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 가면 닭, 토끼, 강아지 등 동물들도, 마당 한편에는 장독대와 우물도 있었습니다. 어떤 나무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 키보다 몇 배나 되는 나무들도. 할아버지 댁이 그리 멀지 않아 자주 갔었고, 삼촌, 고모,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4살쯤이었나 할머니를 따라 밭에 따라갔었는데 호기심도 잠시 힘들다고 투정 부리니 웃으시며 나를 번쩍 들어 업어 주셨던 기억도 있습니다.
2. 그 당시 이상하게 생각이 되었던 건 왜 나만 할아버지와 단둘이 식사를 하는 가였습니다. 말수 없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식사하는 게 어린 나에게 편치 않았고 누나들이나 동생들과 놀고 싶기도, 엄마한테 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식사해야 하는 게 참 싫기만 했습니다.
3. 식사를 마치고 할아버지 방에서 나오면 부엌에서 그제야 식사 준비에 분주한 여자 어른들, 방에선 남자 어른들은 식사가 준비되길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남자 어른들이 식사를 마쳐 갈 때쯤이면 여자 어른들과 동생, 누나들이 식사를 시작했고, 다들 왜 이렇게 좁은 데서 불편하게 식사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 그 당시는 잘 알지 못했지만 내가 유일하게 할아버지와 겸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집안에 장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고추 달고 태어난 것뿐인데 귀하디 귀한 대접을 받았고, 난 집안에서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아버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와의 겸상을 유일하게 나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 언젠가 전해 들은 얘기인데 손주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께서 직접 오신 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받는 것 같아 으쓱하기도 했습니다.
5. 저에게 할아버지는 부모님한테 혼나면 쪼르륵 달려가 이르고 싶기도, 내가 도움을 청하면 마법처럼 도와주실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셨습니다. 일찍 돌아가셔서 그럴 기회는 없었지만. 사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습니다. 워낙 과묵하기도 하셨고, 표현이라고 해봐야 날 보고 슬며시 미소 지으시던 모습뿐이었으니.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도 할아버지의 말없이 바라보며 웃어주신 모습이 떠오르는 것 보면 할아버지의 그 자상한 눈빛이 나에게 참으로 큰 의미가 있었던 듯싶습니다.
6. 살아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혈육이기 때문에 그러한 대접을 해준 것이라는 것을. 또한 할아버지처럼 나를 대해주는 사람은 세상엔 없다는 것도,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의 모습이라고 다독이기도, 여전히 그러한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면 가당치도 않은 유아적 소망이라고 스스로를 나무라기도.
세상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구라겠지만 대단하진 않더라도 그래도 세상엔 제 몫도 있지 않을까요? 할아버지가 나를 빛나는 존재로 바라봐 주신 것처럼 누군가를 그렇게 바라봐 주는, 이게 제 몫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귀한 손주가 받은 만큼 나누어 가며 살아가길 할아버지도 바라실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