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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도 Mar 28. 2021

[새벽 산책] 3.그는 진정 슬퍼해 본 적 없다 말했다

슬픔의 무뎌짐에 대한 단상

N은 자신이 살면서 아직 진정으로 슬퍼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슬픔이 어떤 추억으로 남는지 모른다고. 나는 N에게 슬픔은 무뎌지면서 추억이 된다고 말해 주었다. 뭉뚝하고 부드럽고 희미해지지 않으면 추억이 될 수 없다. 슬픔이 내 온몸을 장악하여 날카로운 모서리로 닿는 곳마다 찢어 대고, 내 기력과 용기를 모조리 빨아먹기 때문이다. 또한 슬픔의 한가운데에 있으면 그것의 정확한 원인조차 흐릿해져 그저 슬퍼할 뿐이다. 무뎌지기 시작할 때 즈음에야 그것을 과거의 추억으로 남길 만큼 현재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어렵네", N은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덧붙였다.
"그런데 내가 그런 슬픔과 마주하는 날은 더 먼 훗날 일 것 같아."
.
.
나는 언제부터 슬픔을 느끼기 시작했나? 슬픔은 내가 생각하고 인식하는 순간 시작되는가? 내가 슬프지 않다고 믿으면 슬프지 않은 것인가? 그러나 나는 이미 많이 슬고, 내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곁에는 나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나는 N의 말에 전혀 슬픔을 티 내지 않았고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N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다. 나에게 슬픔은 곧 외로움이다. 타인에게 공감받을 자신이 없어 안에서 태운다. 매캐한 연기가 차지만 결국 언젠가 빠진다. 그 과정은 점점 신속해지고 감쪽같아진다. 안에서 지른 매가리 없는 빗장은 그을리고 재가 묻어 점점 열기 어려워진다. 난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슬픔을 무디게 하지 못하고 태웠기 때문에, 어떻게 슬픔이 추억으로 변하는지 잘 모른다. 내 몸에는 타다 남은 파편들이 여기저기 박혀있을 뿐이다.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데도 가끔 캐내어졌다가 잿속으로 되숨는다.

N에게 언젠가 슬픔이 찾아오면 그것은 아주 큰 비극처럼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도 슬픔을 깎고 태우는 데몇 갑절의 수고가 드는데, 첫 슬픔은 얼마나 힘이 들까. N은 그 먼 '훗날'이 다가왔다고 생각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슬픔의 추억화에 대해 그럴듯한 말을 지어낸 것은 미안하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N은 내가 꾸며 냈던 말을 기억조차 못할지도 모른다. 그냥, N에게는 슬픔이 외로움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여하튼, 슬픔은 이렇게나 큰 힘이 있다. 동시에 이렇게나 가혹하고 아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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