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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니내가작가라니
Oct 06. 2021
블라인드가 고장이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조용한 어둠을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때 나의 시선은 오빠의 겨드랑이 그쯤.
적당한 경도를 가진 오빠의 팔은 내 귀밑에 있다.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일어나지 말까’라는 생각을 한다.
꼭 안아보고 기척이 있으면 그대로 눌러앉기도, 팔을 빼면 흥!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다.
캄캄한 거실을 가로질러 방문을 연다.
아주 조심히 힘을 주어 문고리를 돌린다. 익숙하고도 반가운 곳의 형체가 어스름이 보인다. 난 종종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갈 때, 심지어 그곳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극도의 편안함을 느낀다.
불을 켜지 않고 아지랑이처럼 흐릿한 시각에 기대어 내 의자를 찾아 앉는다. 손바닥만이 스삭스삭하는 소리를 만든다. 나도 모르게 올라갔던 어깨가 내려옴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어깨와 등이 펴지고 더 큰 숨을 뱉고 마신다. 볼록 튀어나온 배도 힘없는 팔다리들도 모두 그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간이다.
검정으로 칠해져 있던 창문 너머가 점점 밝아진다.
방문 두 개를 거쳐야 하는데도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그대로 내 귀에 꽂힌다. ‘쿵쿵’ 하더니 ‘철커덕’ 거세게 방문을 열어젖힌다. “엄마 뭐해, 또 공부해?” 배를 긁으며 나를 찾아온 어린 아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뜨고서는 내 손을 잡아끈다. 이제는 좀 더 능동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만드는 일을 찾아야 한다.
소리가 0인 상태를 만들 수 없다면 자잘한 소음 위에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덧대야 한다. 플레이리스트가 필요한 순간이다. 플레이리스트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하다. 왜냐하면, 한 곡만 주야장천 듣기 때문이다. 한 달 전부터 반복 재생하는 곡은 성시경의 ‘우리 한때 사랑한 건’이다.
첫 음을 듣는 순간 행복이 시작된다. ‘김진영 한정’ 성시경 마법이다. 귓속 가득 그의 목소리가 차오르면 저절로 눈이 감긴다. 칼질하다가도, 카레를 젓다가도, 애랑 놀다가도.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옮겨 적었다가 지운다. 마음에 드는 가사가 너무 많아서 옮길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눈부시던 시절 그 가운데 함께였다는 건] 이 문장이 들리면 정말 눈부시던 나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고, [가슴 저릿하게 사랑했던 건]이 들리면 가슴 저릿하게 사랑했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귀로 시작된 행복이 뇌까지 지배하게 되는 일. 그게 나의 편안함의 시작이다.
“엄마 노래 좀 꺼줘! 내 노래 틀어줘!”
바사삭. 나의 경계가 무너진다. 아들 또한 스트레스 푸는 방법으로 ‘헬로카봇 노래 듣기, 포켓몬스터 노래 듣기’ 같은 것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 터라 쉽게 거절할 수는 없다. 노래를 틀어주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이번에는 최대한 귓속에 헬로카봇 노래가 덜 들리도록 말이다. 그 순간부터 내 귀를 건드리는 파동은 방해꾼이다.
귀를 닫는다. 이제 나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풍선을 붙여놓고 소파에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안 눕는다. (앉은 것 같으나 누워있고 누워있는 것 같으나 앉아있는 자세다.) 그리고는 책을 읽는다. 종종 책 속 이야기에 빠져 귀속에 그 어떤 파동도 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묘한 희열감이 생긴다.
치열한 낮을 보내고 난 밤. 나는 다시 나의 퀘렌시아를 찾아 몸을 숨긴다. 후각, 온도, 압력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바로 눈을 떴을 때의 그 위치로 돌아간다. 다시 어둠이 내리고 소리가 사라지면 나의 코가 열린다. 바디 워시와 샴푸 냄새가 체취와 섞여 체온을 입고 올라오는 향을 좋아한다. 따뜻한 온기도 좋아한다. 손, 발이 굉장히 차가운 나에게 상대의 온기는 구원이다. 폭 안겨 있을 때의 압력은 몸으로 하는 말 같다. 뇌를 거치지 않고 해석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말. 세 조건은 대체로 완벽하게 나를 지배한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나무 열매를 줍고 보석을 주우러 다니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미션들을 처리하며 근근이 나의 편안함을 줍는다. 부러 좋아하는 장소를 만들고 예민한 감각기관을 토닥인다. 바라는 순간이 무시로 나타나길 바라지 말아야 한다. 요구하고 찾아 나서는 순간 나의 안전지대는 훨씬 커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