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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DA Jul 16. 2021

하나의 장면, 장면의 하나

<블랙미러> 에피소드 2- hot shot.

에피소드 내에서 '핫샷'이란 쇼가 왜 개최되는지, 우승자에게는 무엇이 주어지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핫샷'이란 쇼 그 자체이다.

자! 그럼 신사숙녀 여러분! 지금부터 제 XX대 핫샷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우! 저번 핫샷은 정말 끝내줬죠!

아리땁고 순수한 한 소녀의 성인 잡지 데뷔라니! 지금 생각해도 제 얼굴이 화끈거리는군요!(웃음)


(낮게 목소리를 낮추며)제 '특급'정보에 의하면 이번 핫샷의 참가자는 그 소녀의 지인이라는군요!

자, 과연 그는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봅시다!


청중들의 환호 속에 한 흑인 남성이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들어선다.

검은 피부와 그에 대비되는 흰 눈, 어딘가 멍한 눈동자가 심사위원을 응시한다.


당연히 멍할 것이다. 모든 핫샷 참가자에게는 사전에 의식을 흐릿하게 하는환각제를 속여서

복용시키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었으니, 이 남자는 환각제를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자는 보여줄 개인기로 춤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음악이 울리고 남자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뻣뻣하고 기괴한, 뭔가 부서지기 직전인 목각인형

같은 춤사위는 어딘지 모르게 슬픔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런걸 느낄정도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은 살아있지 않았고,

불합격 버튼을 누르려는순간, 남자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투명하다 그리고 뾰족하다, 칼? 아니다 유리조각인 것 같다.


그저 협박 수단이라 생각되는 이 유리조각 하나조차도, 드라마 내에서는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이 목을 그어버리겠어!"


그렇게 말하고 수초간 이어진 묘한 대치 이후 심사위원들이 입을 연다.

그들이 중요한 것은 단 하나. 핫샷이다. 

심사위원들은 점점 그를 몰아가며 이 돌발사태마저도 하나의 '쇼', 핫샷으로 만들어간다.


이래선 안된다, 이래선 안된다, '그녀'를 헛되게 만들순 없다.

남자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지 않았을까?


뭐라 준비했다면 보여주라는 심사위원의 일갈에 남자는 마침내 '절규'하기 시작한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블랙미러'의 시즌 1의 2번째 에피소드 '15million merits'은 초현실적인 설정과 분위기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미디어와 과도한 기술적 풍요에 의해 짓밟히는지를 참신하고

조금은 기괴한 묘사들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에피소드의 클라이막스로 이 다음은 바로 결말로 이어진다.


자, 그럼 이제부터 사내으 절규를 한 번 들어보자.


"듣는 얼굴만 하지 말고 진짜로 들으란 말이에요!"

남자는 처음 내뱉는다. "보여줄려는 것 따위 없다고, 그냥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그리고 한 말이 위의 이말이다.


듣는다 어찌보면 쉬운일 아닌가? 그냥 귀하고 입만 있으면 되는 일 아닌가? 라고 생가할 수 

있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사실상 세상의 그 어떠한 소리도 저장하고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귀머거리인 세상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들을 것이 많은 세상이라 내 장담할 수 있다.


'자동차 경적, 횡단보도 신호음, 유투브, 최신팝송, ASMR' 등등 나열하면 끝이없다.

그래서 묻겠다. 세상사람들 사이에 조금더 서로를 이해하거나 싸움이 줄어든 것 같나?


세상은 발전했지만 인간은 협력은커녕 서서히 더 분열되고만 있다.

요즘 뉴스를 자주 본 사람은 아마 '아니요'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세상은 오히려 서로 험악해져만 가고 있다.


억압받던 흑인들은 이제는 황인을, 그 황인들은 자신들 중에서도 소수민족을,

가난한 자가 부자를,

진보가 보수를,

여자가 남자를,

위에서 말한 것들을 반대로 해도 된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서로가 서로를 난도질하고 있다.


물론 더 많은 소리가 '생겼다' 하지만 소리가 '생긴'것과 '듣는'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소통'이란 것의 국어적 의미 자체가 '올려서 통한다' 즉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담겨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남자는 남자가 듣고 싶은 것만, 여자는 여자가 듣고싶은 것만,

진보는 진보의 소리만, 보수의 보수의 소리만,

흑인은 흑인소리, 백인은 백인소리,


디지털 혁명으로 기대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개방은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에 의한 '맞춤선택'

이란 것의 등장으로 무참히 파괴되었다.


아니 그것의 등장 이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과정이 조금 더 번거로웠을 뿐이지.


SNS의 등장으로 우리의 사회적 인간관계는 넓어졌긴 하지만, 그 깊이는 한없이 얕아졌다.

인터넷 상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르 한다?

손가락 몇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모든 인연을 끊을 수 있다.


인간들은 이제 번거로운 논박과 이해 대신 듣고싶은 것만 '쉽게' 듣고 '쉽게' 헤어진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언젠가부터 듣고 싶은 것조차도 제대로 듣지 않게 되었다.


자극적인 전개와 낚시성 제목을 극한으로 데포르메한 밈까지 등장한 정도로 대중 미디어는 극도로 가벼워지고 있다.

유투브나 커뮤니티에서 차분히 뭔가 검색하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초반 5~10초동안 뭔가 이목을 끄는게 없으면 반사적으로 뒤로가기 버튼을 누른다.


위와 같이 이를 이용한 '밈'까지 등장할 지경이니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전부 '귀머거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표현이 좀 그렇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듣지 않거나, 듣지 못한다면

최소한 그 '누군가'에게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아닌가?


그렇게 세상은 점점 특정인에게만 귀를 먹고있는 기이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남자는 여자에게 보수는 진보에게 흑인은 황인이나 백인에게,

혹은... 그 모두에게 말이다.


-계속-



<마무리지으며>

첫 '하나의 장면 장면의 하나' 에파소드는 3부로 갈 것이다.

너무 길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 만큼 이 에피소드에서 이 장면은 나에게 와닿는 것이 많았고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완급을 조절하려 부당 분량을 짧게 준비하려 하니 그렇게 되었다.


이 에피소드 외에도 해당 드라마 '블랙 미러'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편의 외에도

어떤 비극을 불러 올 수 있는지를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려내었다.

평소에 SF를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인 배경과 과도한 기술적 발전 모습에 질린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이라 '감히'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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