가긴 했었는데, 자식이 떠나는 마지막도 지켜주지 못한 것이 견딜 수가 없는 고통으로 가슴을 찔렀다.

조승훈은 엉가가 철희의 부축을 받으며 산소에서 내려가는 보며 차를 서울로 돌렸다. 사랑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아야 하는 여자가 있고, 그가 책임져야 할 회사가 있는 곳으로 그는 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외로웠다. 거센 비바람 앞에서 혼자 몸을 맡기고 사는 나무처럼 그는 오늘처럼 커다란 가지가 부러져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엉가가 그림을 그리고 화가가 되어 사는 것도 알지만, 오늘만큼은 그녀를 꼭 한 번만이라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불처럼 일어났지만, 그는 그것마저도 자신을 꺾고 가야 하는 세상의 거목이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 수 없는 위치란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몰랐다.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한 아이의 아버지였지만, 그는 세상에서는 대기업의 회장일 뿐이었고, 표면적으로는 도덕적으로 엄격한 사람으로 포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폭풍처럼 쓰러지는 감정을 추스르며 조앤이 자신이 지어준 작은 집에서 마지막 날까지 살다 간 것에 위안을 얻었다. 더 많은 것을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 작고 예쁜 양옥집에서 엄마와 꽃밭을 가꾸고 학교를 다니며 엄마의 그림을 보고 살았을 그 아이의 짧은 생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긴 것이었다.

그리고 방개아저씨의 과수원에서 나오는 싱싱한 과일들을 따먹으며 살았을 그 아이를 생각하니 더 마음에 위안도 찾아왔다. 그가 생각하는 서울이나 미국에서의 병원 생활보다는 엉가가 선택한 이 시골에서의 생활이 어쩌면 조앤을 더 행복하게 살다가 가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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