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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26. 2024

어떤 연상

어떤 연상 


밤에 숲으로 가면 멧돼지를 더 잘 불 수 있죠. 숲으로 가는 길에 전을 파는 가게가 있는데 보통은 김치전과 부추전을 파는데 그날은 그것은 없고 대신 미나리 전이 있다고 하여 보았는데 크기가 더 커서 하나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싸게 해 줄 테니 한 장 남은 것과 함께 사라고 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막걸리 한 병과 함께 밤의 숲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미나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것은 다음의 동요였습니다. 


엄마엄마 이리 와 요것 보세요. 병아리 떼 뿅뽕뽕뽕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동심의 순수한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기도 했는데 동시에 하늘에 매가 날 때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품는 장면도 연상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매가 병아리 한 마리를 채어갔다고 할 경우 어미닭이나 다른 병아리들이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았는데 사실 동물들은 때 이르게 죽음의 위협에 처하게 되는 경우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하려 하고 어미들은 본능적으로 새끼를 지키려 하긴 하는데 막상 죽음의 순간에 생물학적인 쾌감을 느낀다는 설도 있고 맹수들인 경우 죽은 새끼의 시체를 먹는 경우도 다큐프로에서 몇 번 보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태도나 감정이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교육사화학 시간에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가 나온 맥락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은 인간이 다른 동물에서 진화해 왔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인데 그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고 과학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아직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먹이 사슬이 있어 식물뿐 아니라 동물들도 다른 동물들의 음식이 되죠. 그런데 다른 경우보다 고등 동물들이 다른 고등동물들에게 행하는 죽이고 먹는 행위가 인간이 감정이입을 사용하여 보면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신체구조가 육식을 하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어 하느님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특성과 조화를 이루지 않다고 하여 신의 부재증명이 한 근거로 사용되기도 하죠. 논리적으로 진화론과 오히려 조화를 이루는 현상이라는 것이죠. 


인간이 철학적 혹은 신학적으로 고안해 낸 신관념과는 그럴 수 있지만 그런 신에 대한 생각은 인간이 꾸며낸 것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애초에 전제가 잘못된 것이어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나 창조에 대해서 독단적으로 근시안적이고 단세포적으로 한 생각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죠. 일종의 허수아비의 오류가 될 수 도 있죠. 


신에 대한 생각은 신자신이 언명한 것에 기초해서 하는 것이 논리적이죠. 세상에는 인간 나름의 시각에 이상적이지 않게 보이는 현상으로 가득 차 있는데 예를 들어 달의 실상은 결코 토끼가 방아를 찧는 그러한 낭만적인 곳이 아니지요. 인간의 필요에 적합하게 하려면 조정이 되어야 할 곳으로 가득 차 있죠. 자연 그대로는 삭막하고 혹독한 환경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원래 창조주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전쟁을 치르듯이 개척하도록 되어 있죠. 동물의 세계도 인간이 제어하고 통제하도록 되어 있었고요. (창세기 1: 28) 자연 상태가 이상적이 아니고 부조리하게 보이는 현상들로 가득한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입니다. 


중략하고 원래 하고자 했던 얘기로 돌아가면 이상의 내용은 '미나리'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연상된 것 중에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연상된 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죠. 그 가게에서 평상시에 매일 팔던 김치전을 필지 않고 미나리 전을 팔고 있을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럴 가능성에 대한 상상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서 뒤이어 연상된 어떻게 보면 우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무한한 연상들. 


만물 전체가 본시 하나로 얽혀 있다는 말도 생각나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하나의 사건에서 극단적으로는 우주의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떠오를 수 있는데 북경의 나비의 날게 짓이 뉴욕에 허리케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가 떠오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동시성의 원리가 연상되기도 하고요. 


만물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인간의 의식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결코 인간이 단순하게 파악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케이오플랙서티'라고도 표현하는, 인간이 알아내기가 불가능한 그런 무수한 법칙과 원리들의 어떤 신비한 얽힘에서 오는 현상으로 인간이 생시에서나 꿈에서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들이죠. 


인간이 창조주의 인도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해보려고 하는 모든 일이 턱없이 무모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예레미야 17:9,10입니다.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하다.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겠는가?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고 가장 깊은 생각을 조사하여 각 사람에게 그 길에 따라, 그 행위의 열매에 따라 갚아 준다.


사람들은 그 믿을 수 없는 생각대로 행동을 하고 길을 가죠. 즉 그렇게 삶을 삽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끔찍스러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에 따른 피할 수 없는 보응이 목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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