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민낯(맨 얼굴)이라는 표현이 있고 화장은 일종의 예의라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는 언짢게 하는 결함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나 모든 동식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기가 좋은 것입니다. 식물이나 동물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가려 언짢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죠. 화장시킬 필요가 있는 꽃이나 동물의 얼굴이 있습니까?
인간만 그러하죠. 카무플라주가 어쩔 수 없는 것이죠. 심지어 성형의 필요를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저주의 결과입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본연의 임무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 즉 자연을 개척하는 것이고 하나는 내면 즉 자신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껍데기를 장식하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의식을 성장시키는 것에는 세 가치 측면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진리를 배우고 가슴으로는 사랑과 같은 도덕성을 배양하는 것입니다. 몸으로는 창조주 관점에서의 선행의 질과 양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얼굴에도 반영되어 덩달아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격한 설렘이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화장이 오히려 방해가 되죠. 화장이란 그 광체 그 아름다움을 가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되는 것이죠. 상대가 그것에 넋을 빼앗겨 더 중요한 것에 주목하지 못하면 안 되니까요.
물론 인간의 완전한 젊음과 건강이 꿈에 불과하듯 꿈같은 얘기죠.
인간은 세상을 낙원으로 개척하는 임무에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절망적이죠. 자신의 내면의 낙원화는 더 그렇습니다.
얼굴에도 반영이 되어 민낯은 무례한 얼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거짓, 속이는 일에 능하게 되었죠. 감추는 일에도요. 문자적, 비유적 모두예요.
그러나 지금도 인간의 본연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은 껍데기에 대해
여러분의 단장은 머리를 땋고 금장식을 달거나 겉옷을 입는 외적인 것으로 하지 말고, 도리어 마음의 숨은 사람을 조용하고 온화한 영의 부패하지 않는 옷차림으로 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눈앞에 큰 가치가 있습니다.(베전 3:3,4)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것으로 “하기보다”라고 하지 않고 “하지 말고”라고 한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무플라주 하지 말라는 것이죠.
사람은 ‘있는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적어도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두지 말고 시정, 개선,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정신과 마음을요. 그러면 언행에도 나타나고 자신의 얼굴도 위에 공상적으로 표현된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아름다움을 가리기 위해 화장을 해야 할 수준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