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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Feb 24. 2024

마음을 전하는 일

오래전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만드는 수업을 들었었다. 어떤 이야기를 가사로 쓸까 고민하다가 미용실에서의 일이 생각났었다. 어쩌다 그런 대화가 시작되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 미용사분은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었다. 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을 했었다.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어서 그 기억이 제법 오래 남았던 것 같다. 마음을 말로 바꾸는 일은 제법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니까.


같이 기뻐하는 일에 담아내는 말들은 마음들이 꾹꾹 잘도 담기다가도 위로의 말에는 담아도 담아도 담기지 않는 기분이다. 전에 같이 일했던 언니와의 오랜만에 안부를 나누던 연락에서 그제야 알게 된 속상한 일들에 나는 어떤 말로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담담한 안부 인사에 속절없이 눈물이 흘렀었다. 종종 친구들의 견뎌온 시간들을 늦게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그 시간에 함께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어떤 말을 전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글쎄 입안에서 말들을 고르고 고르다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의 오래된 친구와 내가 20대이던 시절에 친구는 긴 우울을 견디던 때가 있었다. 난 친구의 우울을 알아채지 못했었다. 내 기억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친구가 지독한 우울을 겪고 난 후 그 지독한 시간에 대한 회고였다. 나는 미용사의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했던 것처럼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 어떤 말을 전하지는 못했던 거 같다. 그러고 나서 그 일이 마음에 계속 남아 친구에게 줄 시를 쓰면서 그 이야기를 적었던 거 같다. 그때는 친구의 그 시간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왜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걸까 하는 치기 어린 마음을 품었었다. 그때도 나는 위로의 말을 힘들어하는 사람이라고 적었었다. 나에게 사랑을 받는 것과 위로를 건네는 마음은 닿아있다. 받은 마음들이 남으면 그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린 시절 나의 긴 어두움에서 어른들은 위로도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사정은 그래서 더 오랫동안 날 슬프게 만들었다.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가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누구도 헤아려주지 못하는 슬픔은 아주 오랫동안 날 괴롭혔다. 만약 어릴 때의 나도 은희처럼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아팠던 힘들었던 시간을 뒤늦게 마주했을 때 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던 거 같다. 회고의 시간을 옆에서 들어줄 뿐 어떠한 말도 얹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서 그 말들을 찾으려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친구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를 향해 글을 쓰기도 했었다. 나는 상대가 나에게 건넨 뒤늦은 시간들에 늦게나마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나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은 곱씹고 곱씹어야만 하는 일이다. 처음으로 상담 선생님에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 일에 대해서 타인에게 위로의 말을 들었다. 처음이었다. 죄책감을 가진 내 어린 시절 마음에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말이다. 가장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아주 오래전의 시간들에 전해진 위로는 허탈할 정도로 마음 한편을 부수고야 말았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의 말들이 위로의 말들이 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아직도 생각한다. 그래서 고마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별 거 아닐지언정 그렇게 하면 상대에게 가진 애정이 고마움이 닿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얼마 전 지인의 딸이 마켓에서 릭을 보고 나를 떠올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때 릭으로 만든 수프를 일하면서 배웠는데 맛이 좋아서 집에서도 만들었었다. 근처에 살던 지인에게 그 수프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수프가 맛있다며 딸이 매우 좋아했었다. 맛있게 만든 음식을 나누는 것이 나에게는 마음을 전하는 또 다른 일이기도 하다. 훌쩍 커버린 아이가 내가 만들어준 수프를 기억한다는 이야기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겨울밤에 끓여 나눠 마시던 차이라테가 그러했고 종일 한가득 만들던 라자냐가 그랬다. 내가 받은 고마운 마음들을 나누고 받은 따뜻한 인사들은 나중에 언제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 때 그 마음들이 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어두웠던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끼리는 그 시간의 슬픔을 안다. 그래서 그 시간들에 더 많은 위로를 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랜만에 긴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추운 겨울 아침에 먹던 수프가 생각난다. 물론 그때의 추위보다 지금이 더 춥지만 말이다. 수프를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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