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rin May 26. 2023

스쳐 지나갈 불행임을 알면서도.

J는 내가 호주에서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이다. 한국을 떠나고 지내면서 내 또래의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대부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았고 어쩌다 또래를 만나도 별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트위터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서로 팔로우를 하면서 호주의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종종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실 나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알게 되어 오프라인으로 만나게 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에게 취향이라는 건 타인과 연결해 주는 가장 좋은 매개이자 즐거운 만남이 어느 정도는 보장되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J는 먼저 만남을 제안했고 나는 선뜻 그 제안에 응했었다. 만나고 보니 동갑내기였고 이야기가 잘 통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과거 유명했던 밴드 이야기에 내가 댓글을 달아서 또래라고 생각해 한번 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둘은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친구는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에너지가 가득했다. 누구보다도 타지에서 자신의 바운더리를 만들면서 그녀 역시도 열심히 애쓰면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30대의 우리는 고충도 비슷했고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롯이 타지에서 발 붙이고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많이 닮아있었다. 그래서 J는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해 주었다. 일과 집, 학교가 일상의 전부였던 나를 차에 태우고 저 멀리 바닷가에 데려가준 사람도 J였다. 덕분에 일상의 사이에서 난 조금 더 뭐라도 해볼 수 있었다. 코로나로 락다운이 걸리고 일도 못하고 일상이 유지하기 어렵고 힘들던 시기의 끝에서 인적이 드문 바닷가로 데려가 준 고마운 친구였다. 서로 멀리 살아 자주는 볼 수 없었지만 언제 만나도 많은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 마지막이 될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도 우리는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고 지난 일 년을 이야기했다. 어쩌다 울기도 하고 서로에게 잘 견뎌냈다고 말을 전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그 마지막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끝으로 나는 캐나다로 왔다. 나는 캐나다로 와 반년이 채 되지도 않았을 무렵 많이 힘들었다. 어떠한 전조도 없이 갑자기 우울함과 불안감이 찾아왔다. 먹고살아야 하는 일상을 마주하면서 많이도 괴로웠다. 그때 난 마음의 힘듦을 친구에게 전했다. 누구보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나의 힘들다는 그 문자에 친구는 긴 음성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이를 꽉 아문 채 메시지를 들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4년 만에 한국에 잠시 가는 김에 친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호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리움이 가득할 그곳을 두고 친구는 다른 일상으로 돌아갔다. 참 신기하게도 최근까지 본 사람들처럼 우리는 낯선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친구는 여전히 활기차 보였고 운동을 하다 삐끗한 허리를 잡고 반갑게 웃으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에 멀리 서라도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우리는 한국에서 다시 만나고 있지만 말이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도 밀린 이야기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나는 힘들던 시기에 상담 선생님과 나눴던 이야기들과 어떤 기분으로 지냈는지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친구는 누구보다도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았고 이해했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 힘든 시간과 지금의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상담 내내 울어 부은 얼굴로 걷고 또 걸었던 날이 있었다. 날씨가 화창했고 물가를 걷자니 윤슬이 가득 빛나고 있었다. 마음이 지쳐버려서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나를 마주할수록 내가 느끼는 건 내가 말하던 나의 모든 것들이 규정하고 있던 것들이 과거의 그 사건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때의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사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은 어느새 나를 집어삼킬 듯이 달려왔다. 내가 사라진 기분은 한동안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원망과 분노도 아니었다. 그저 전조도 없이 어느 날 찾아와 일상을 무너뜨릴 거 같은 이 우울을 나는 무서워하고 있었다. 정말로 내가 져버린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랬었다. 햇살 가득했던 그 몇 달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이런 나를 덤덤하게 이해해 주는 친구를 다시 마주한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 울음이 나려던 몇 번을 나는 잘 넘겼다. 너무 힘들었던 지난 나의 불행한 시간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어 너무 감사했다. 우리의 불행의 시간은 닿아있었다. 친구도 나도 또 어떻게든 잘 견뎌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마주하고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할 말은 너무 많은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역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마음이 겹쳐졌다. 우리가 조금은 더 단단해졌기를 언제고 다시 찾아올지도 모를 불행의 시간을 또 잘 지나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래도 이제 우리는 불행의 시간을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 스스로에게 너무 골몰하지 않으려고 한다. 붙잡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을 놓아주어야 하고 매번 모든것에 이유를 찾으려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다른건 몰라도 인복은 있는 사람이라고. 언제고 흔들리는 시간을 잡아준건 친구들이었다.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건 언제고 내가 다시 헤엄쳐 나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며칠 전 그때 걸었던 그곳을 다시 걸었다. 아마도 이맘때즈음이었다. 불행의 시간을 어쩔 도리도 없이 마주하던 일상들. 이젠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곳을 다시 걸었다. 종종 친구 생각이 난다. 처음으로 바닷속으로 들어간 나에게 파도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손을 꼭 잡고 그 파도를 마주하게 도와주던 그 친구가 말이다. 참 좋았었다. 바다들도 바다를 마주했던 우리의 시간들도.

작가의 이전글 불확실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