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Jul 05. 2024

엄마가 한 명 더 생겼어요

1. 한 여성분이 아는 분에게 저를 소개받으셨다며 상담실에 오셨습니다. 상담실 오시기까지 6개월 정도 고민하다 오셨다고 합니다. 6개월 동안이나 어떤 고민을 하신 걸까 궁금했습니다. 우선 그 사정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소개받으셨는지 여쭤보니 솔직한 분이라고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저에게 솔직함을 기대하시는지, 본인이 생각하기에 주위에 솔직한 분들이 별로 없으신지, 솔직한 게 본인에게 중요한지 여쭤보니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하기 어려우시냐고 여쭤보니 말이 없으셨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2. 상담실에 들어오셔서 비스듬히 앉아 계속 바닥만 쳐다보고 계십니다.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별말 없이 바닥만 보고 계십니다. 첫 시간이니 낯설기도 하고 어색하신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긴장을 풀어 드리고 싶은 마음에 바닥에 동전이 있을까 봐 보시는 거라면 제가 이미 동전을 다 찾아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재미있어 웃으시는지, 어이없어 웃으시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우선은 웃으셨다는 거에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고 위안 삼았습니다.

      

3. 시간이 좀 지나 조금은 편해지셨는지 왜 상담실에 오시게 되었는지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십니다. 그런데 본인의 힘든 얘기들을 하시다 갑자기 제가 걱정이 된다고 하십니다. 갑자기 왜 제 걱정이 되실까 궁금해졌습니다. 걱정되시는 이유는 본인이 너무 힘든 얘기들을 많이 하니 제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상담실 오시기까지 6개월을 고민하셨고 비용과 시간을 내어 오셔서 정작 하시는 얘기가 내 걱정이라니! 이런 천사 같은 분이 계시다니 하고 감탄되기보다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길래 상담실에 오셔서까지 상담자 걱정을 하시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4. 제 걱정을 계속하시길래 나도 모르게 저렴한(?) 농담이 튀어나왔습니다. "저희 어머니보다 제 걱정을 많이 해주시네요." 아차 싶었지만 어느새 제 입을 통해 배설되었습니다. 다행히(?) 진지한 모습으로 걱정해 주시던 분이 배를 잡고 웃으시며 돌아가셨습니다.

다음 시간에 오셔서 "일주일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상담실에 와서도 내가 다른 사람 걱정을 하는 게 잘 이해가 안 돼요."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 걱정하느라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갑자기 오열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울음을 그치신 이후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니 자신이 받고 싶은 걸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자신이 받고 싶은 걸 다른 사람에게 주면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셨나 봅니다.

      

5. 원하는 걸 표현하지 않고 이런 방법으로 채워지길 기대하니 더 받기 어려우셨습니다. 살아오신 얘기들을 듣다 보니 왜 그런 방법으로 원하는 걸 표현하셨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분 마음을 알기까지 많은 대화와 시간이 걸린 만큼 주변 분들에게 이분 마음이 전달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또한 힘든 얘기를 하시면서도 상대를 걱정하시는 것이 잘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없으셨던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상담은 계속되었고 첫 시간에 제 걱정을 해주신 것이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싶으셨다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돌봄 받고 싶다고 표현하는 대신 누군가를 돌봄으로써 그 표현을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6. 내가 원하는 것을 잘 표현한다는 건 늘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면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건 이미 상처가 될 만한 거절을 당해봤다는 뜻이니까요.

이분을 만나면서 저 역시 제가 원하는 걸 어떻게 표현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내가 받고 싶은 걸 주면서 상대가 해주길 기대하진 않는지,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지레 알아주길 기대하지는 않는지, 아니면 어린아이처럼 그저 떼쓰고 있진 않은지. 힘들면 힘들다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해봐야겠습니다. 표현하지 않고 이해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으니까요.     

이전 05화 사람들의 환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