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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DA Apr 18. 2023

스팀펑크3부작(2): 파괴의 편린

모택동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는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이다. 이것은 단순히 지도자로서의 마키아밸리적 관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인류가 탄생하고 그나마 모든 것이 평등했던 원시 시대 이후 우리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인류에게는 계급이라는 영원불멸의 법칙이 탄생하게 되었다. 어떤 곳이던, 어느 시간대이던 인간들이 집단을 이룬 곳에는 항상 그것이 존재하였다. 왕과 노예, 군주와 영주와 평민, 혹은 조금 다른 표현이지만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까지. 타의적이든 혹은 심지어 자발적으로든 인간들은끊임없이 서로에 대한 선을 긋고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선의 안쪽으로 들이려고 하였다.



굳이 이러한 장광설을 펼치는 이유는 전쟁에 관련한 필자의 의견 때문이다. 필자의 주관이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소위 '예의'나 '격식' 중 대부분은 기실 자신의 계급적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정당화나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중세까지만 하더라도 상류층(혹은 그렇게 지칭하는 자들)은 내가 너보다 더 고귀하고 좋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우스꽝스러운 에티켓들을 만들어댔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의'나 '격식'이 통하지 않을 때가 인류에겐 번번히 존재해왔다. 그때마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인간들은 소위 '실력 행사'에 나섰고, 이것이 전쟁이다. 너무 큰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얼마나 많은 전쟁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발발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빼앗고 없애는 행위이다. 그것이 마약이나 테러와 같은 개념이든, 어떠한 국가이든, 혹은 전장의 한 이름 모를 적군에게서든 말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방법을 알아내는데 지구상 그 어떠한 생물들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왔다.          



'국민국가'와 '국민군'의 탄생.

스팀펑크 장르에 등장하는 군사와 무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우리는 잠시 그것의 현실적 배경이 된 근대 유럽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의 설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니 조금 주의 깊게 읽어주기를 바란다.     

근대 시대, 그 중에서 근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 개념은 바로 '국민국가'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단어에서 '국민'이라는 뜻은 현대적 관점의 국가가아닌 '민족'에 가깝다는 것이다.



중세시대, 그러니까 흔히들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장원'에 기반한 '봉건제'가 존재하는 시대에서 대다수의 인간, 아니 지식인들에게도 '조국'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농노들은 철저히 각 영주의 장원에 귀속되었으며 거의 대부분이 그 안에서 평생을 살았다. 지식인들 중 일부는 사회 전체의 거시적인 면을 일부 보는데 성공하였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은 철저히 미시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학문을 탐구했고, 무엇보다 충분치 않은 금전적 지원에 시달렸다. '내 나라' , '내 민족'이라는 개념은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였으며 모든 것을 

엮어주는 유일한 테두리는 기독교와 교회뿐이였다.     




이 모든 상황이 서서히, 그리고 어느 순간 격변을 시작한 기점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3부회 소집과 바스티유 감옥 습격,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마침내 나폴레옹의 집권까지,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프랑스 대혁명은 결코 순수하거나 고귀한 면만을 품지 않고 있다. 허나 이러한 피비린내나는 투쟁을 계기로, 프랑스는 지금까지 유럽 그 어떠한 국가도 얻지 못한 하나의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 프랑스인'이라는 인식. 즉 최초의 국민국가를 인지하고 건국하게 된 것이다. 


그 뒤로 혁명의 배반자 나폴레옹은 정복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되었지만 이것은 결코 이야기의 종막이 아닌 또다른 시작이였다. 그가 전쟁을 통해 정복한 땅, 심지어 그것에 실패한 러시아에서까지 자유,평등,박애를 '통한' 국민국가의 원리를 유럽이 깨우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권력자들을 일명 '빈 회의' 이라 불리는 반동적 체제를 통해 어떻게든 그것을 막으려고 하였지만 결국 막는 데 실패하였고,

그것이 군주정이든 공화정이든 철저한 중앙집권 형태의 국민국가 체제가 유럽 전체에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스팀펑크 장르 속에서의 군대는 대부분 국민국가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징병제를 통한 상비군'으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많다. 또다른 특징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옛날 군대' 하면 떠올리는 형형색색의 여러 장식을 달고 있는 밝은 원색의 제복이다.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을 것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속에서 밝은 색 군복이라고?'라고 말이다. 허나 이것 역시 얽혀있는 사회적 이유가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쟁. 즉 총알과 포격, 포탄이 빗발치고 사람이 종잇장마냥 죽어나가는 그러한 전쟁에 대한 인식은 모두 20세기 초중반, 즉 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 전쟁은, 일종의 '다수가 이루는 명예로운 결투'에 가까웠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전쟁을 벌이는 양측에서 일어나는 사상자는 현대의 전쟁에서 일어나는 사상자의 조족지혈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위에서 상술한 것처럼 나폴레옹 전쟁이나 보불전쟁 시기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고폭탄을 사용하지 않는 야포나 1발씩 쏠 수있는 후장식 소총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인식에 한몫했다. 대전쟁(1차 세계대전)이전까지 전쟁은 남자들에겐 일종의 어른이 되기위한 모험에 가까웠다.물론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두가 쓰지 못할 거라 생각한 무기.

"아뇨,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겁니다"

"No, it will make war impossible."

- 1893년 영국의 한 과학자의 질문 "이 총으로 전쟁이 더 끔찍하게 되지 않겠는가"에 대한 하이럼 맥심의 답변-


참으로 안타깝지만, 맥심기관총을 발명한 하이럼 맥심은 그것을 발명하며 '이러한 끔찍한 무기를 도저히 전쟁에는 이용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는데 인간은 그리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883년부터 생산에 들어간 맥심 기관총은 분당 5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세계최초의 자동발사 중기관총이다. 500발이라는 다소 빈약한 발사속도에 실망한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디 기억해달라. 이 시기에 거의 대다수의 총기는 단발식 후미장전 소총이였다는 것을 말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관총은 인류 군사사에 있어 거대한 전환점이기에 스팀펑크에서도 그 얼굴을 빠지지 않고 비춘다. 다만 그것에 대한 바리에이션으로 여러가지의 형태의 기관총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바이오쇼크의 등장 적들 중 하나인 '자동 경비 시스템' 이 그 예시 중 하나로,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감지되는 적들을 순식간에 고깃조각으로 만드는 방법 말이다.          


철로 이루어진 혈관     

그러나 군사, 특히나 보급을 담당하는 군수 쪽으로 간다면 기관차와 철도를 도저히 빼놓고서는 이야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증기 기관차는 대부분이 잘 알 테지만 단순무식하게 이야기한다면 증기기관의 단순함을 이용하여 그것의 크기를 부풀린 뒤 기관의 후면부에 물건들을 매달아 철도위를 달리는 교통수단이다.


혹자는 어째서 이것이 군사쪽에 분류되었는지 갸우뚱할 수 있지만 이것은 필자의 역사적 지식으로부터 판단한 결과라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비행기가 본격적인 생산이 가능해지기 이전까지 세상을 누비던 대부분의 물자는 바닷길 아니면 땅 위를 달렸고, 배의 중요성과 더불어 철도의 중요성 역시 산업혁명과 함께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중 가장 모범적인 예시가 호엔촐레른이 다스렸던 독일 제2제국일 것이다. 독일 제국은 그들의 방대한 영토와 유럽의 한중간에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건국 당시부터 촘촘한 철도망 건설에 사활을 걸었으며 결국 이것은 1차세계대전 당시 물자와 병력의 미칠듯한 이동을 감당하여 독일은 서부와 동부전선의 병력을 다른 나라에 비해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증기기관차 역시 스팀펑크 장르에 들어오며 변화를 겪는데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비현실적으로 커지는 기관차의 크기이다. '저게 물리적으로 움직일 까' 싶은 거신의 기관차가 천천히, 하지만 육중하게 달리는 모습은 스팀펑크 장르의 대표적인 볼거리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중 소위 '남자의 로망'을 제대로 저격하는 하위 분류의 기관차가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무장열차'이다. 1차 세계대전때 실제로 몇 번 도입되었지만 철도 위로만 이동해야 하는 한계 때문에 금세 사장되었던 무장열차는 스팀펑크 장르에서 주로 적국이나 주인공 측의 결전병기로 등장하여 독자나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선사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끝맺으며

스팀펑크 장르의 물질적 요소는 여기서 끝이다. 해당 장르를 보면 알 수 있듯, 근대는 정말로 모든 게 미친듯이 빠르게 변화하고 진보하는 시대였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일에 대한 기대'. 즉 어느 누구라도 미래에 대한 보편적인 희망을 품고 있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다음 게시물에서부터는 스팀펑크의 장르의 '사회적 요소'에 대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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