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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Mar 28. 2024

친절이 무례함으로 돌아올 때

사람의 관계라는 게 스쳐가기도 하고 영원할 거라 믿었어도 그것 또한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타인과 나의 거리가 멀어지거나 혹은 아얘 끊어지는 이유는 심각하기보다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종종 허무하기도 하고 지독하기도 하다. 어릴 때는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고 아닐 거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먼저 등돌림을 당하기도 했었다. 스쳐 지나가듯이 만난 사람들이 불현듯 안부를 전해오기도 하고 가깝다 생각한 사람의 안부를 놓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수없이 다양한 경우의 수를 경험하다 보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길 법도 하지만 난 아직 사람 보는 눈은 없는 것 같다.하지만 다행히도 경우에 어긋나는 사람에게는 단호하게 구는 사람이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손절 하나는 잘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모든 걸 다 껴안고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정도는 하고 살아야 나의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젊은 시절의 나를 통해 배웠다.


주변 가까운 친구들은 내가 대부분의 경우를 웃으며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 언급을 하곤 한다. 앞서서 내가 손절 하나는 잘한다고는 했지만 그 상황에 이르기까지 나는 참고 넘어가는 편이다. 사실 이게 좋은 태도는 아닌데 어쩌겠는가 난 좀 좋게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이니 말이다. 상대에 대한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거리를 좀 두는 경우도 있다. 단번에 관계를 끊는 일은 드물다. 어쨌든 내가 보여주는 좋게 넘어가는 태도 안에는 몇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친절이 무례함으로 돌아올 때 나는 참을 수 없다. 무례함이란 나에게 있어 상대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끝과도 같다. 내가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수많은 부분들을 건너뛰고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버튼 같은 것이다. 무례함을 내보이는 사람들은 친절함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런 친절함을 가진 사람을 지나치게 편하게 대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무례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의 주변에는 다정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내 분노는 상쇄될 수 있는 것이다. 귀여운 사람 다음으로 다정한 사람이 좋은 이유이다.


최근 나는 타인의 무례함으로 기분이 나빴던 일이 있었다. 그저 기분이 나빴다고만 말하기엔 화가 많이 났었지만 말이다. 요 근래에는 크게 화를 낼 일이 잘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이 평화로운 것만도 아니었지만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을 쏟지 않을 뿐이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매우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크게 화를 내는 날에는 온몸의 기운이 빠지는 것 같다. 직접적으로 그 상황에 직면했을 때 크게 화를 표출하지 않기 때문에 (못한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다.) 단계별로 화가 더 커진다. 물론 상대의 무례함으로 화가 나는 경우 두 가지로 나뉜다. 초면부터 무례함을 보인 사람이라면 화는 날 지언정 원래 저런 인간이라는 나의 데이터에 의해 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 또한 아까울 지경이니까. 하지만 그 반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저지르는 무례함은 타격감이 어마어마하다. 이번 경우는 후자이지만 좋게 넘어가자는 나의 성격상 웃으며 몇 번 경고를 주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상대에게 경고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거슬리는 지점들을 뒤로하고 좋게 넘어갔건만 결국엔 굉장히 높은 게이지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무례한 언행에 나는 크게 화를 냈고 동시에 상대에게 아주 큰 실망을 했다. 정말로 사람은 입체적인 존재이다. 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좋게 넘어가준 것들을 하찮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학습이 되지 않는 것일까? 정말로 궁금하다. 분명 나 말고도 누군가는 그 사람에게 경고를 주지 않았을까 싶지만 정말로 살면서 그런 말을 해 준 사람들이 그 사람 주변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경우라면 평생을 누군가에게 무례함을 일삼으면서 살겠지 싶다. 하지만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오랜만에 씩 씩 거리며 화를 냈더니 진이 빠지고 힘이 들었다. 기분 좋게 퇴근 후 맥주를 마셔도 모자랄 인생에 화가 잔뜩 나서는 마시는 맥주라니 다시 생각해도 분하다. 며칠을 어이없는 이 일로 나는 제법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한번 내 마음속에서 훅 떨어져 버린 신용은 다시 회복되기 어렵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그 정도까지의 넓은 아량을 가진 사람은 될 수 없기도 하지만 될 마음도 없다. 무례함을 가진 사람을 품고 갈 만큼 나는 신이 아니다. 나는 신용을 잃은 사람에게는 또다시 기회를 줄 수 없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는 제법 단호하고 냉정하다. 무례함을 선보인 사람과는 어떠한 사적인 관계를 이어갈 마음이 없다. 자신의 무례함을 알고 추락한 신용을 회복하려는 사람은 나의 바뀐 태도에 질문을 하겠지만 물론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나는 다시 한번 솔직하게 말해 줄 용의는 있다. 그리고 그것이 관계가 다시 풀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또 한 번 더 설명을 하자면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 또한 드물며 그 정도의 깜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누군가는 입장의 차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선을 넘는다는 것에는 다수가 동의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말이다. 해도 될 말과 안 되는 말은 명확하다. 그러니 무례함을 내보인 사람에게는 말의 명확함만큼 명확하게 태도를 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이번 일은 내 인생에 손에 꼽을 만큼 크게 화를 낸 사건이 될 것 같다. 사람이 너무 화가 많이 나면 감정에서 끝나지 않고 그 분노가 몸으로도 온다는 것을 오랜만에 겪었다. 하지만 인생은 다정한 사람에게 받은 다정함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기에도 모자라다는 걸 안다. 당신이 나에게 무례하게 군다고 한들 나는 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당신을 등지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무례함을 저지른 당신이여 무례함이 무엇인지를 배우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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