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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 받은 전화

퇴사를 부르는 소리


수요일.

휴가 첫날이다.

월요일부터 몸이 닳았다.

화요일엔 오늘부터 휴가였으면 좋겠다~라고 열 번쯤 말한 것 같다.

화요일 퇴근부터 행복했다.


수요일.

아침부터 짐을 싸고 차에 넣었다.

부지런히 달려 휴가지에 왔다.

5일 동안 보금자리로 쓸 텐트를 지었고, 테이블을 펼쳤다.

물놀이도 한바탕 치렀고. 이제 막 텐트로 올라와 휴가지에서 먹을 첫 끼니를 만들고 있던 찰나.


전화가 왔다.

" 선생님, 오늘 출근 안 하세요?"

" 네? 휴.. 가...잖아요?"

" 휴가 목요일부터 아니었어요? 그럼 학생들한테는 수요일로 공지된 건가요?"

" 수목금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아이들한테도 그렇게 공지했고요."

" 휴가 잘 보내세요."

뚝-


뚝- 과 함께 '그럼 휴가 잘 보내세요'라고 하는 그 통화 내내 언짢은 상대편의 목소리가 마음에 남았다.

씨발.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이게 무슨 뭣 같은 일이야. 내 휴가를 망치려고 작정을 했네!'


전화와 동시에 이전에 대화를 곱씹어 본다.

"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쉬는 건.. "

" 그건 좀 긴 것 같아요., "

" 그럼 월화수 이렇게 쉴까요?"

" 그것보단 수목금이 더 나을 것 같은데요?"

분명 혼자 내린 독단적인 결정은 아니었고, 내가 잘못 들었을 확률도 (내가 생각하기엔) 거의 제로다.


심지어 머릿속에서는 더 억울할 요소들을 속속 들 히 꺼내어 놓는다.



2주 전.


" 얘들아- 여름방학은 짧고, 또 바로 2학기 중간고사도 있으니까 우리 따로 휴가기간은 없을 거야. 대신에 너희들 집에서 휴가가 정해지면 알려줘."


이 이야기를 듣고는 원장님이 나를 불렀다.

" 선생님, 우리 휴가는 어떻게 할까요?'

" 애들한테 먼저 말하기 전에 상의하고 공지해 주세요."


내심 나도 휴가를 가고 싶었다. 당연히.

상황상, 업무상. 가지 않는 것이, 미루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고, 아쉬운 마음을 뒤고 하고 휴가를 미뤘는데, 휴가를 가자는 원장님 말씀을 마다할 열정이 부족했다.



다시. 전화를 받고 난 상황.

저녁을 만들면서 마음이 내내 부글부글한다.

이가 부득부득 갈리기까지 한다.


신랑은

" 네가 잘못한 것 없으면 됐지 뭐. "라고 이야기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심플하지 않다.

내 잘못이 아니라도 상대가 순순히 내 잘못이오.라고 생각할까.

어찌 되었든 불편한 상황이 되었다는 자체가 나를 어지럽혔다.


순간순간 불현듯.

해결되지 않은 이 불편한 상황은 내 마음을 잠식해 나간다.

잘잘못을 가리기부터 시작해 그 상황을 하나하나 곱씹기까지.

마음은 여전히 하나도 후련해지지 않는다.


금요일.

샤워를 하는 도중에 이런 생각이 든다.

' 이렇게 망친 휴가는 그 인간이 보상을 해주려나'

결론은 하나다. 잠시 미뤄놓고 지금을 즐기는 것.

이 불편하고 답답한 감정을 잘 싸매어 꽁꽁 묶어 마지막 서랍에 잘 넣어두는 것.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불편한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그래서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서

퇴사가 하고 싶다.

일을 그만두고 싶은 명분이 하나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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