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학위심사 Viva를 경험하고 느낀 것들
박사학위심사(영국에서는 viva라고 하고 미국/한국 등에서는 defence라고 부른다)를 앞두고 계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을 적어보고자 한다. 본 글에서는 필자의 영국 박사학위 심사 경험 및 주변 지인들의 경험담 등을 토대로 내용을 기술함을 먼저 밝힌다. 하지만 한국/미국에서의 defence를 앞둔 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라 생각되니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먼저 영국 박사학위 심사인 viva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영국은 학위 심사과정이 미국/한국의 그것과는 꽤나 다른 편이다. 영국 viva는 기본적으로 심사위원 세분과 피심사자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진행한다. 공개 세미나의 형식이 아니다. 심사위원은 보통 세명으로 구성되는데, 한 명은 진행자(해당학교 교수 - 박사학위 주제와 전혀 상관없을 수 있음. viva 내내 거의 질문 안 함), 한 명은 internal examiner(해당학교 교수), 나머지 한 명은 external examiner(타학교 교수)이다. 많은 경우, external examiner가 심사할 학위 주제와 연관성이 높은 저명한 교수이고, 심사과정 중에 가장 주도적으로 질문들을 던진다. 지도교수들도 그 자리에 함께하기는 하지만 심사가 진행하는 동안 별도의 코멘트는 하지 않고, viva가 혹시 이상하게 흘러가지 않는지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필자의 경우, 지도교수님들께서는 바쁘셔서 viva가 끝날 즈음에 참여하셨다).
Viva는 이렇게 비공개 형식으로 examiner들과 마주 앉은 채 소규모로 시작된다. 처음에 피심사자는 thesis에 대한 전반적인 목적/구조 등을 설명하는 간단한 발표를 10분 정도를 한다(필수는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마치면 피심사자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examiner들과 마주 보고 테이블에 앉고, 이제 본격적으로 examiner들은 빨간 줄과 코멘트를 잔뜩 적은 thesis(피심사자가 몇 달 전에 제출한)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질문을 시작한다. 이제 viva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왜 특정 문구/표현을 썼는지 단어 하나하나 세부적인 것부터, 큰 흐름에 대한 것까지, 아주 세세하게 질문을 한다. 그렇게 질의응답을 최소 3시간 정도 진행하는데, 길면 5~6시간 동안도 한다고 한다. 심사가 다행히 3시간 정도 수준에서 종료되면, catering으로 준비된 샌드위치 등을 먹으면서 간단히 담소를 나누는 식으로 전체적인 viva프로세스가 마무리된다. 만약 심사가 5~6시간 동안 진행되면 식사 이후 추가적으로 더 이어서 진행되기도 한다.
이렇게 최소 3시간 동안 교수들과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viva는 학위과정 마지막 단계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이 될 수 있는 최종관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실제로 다음 사항은 학위 심사를 앞둔 필자가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받은 조언이기도 하다.
박사학위과정을 하다 보면 비록 초반에는 열정과 희망이 넘칠지라도, 과정 중반을 넘어가면서 점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게 되고, 마지막 즈음에는 저널 논문실적 여부에 따라 조금은 자신감이 회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external examiner로 오는 교수는 내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전문성이 있는 저명한 교수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더욱더 viva를 앞두고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 박사 연구주제와 관련해서는 examiners보다 그리고 심지어 당신의 지도교수보다, 당신이 훨씬 state-of-the-art를 알고 있는 전문가다. (박사과정을 제대로만 했다면) 지난 3~4년 동안 당신은 그들보다 literature survey도 훨씬 많이 해왔고, 실험과 코딩도 직접 해오면서 해당연구주제와 관련해서는 당신이 훨씬 더 깊게 알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examiners가 보다 넓은 분야에서는 저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의 박사과정주제 영역에서는 당신이 최신 트렌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이다. 따라서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Viva를 처음 시작할 때, 10분 정도 간단하게 thesis가 어떤 research questions을 다루고 있고 각 chapers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 소개함으로써, 논의 주제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scoping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도 초반에 이러한 방식으로 viva를 시작했는데, 발표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examiner가 말하기를, 초반 발표를 들으니 해당 thesis가 다루려고 하는 범위가 어떤 것인지 많이 이해가 되었다며, 질문하고자 했던 질문 리스트 중에 몇 개를 바로 지워버렸다.
Examiner의 입장에서 바꿔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저 미리 몇 달 전에 받은 thesis를 직접 읽어보는 것 외에는 viva가 시작하기 직전까지 해당 연구가 어떤 연구인지 추가적인 정보를 받은 바가 없다. 물론 thesis가 정말 잘 써져 있었다면 읽는 것만으로도 모든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심사를 하러 왔었겠지만, 이제 막 학위과정을 마치는 사람의 작문실력이 완벽하지도 않을 것이고, 게다가 외국인이라면 영어 표현이 완벽하지도 않을 테니, examiner가 완벽하게 thesis를 이해하고 viva를 참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처음 시작할 때 전체적인 주제의 scoping을 해주는 간단한 overview introduction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잘 돼있을수록, viva는 (misunderstanding에서 비롯된) 이상한 질문 없이 흘러갈 수 있다.
최종적으로 viva가 종료되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examiner들은 본인들의 최종 comments를 문서 형태로 정리하여 이메일로 전달을 해준다. 그러면 피심사자는 peer-review journal을 마무리하는 과정처럼, 해당 comments를 반영하여 thesis를 수정하고 (major revision인 경우는 필요시 한 번 더 review를 받고) 학과 담당자에게 제출을 하면 이제 진짜 모든 박사과정이 끝이 난다.
그런데 이러한 comments의 내용을 보니, viva때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넘어간 것들이 그대로 comments에 남은 경우가 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viva 중에 최대한 대답을 하려고 노력해서 comments에 안 남은 것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따라서 viva 현장에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대답하자. 안 그러면 comments로 남고 괜히 실험을 더 해야 할 수도 있다.
Viva 이후, 이보다 더 집중적으로 당신의 연구에 대해서 누군가가 3시간 동안이나 질문해주고 할 일은 거의 없다. 가끔 타학교/기관에 invited talk를 하러 갈 일이야 종종 있지만, 질의응답은 보통 10~15분 길어야 30분 수준이다. 이러한 경우 논문을 제대로 읽고 discussion 하는 것이 아니고, 축약된 발표 이후에 행하여지는 discussion이기에 정말 깊숙하게 논의를 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viva에 참여하는 examiner들의 노력에 감사하게 된다. 200~300 페이지나 되는 thesis를 한 줄 한 줄 읽고 와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가면서 3시간 동안 review를 해주는 그들의 노력 같은 것을 언제 또 경험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즉, viva는 당신이 주인공인 시간이다. 이 시간을 기쁘고 감사하게 즐겨라. 재밌게 토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