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이사야 51장입니다.
의를 추구하며 여호와를 찾는 자들아, 나에게서 법이 나갈 것이며, 내가 나의 공의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울 것이다. 나의 의가 가까이 오고 있다. 나의 구원이 나갈 것이며, 나의 팔이 민족들을 심판할 것이다. 그 주민들은 하루살이처럼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구원은 영원하고 나의 의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의를 아는 자들아, 내 법을 마음에 간직한 백성아, 내 말을 들어라. 나의 의는 영원하고 나의 구원은 대대에 미칠 것이다.
진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불변하죠.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오늘 조간신문보다 더 현실적이죠.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의의 개념이 없습니다. 창조의 법에 대한 개념도 없죠. 나름의 기준으로, 자의적 기준으로, 임의로 선악을 정하고 그렇게 정해진 악의 파괴를 통쾌하게 여기죠. 임의적인 파괴와 살인을 정당하게 여기기 위해서요. 하마스에게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에게는 하마스가 악이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그러하죠.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군과 아메리카군이, 독일군과 연합군이 서로 악으로 규정하여 그에 대한 살인과 파괴를 선으로 규정했죠. 남북한도 서로 그러하죠.
민족을 위한다는 감정을 선한 것으로 여기죠. "감히 우리 민족을 그렇게 살해하고 납치 헸단 말이지? 너희는 다 죽어야 돼." 하는 것이죠. 그 민족 전체가 그렇게 분노하고 그렇게 느껴 빨리 적을 파괴하라고 하는 것이죠.
하느님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복수는 내게 맡기라고 하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원칙을 법으로 둡니다.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것인데 세상에는 도무지 비현실적인 원칙이죠.
인간이 마땅히 순종하여야 할 법은 창조주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위의 구절과 같죠. 의에 대한 기준도 창조주가 정하는 것을 전적으로 따라야죠.
그러함을 정신과 마음에 세기고 그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그 삶이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하루살이처럼 죽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하루는 천년 같고 심지어 밤의 한 경점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수십억, 수백억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인간의 수명은 찰나와 같다고 하죠. 비참하게도 100년도 못 살죠. 그리고 위의 구절은 오늘날 적용됩니다. 그나마 자기 수명도 채우지 못하죠. 우주의 공의는 그렇게 집행됩니다. 위의 구절은 앞으로도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창조주의 의와 법을 무시하는 어떤 존재도 하루살이처럼 죽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인간도 나름의 기준으로 서로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면 창조주께서 의와 법을 사랑하여 순종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분의 눈동자처럼 여기는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꼭 그렇게 하루살이의 인생을 살아야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