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체트병 일기(현재) 240924 진료기록
두 달 만에 안과 진료일이라 오전부터 병원을 방문했다.
이제 이 병원을 다닌 지도 8년이 다 되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새로운 약을 투여하게 되어서 상반기 동안에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안과를 방문했기 때문에 낯설어질 틈이 없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안과 진료를 받는 날이면 기다림과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수는 많은데 검사도 적지 않기 때문에 누구라도 지칠 수밖에 없는 코스였다.
불행하게도 최근에 불거진 의료계 문제 때문에 더욱 기다림이 길어져버렸다는 사실.
그래도 작년까지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기다리면 됐는데 이제는 병원에 도착해서 최대 3시간까지 머물러야 하기도 했다.
이걸 2024년 상반기에는 매달마다 해야 했기 때문에 진료를 보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버렸다.
멍 때리는 것은 특기라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몸이 고통스럽다. 가뜩이나 살도 없는 엉덩이와 튼튼하지 않은 허리의 소유자인데 말이다.
그래서 병원을 가기 전날에 특단의 조치를 마련했다.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얼마 전에 구입한 태블릿PC를 가지고 갈 생각을 했을 뿐이다. 집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을 한다든지 아니면 영상을 본다든지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름 야심찼던 계획이었지만 한 가지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안과에서는 시력 검사 후 바로 산동제를 넣게 되기 때문에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안경을 쓰고 있으면 멀리서 봐야 보이고 가까이서는 초점이 맞지 않아 안 보인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야 있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멍 때리는 것을 생각보다 잘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뇌에 계속해서 뭔가를 주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다.
핸드폰이나 태블릿에 시선을 두기 보다는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하지만 병원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라서 딱히 사람 구경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도 젊은 나이에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자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니터에는 처음에 진료와 처치가 30분 정도 지연되고 있다고 메시지가 떠 있었는데 조금 지나자 30분이 50분으로 바뀌었다. 저번의 3시간 기록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점심은 제 시간에 먹을 수 있을까?
병원에 있던 전공의들이 사라지고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었지만 그걸 아는 사람들도 힘든데 만약 안과에 첫 진료라면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진료 대기시간이 예전보다 늘어난 이후부터 민원 발생도가 높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환자 분들은 정말 조용히 진료를 기다린다.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인데 기력도 없으실 텐데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민원인을 보았던 목격자 입장에서 이날도 민원이 있었다. 그래도 민원의 정도는 낮은 편이었다고 생각된다.
한 분은 아버지로 추정되는 분과 함께 오셨는데 장기간 대기를 참지 못했는지 지나가는 간호사 분께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을 병원 측에서 인지하고 있었다면 예약시간 한 타임에 배정하는 환자의 수를 줄여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그런 취지였던 것 같다.
그래도 언성을 높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익숙지 않은 기다림이었다면 가능한 문제제기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부분을 간호사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지나가는 간호사 분은 졸지에 그 분의 말씀을 들어주느라 조금 힘들어 보였다.
문제는 병원 운영구조에서 발생하는데 민원은 결국 사람을 향하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마도 생각지 못하게 길어져서 다음 일정 때문에 그랬지 않았는가 추측을 해봤다. 예약 변경을 문의하시는 것 같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변경을 하지 않고 그날 진료를 보셨다. 나보다 먼저.
또 한 분은 멀리 있어서 잘 보지 못했는데 목소리는 앞의 분보다 더 커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약간 예약시간이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진료를 못 보고 있어서 성질을 내신 것 같은데, 원래 안과는 예약시간에 의사를 보는 게 아니라 검사를 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뭐하러 예약을 했는가 하면서 화가 날 수도 있긴 하다.
어지간한 경우 따로 처치나 수술이 필요없다면 진료는 5분 이내로 끝난다. 5분이 뭐야 1분 안에도 끝날 수 있다. 그런데 기다리는 것은 2시간에 가깝다보니 환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아까울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더 느려지다보니 예전을 생각해서 다음 스케줄을 만들었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오늘은 예약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2시간 정도 병원에 있었다. 진료가 끝나더라도 약을 타러가야 한다든지 하는 시간도 있다보니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다행히 1분 남짓한 진료에서는 상태가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내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교수님의 입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계속 이런 상태를 유지해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