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 아저씨 2부.

17화. 상처 입은 위로자

by 권길주


철희는 가끔씩 이젤과 물감을 메고 엉가가 있는 '에덴 농장'에 와서 그림을 그렸다. 철희는 온양에 '방개아저씨와 천사들의 집'에서 계속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엉가와는 자주는 만나질 못했지만, 갓 태어난 조앤을 처음부터 데리고 살았기에 조앤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있었다. 그는 어린 조앤이 정원에서 뛰어노는 모습이나 강아지 '몽구'를 데리고 노는 모습을 화폭에 담기도 하고 조앤에게 직접 그림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서천에서 살 때 뻥 쩍빨의 화가가 인정했듯이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났기도 했지만, 그가 얼마나 그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 엉가는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인간이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사랑하면 그 일에는 늘 놀라운 성과도 따르기 마련이란 것을 엉가는 철희의 그림에서도 깨달았다. 엉가는 한편으로는 철희가 그림을 가지고 이루어 가는 탁월한 실력에도 감탄을 하지만, 그가 소년 시절 부모도 없이 혼자서 떠돌며 탈선을 하던 그 철없던 소년에서 이제는 자기의 깊은 내면을 그림으로 성화시키는 것에 감탄을 했다. 그리고 그런 철희에 비해서 자신은 얼마나 타락한 인간으로 젊은 날을 살아왔는가에 대해 부끄러움에 철희 앞에서 얼굴을 못 들 지경이었다.


미국유학이라는 거창한 꿈, 세계적인 의상디자이너에 대한 황홀한 기대와 방개 아저씨와 모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선망을 저버리고 한 남자에게 빠져 유학 생활을 하고 그 결과 미혼모로 조앤을 낳고 그리고 이제는 그 아이는 깊은 병이 들어서 철희의 그림 속 모델이 된 자신을 보면 엉가는 어디 깊은 산속에라도 혼자 들어가 살고 싶을 지경이었다. 인간이 부끄러움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죄가 드러났을 때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엉가도 자신의 죄를 숨기고 서울에서 대기업의 디자인실에서 자신의 명패가 놓인 책상 앞에서 일할 때만 해도 자신이 그렇게 수치스러운 죄인이란 생각은 하질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버린 남자를 향한 복수심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그녀가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만큼은 그녀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능한 의상디자이너였기에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누구 못지않았던 것이었는데, 철희의 그림을 보며 그녀는 자신의 재능과 유능함이 잘못된 길에서 빚어진 재주였고 실력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철희는 커다란 사과나무 아래서 진돗개 '몽구'를 데리고 노는 조앤을 풍경화로 그려서 엉가의 집 거실벽에 걸어 주었다. 철희에게 엉가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만든 강낭콩으로 만든 빵과 커피를 내놨다.

철희는 아직도 엉가를 보면 가슴이 뛰었다. 따끈하게 부풀어 오른 하얀 빵에 붉은색 강낭콩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고, 커피는 아주 향이 좋았다. 철희는 이제 화가로 중앙에 서서히 입문하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외로운 양치기처럼 가슴 한쪽은 메마른 수풀 같았다.

"너도 그림 그려볼래, 내가 좀 가르쳐줄게."

"내가 그림을.... 생각은 있지만, 조앤도 아프고, 난 예술가적인 기질은 없는 것 같아서."

"조앤이 아프니까, 너도 뭔가는 탈출구가 있어야지. 힘들잖아 너도."

엉가는 철희의 말에 갑자기 가슴속으로 작은 시냇가에 졸졸 흐르는 냇물과 같은 어떤 물줄기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엉가도 지난 이년 동안 너무 힘이 들고 지쳤다.

조승훈과의 연락을 단절하고 홀로 조앤을 돌보는 지난 일 년은 더 깊은 수렁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아마도 방개 아저씨가 곁에서 그녀를 무시로 수시로 돕지 않았다면 엉가는 진즉에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엉가에게 방개 아저씨는 아버지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녀에 외로움과 고통은 그녀 자신의 몫일뿐이었기에 그녀도 너무나 힘이 들어 지쳐버린 상태였다. 그렇다고 새로운 일에 대한 시작, 그것이 어느 정도 마음에 로망처럼 꿈을 꾸던 일이라도 해도 그 일을 시도해 본다는 것은 조앤에게는 너무나 엄마답지 못한 처사가 아닐까 엉가는 잠깐 고민이 되어서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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