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될 때까지 특별히 몸이 아픈 곳은 없었다. 특히 마른 체형이기는 했어도 초등학생 때 뺑소니에 어디 한 군데 부러지지 않은 걸 보면 나름 약하지는 않은 몸이었다. 어릴 때 맨날 멸치를 먹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농담삼아 한 백만? 천만? 마리는 먹었다고 종종 말한다.
축구를 좋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공과 함께였다. 덕분에 표준체중 미달이었지만 나름 건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축구를 할 일이 없어졌고 신입생이다보니 매일 놀고 술을 마셨다. 가뜩이나 술을 마시지 못하는 유전자라서 음주는 곤욕이었지만 친구들과의 시간은 즐거웠다.
덕분에 입대 전 대학교 1학년 때에는 위염과 식도염에 시달렸다. 고작 10대를 벗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세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던 것인지. 게다가 허리도 안 좋아져서 맨날 허리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래도 그렇게 아플 때 빼고는 쌩쌩했으니 나름 건강한 편이었다.
기억에 남게 아팠던 일이라고는 5학년 때 감기로 심하게 알았던 일뿐이었다.
하지만 대학교 1년동안 건강을 발로 차버리는 생활을 한 것이 화근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럴 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입대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당시에 군대 복무기간은 2년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집안 문제로 군대를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가끔 들었지만 시대가 달라져 그런 건 얄짧없었고 시력 때문에 2급 판정을 받고 현역으로 군대를 가야만 했다.
별로 고민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갔다 와야 하고 누군가와 같이 갈 생각도 없었으므로 휴학기간을 조율할 필요도 없었다. 보통 2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 2학기에 입영하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딱히 신경쓰지 않고 신체검사 때 가장 빠른 날짜로 신청을 했던 것 같다.
그냥 죽지만 않고 제대하면 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입대를 했는데 사회경험 전무에 조직생활도 맞지 않는 성격일 때라 매우 어리버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강압적인 군대 분위기는 적응이 되지 않아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발에 맞지 않는 군화를 신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발에 딱 맞는다고 생각해서 다른 입영동기와 군화를 바꾼게 화근이었다. 발뒤꿈치가 심하게 쓸려서 걷기 힘들게 되었다. 사실 쓸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파였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참는게 특기이다보니 좀 심각해질 때까지 얘기를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왜인지 모르겠지만 바꾼 군화는 깔창이 갈려져있었다. 그래서 더 발이 좁아진 것이었다. 덕분에 발뒤꿈치는 아작이 나고 나는 군화 대신 생활화라는 운동화를 신고 훈련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 환자라서 구보까지 열외되었다. 이것이 내 군생활을 알려주는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아직도 확실히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 하체가 허약했는지 아니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몸 내부에 문제가 생겼던 것인지. 확실한 것은 무리한 훈련을 받고 무거운 군장을 메고 걷다보니 무릎이 이상해졌다는 점이었다. 정확한 병명은 없었다.
단지 무릎에 물이 찬 것 같다고만 들었다.
최소한 내 인생에서 군대 1년은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특기가 일반 소총수와 같은 전투병이 아닌 보급병이었기 때문에 1달간 주특기 교육을 받을 수도 있었다. 소위 후반기 교육이라고 한다. 하지만 훈련소 기간이 끝나자 얄짧없이 자대로 배치되었다.
하필이면 또 당시 유격훈련 기간이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배치되자마자 유격훈련을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분대장이었던 선임이 물었다.
"너 어디 아픈 데 있어?"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은 군대라는 곳이 그런 곳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중에도 알았지만 아프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다. 이제 막 들어온 신병이 아프다는 말을 하면 소위 뺑끼 부린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었다. 어릴 때 조직생활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결국 말했다.
발뒤꿈치가 아직 다 낫지 않았고 무릎에 안 좋다고 말이다. 어떻게 안 좋냐고 물어서 물이 찼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애시당초 아무런 설명이 없었으니 무릎에 물이 찼다는 게 무슨 소린지 나도 몰랐다. 진짜 물이 찬 것인지 아니면 다른 걸 물이라고 하는건지도.
아마 다들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자대에서 몸상태 B급 판정을 받고 첫 유격훈련을 환자로 시작했다. 보통 환자는 물주전자 당번을 하게 되고 훈련에서는 거의 열외된다. 나로서는 상당히 눈치보이는 일이었다. 모두 선임이고 선임들은 힘들게 구르는데 신병은 빠져가지고 삐댄다는 소리 듣기 딱 좋았다.
덕분에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눈총을 견뎌야 했기에 차라리 몸이 불편한게 낫구나 라는 것을 실감했던 첫 유격훈련 3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그 다음 해에 두 번째로 참여한 유격훈련에서는 딱히 환자로 가지 못했는데 첫 날 빡센 훈련을 마치고 다음 날 일어날 때 아, 오늘 못하겠다는데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전신에 알이 배기고 근육통이 심해서 이래가지고 훈련을 할 수 있을까 큰 걱정을 하던 와중에 다행히 부대에서 업무처리해야 한다고 해서 데려가주셨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사실 사람들은 누가 아프다고 하면 별로 큰 관심이 없다. 자기 일이 아니니 당연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멀쩡한데 아프다고 하면 귓등으로 듣는게 보통이다. 아프지 않아본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는 게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간다.
다리가 부러졌거나 팔이 부러졌거나, 혹은 십자인대 파열처럼 알기 쉬운 병명이 있으면 환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껏해야 아픈 곳이 무릎인데 이유가 물이 찼다고 하면 이걸 환자로 받아줘야 할지 고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나 때문에 우리 부대에 닥친 일이었다.
나도 이를 상세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누가 물어보면 마찬가지로 곤욕이었다. 아픈 건 사실인데 이게 또 간헐적으로 아프기도 하고 어쩔 때는 멀쩡한 것 같기도 하니 누가 보면 꾀병이라고 할 것 같고 뭔가 환자라도 상당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이등병때는 더욱 그랬다. 군대에서는 아침점호 때 구보를 하는데 이때 몸이 안 좋은 사람은 열외를 시킨다. 하지만 보통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쉽게 나서지 못한다. 나중에 구보 끝나고 갈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MZ 세대들이라 어떤지 궁금하다.
나는 무릎이 아팠기 때문에 이등병 때부터 구보를 빠졌다. 그리고 전역할 때까지 구보를 하지 않았다. 물론 간부가 다짜고짜 뛰라고 한다면 뛸 수밖에 없는 신세기는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실제로 함께 구보를 열외하는 선임 중 한 명은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무릎물참이었으니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릎이 아픈데 뛸 수는 없으니 이래저래 문제였다. 다만 짬이 차고 고참급이 되니 그래도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1년이 넘어가니 쟤는 환자다라는 인식이 생기기도 했고, 무릎 상태는 오락가락했는데 가끔은 아픈 척을 해줘야 했다.
근 2년 동안 마음의 부채가 있었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군생활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무릎은 여전히 정상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은 상태로 나는 전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학 후 다시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군대 때와 마찬가지로 무릎은 계속 물참 상태인 것인지 불편함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게 희귀난치병의 영향이라는 점은 전혀 상상도 못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