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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바디연구소장 Sep 18. 2023

그냥 책 읽기는 왜 어려울까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을 읽고 책 읽기를 생각하다

얼마 전부터 [책맹인류]라는 EBS 다큐멘터리 K시리즈를 시청하고 있다. 아직 6부까지 나왔는데, 모든 시리즈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내용인즉, 요즘 인류는 책 읽기 너무 힘들어하고 싫어한다는 거다. 도대체 왜 책 읽기가 중요하고, 어떻게 해서 책 읽기를 싫어하게 되었는지, 초등학생의 눈높이에서도 설명해 준다. [초등학교 5학년, 왜 책이 싫어졌을까?] 편에서는 재미없다는 말을 너무 쉽게 많이 들을 수 있다. 딱 봐도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 책 읽기인 것이다. 책을 안 읽을 이유야 수 만 가지지만, 일단 재미없단다. 재미가 제일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데 말이다. 최소한 어린이들에게는. 어쩌면 어른들도 재미 요소가 빠질 수는 없는데 말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아이들은 돈을 주면 책을 읽어 보겠단다. 외적 보상에 대한 책 읽기의 실험이 시작된 시점이다. 하지만, 외적 보상 너머에 내적 동기가 유발되어야 책 읽기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실험이 되고야 말았다. 보상을 위해 도서관으로 신속히 달리던 아이들은 쉽고 편한 어린이 책을 읽어 내다가, 결국은 하나둘씩 표기해 버린다. 그마저도 재미없어졌단다. 다만, 진정 책 읽기를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을 아무 보상 없이 하는 아이들만이 책 읽기의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에서 주장한 바랑 일맥상통한다. 책 읽기의 즐거움은 그저 책 읽기 자체를 아무 바램 없이 행하는 것이라 말해 준다. 어린아이에게는 아마도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야기꾼이 된 엄마만이 진정한 책 읽기 인도자가 아닐까? 책 읽기 독서가 교육의 영역으로 갈 때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들 교육문제는 유독 더 독하게 엄격하게 제대로 해보겠다는 각오를 다지지 않는가? 책 읽기가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책만 읽었을 뿐이라는데 세계를 이끌어갈 인재가 되었단다. 빌게이츠도 책 읽기를 즐기고, 앨런머스크도 책 읽기의 도사들인데, 우리 아이도 책 읽기를 어릴 때부터 한다면 문제없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 마련이다.


수많은 책들을 검색하고, 책장을 채우고 뿌듯해하던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자아내는 대목이 너무 많은 책이, [소설처럼]일 줄이야. 다시 펼쳐 보고 싶지 않은, 그러나 내가 행한 일들을 한 번씩 돌아보게끔 하는 책이기도 하다. 뭐, 제목이 ‘소설처럼’이라는 데 이해는 잘 가지 않는다. 내가 소설 읽기는 즐기기 않았기에, 소설처럼 책 읽기가 즐겁게, 자연스럽게 행해져야 한다는 작가의 비유가 책 내용과 맞지 않다는 강한 거부감 때문일지 모른다. 어쨌든, 독서교육에 대한 나의 태도, 지금의 모습을 반성해 보는 순간을 맞이하게 한 책은 맞다.


    “독서는 아이에게 가혹한 징벌이다. 독서는 어른이 아이에게 지우는 거의 유일한 일거리이기도 하다.” (64)
    “어른들은 읽기를 익히게 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그럴듯한 공부방을 꾸며주고, 독서 카드를 만들고, 출판사를 무색게 할 만큼 온갖 전집류로 도배를 한다. “(65)


어른부터 독서하라고 잔소리하기 부끄러운데, 아이를 빗대어 책 읽기를 먼저 이야기해 줘서 다소 직접적으로 혼나는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책 읽기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가 알고 있지 않을지 싶다. 책 한 권 손에 쥔 것을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남편에게, 책 읽으라고 윽박지를 수 없듯이, 오늘도 나는, 그저 재밌게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책 읽기를 권유하다, 강요하고, 협박하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지 싶다.


책 읽기를 즐겁게, 아무 이유 없이, 책에서 무엇가를 꼭 남겨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책을 읽은 순간이 언제였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책장에 한가득 쌓여있는, 읽어야 하는, 읽지 못한, 읽다 만, 읽을 수도 있는 책들이, 즐거움을 줄 것처럼 여겼는데, 도무지 즐겁지는 않다.


일단, 가서 책장 먼지나 털어봐야겠다.

그러다, 소설처럼, 나에게도 책 읽기의 빠져들 순간이 시작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기억에 남은 문장들>

더군다나 책이 지니는 무게란 한결같이 사람을 아래쪽으로 잡아당기는 성향이 있다. 책의 무게, 지루함의 무게, 아무리 기를 써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버거움의 무게에. (25)
독서는 아이에게 가혹한 징벌이다. 독서는 어른이 아이에게 지우는 거의 유일한 일거리이기도 하다. (64)
어른들은 읽기를 익히게 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그럴듯한 공부방을 꾸며주고, 독서 카드를 만들고, 출판사를 무색게 할 만큼 온갖 전집류로 도배를 한다..(65) (가장 찔리는 부분이었음. 나의 상황을 그대로 드려다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들기보다는, 기꺼이 아이에게 저녁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미래를 담보로 아이에게 으름작을 놓기보다는 아이의 현재가 한껏 펼쳐질 수 있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67) (어떻게든 나의 시간을 가지려고, 아이들 숙제보주는 일이 가장 시간 아깝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온전히 몸과 마음을 담아야, 더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고, 독서와 학습 시간이 형성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
예전처럼 다시 아이과 읽기를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책을 골라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크게 소리 내어 읽는 것.(69)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이의 선택을 허용하는 일은 어렵다. 가장 옮은 선택이 아니라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고집을 내려놓고, 진정 아이들이 바라는 그저 쉬운 책이든 우끼는 내용이든 무조건적 수용의 태도를 배우고 또 배우자. )
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작가와 나 사이에 형성되는 그 역설적인 친밀감을 발견하는 데 있다. 홀로 쓴 그의 글이 혼자서 소리 없이 얽어 내리는 나의 목소리에 의해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155)
(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의 매력에 빠진 경험은 특별하다.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기기에 허구라는 생각에, 소설 읽기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다. 때로는 그저 자연스럽게 내가 그 이야기에 푹 빠져 소설의 일부가 되어 여행하는 독서가 그리울 때가 있다. )


[독자의 권리]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책을 다시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일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190)

(독자의 권리라 주장하는 저자의 역설이 재미있다.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읽어도 된다는 주장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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