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상과의 만남, 글쓰기
글쓰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글쓰기는 나에게 왜 어렵지?
글쓰기는 나에게 필요한가?
글쓰기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한다.
글쓰기에 대한 많은 책도 읽는다.
글쓰기에 대한 많은 대화도 나눈다.
글쓰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부터 시작한다.
‘왜 써야 하지?’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지?’, 수도 없이 많은 질문들로 머릿속을 채우고 나면, 막상 글을 쓸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일 쓰지 뭐, 아님, 내일모레, 아니면.. 언젠가.'
이제는 내 탓 시작한다.
내가 이걸 쓸 수도 있겠나,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직 잘 모르는데, 쓴다고 까불면 쓰나.
나중에 좀 더 준비해서 천천히 제대로 써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걸 쓸 자격이나 될까?
이제는 남 탓을 시작한다.
누가 읽기나 하겠어, 읽는 사람도 없을 텐데, 쓴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는데,
이 정도 써가지고 욕먹으면 어쩌지.
분명히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보면 안 되는데.
지금도 이 글을 발행할 수 없을까 봐 부끄럽다.
그래도, 쓰면서 드는 생각이 이렇게라도 쓰고 있으니까, 내 생각이 정리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아주 소소한 글들에 위로받을 수 있는 단 한 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든다.
아무도 안 읽으면 어떤가.
아무도 안 알아줘도 어떤가.
아무도 몰라도, 내가 알고 있는데.
며칠 전, 브런치 구독자 40명 알림이 떴다.
내가 말하길, “와, 40명이나 구독했데!” 신이 나서, 남편에게 외쳤다.
남편 왈, “뭐, 40만?”
“........ ”
“뭐, 40만 같은 40명이네..”
단 4명이면 어떠리, 나에게는 40명이 40만 명이나 다름없다.
오늘부터 읽고 있는 정여울 작가의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도, 독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다. 글을 쓸 때 가장 보람될 때는 언제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작가가 글을 쓰고 마감을 지나 얻게 되는 안도감보다, 독자들의 댓글, 질문에 더 많은 보람의 뿌리가 싹튼다고 한다.
“절대 만날 일이 없던 생면부지의 타인과 글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건 눈부신 기적이에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시선이야말로 글을 쓰는 보람의 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글 쓰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고,
글쓰기에 대해 조금의 노력이라도 하는 모두를 지지하고,
글쓰기를 주저하는 모든 사람을 응원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기고,
그것을 밖으로 내보이면, 나 자신을 더욱 투명이 바라보게 된다.
나 역시, 내가 쓴 글이 부끄럽고,
나 역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확실한지는 잘 모른다.
나 역시, 아는 것이 부족하고,
나 역시, 이것밖에 모르지만. 조금씩 써가면서, 내 이야기를 전달해 본다.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나를 다시 한번 발견하는 창조의 시간을 만들어 보자.
글쓰기는 나와의 만남이고, 글쓰기는 세상에 나 만큼이나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이다.
오늘의 한 문장이 누군가의 한 줄이 되어,
오늘 하루 미소 짓게 된다면 그걸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