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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pr 11. 2021

편지할게요

나의 소중한 수신인에게

  박정현의 노래 <편지할께요>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꼭 편지할게요 내일 또 만나지만 돌아오는 길엔 언제나 아쉽기만 해...(중략) 내 가슴속에 접어놓은 메아리 같은 너 이젠 조용히 내 맘을 드려요. 다시 창가에 짙은 어둠은 친구 같죠. 길고 긴 시간의 바다를 건너 그대 꿈속으로 나의 그리움이 닿는 곳까지.'

  마치 서랍 구석 소중하게 숨겨 둔 편지를 사랑하는 상대에게 정성스럽게 전달하는 느낌의 가사이다. 나 역시 손 편지를 참 좋아한다. 한 때는 우표까지 붙여서 상대방의 집으로 직접 보내기도 했지만, 요새는 우표를 사는 게 참 어색한 시대인지라 특별한 날 카드에 간단한 편지를 적어 상대방에게 전달하곤 한다.

  어린 시절 내성적이었던 성격 탓인지 언제나 말보다는 글이 편했다. 읽는 것이든 쓰는 것이든 글이면 그저 다 좋았다. 그리고 글 앞에선 솔직할 수 있었다. 특히나 편지는 대상이 확실히 정해져 있는 글이다. 그렇기에 길고 긴 시간의 바다를 건너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또한 편지의 좋은 점은 쓰는 시간 동안은 온전히 상대를 생각하며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그 노력으로 비롯된 정성 어린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보면서 밥을 먹거나,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거나, 티브이를 보며 운동을 하거나 모든 것이 멀티인 시대에 편지는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감성이 아닐까 싶다. 쓰는 동안 상대를 계속 그리며 써 내려간다. 온전하게 집중하며 한 자씩 신중하게. 생일을 축하하든, 감사인사를 건네든,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든 상대에게 나의 진심이 닿아야만 하는 과정이다. 또한 상대의 습성과 취향을 고려하며 써야 하는 글이다. 그렇기에 아주 내밀하고도 세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일수록 정성스러운 편지를 써주고 싶은 욕심이 커진다. 내가 길고도 지루하지 않게, 때로는 아끼는 구절까지 데려와 편지를 썼다면 그것은 수신인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쑥스러워하지 못한 고백들을 글로써 담는다. 사실 나는 너를 이만큼이나 아껴. 밀려오는 파도만큼, 하늘에 펼쳐진 구름만큼, 들판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만큼, 내가 표현할  있는 최대치가 이것뿐이라 미안할 만큼 너를 아끼고  아껴.

  편지를 쓸 때면 가끔 아련한 교실의 풍경을 떠올린다. 까슬까슬했던 나무 의자와 나무 책상. 분필 가루가 날리던 칠판. 네모난 나무 교탁. 열어 놓은 창문으로 치마폭처럼 휘날리는 커튼. 쉬는 시간 날리던 운동장의 흙먼지. 그 속에서 나는 모두가 하교한 뒤 저녁노을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다. 답안지를 제때 제출하지 못해 혼자 남아있는 학생처럼 외롭지는 않다. 모두가 나간 뒤 그저 차분하게 써내려 나가는 모습이다. 혼자 오롯하게 이 교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설렘을 준다. 그런 설렘의 마음으로 나는 항상 너에게 글을 쓴다.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사람은 변한다. 때로는 달라진 생각들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지. 순수했던 시절로부터 멀어진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어쩐지 서글프다. 그럴 때 나는 우리의 편지를 읽어 본다. 그 시절 순수한 생각과 마음을 가진 우리가 거기에 있으니까. 그러면 언제든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모든 글은 기록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편지는 너와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다. 서로 쌓아 올린 역사를 기록하고 추억하는 것.그런 역사를 아는 수신인이 있어 너무 기쁘다. 편지는 받을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수신인이 되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편지를 쓴다. 당신들이 있기에 나는 항상 즐겁게 편지를 쓴다. 우리의 역사가 언제까지고 계속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ps. 모두 평안하고 화창한 봄날을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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