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 여기 와서 처음으로 알람을 듣고 일어났다. 보통은 6시 전에 일어나 식당 갈 시간을 기다렸는데 피곤했는지 오늘은 새벽에 한 번만 깼었고, 다시 눈을 붙였더니 알람이 울렸다.
일어나 그랬던 것처럼 식당으로 향했고
자리를 잡았다. 어제까지 늘 앉았던 자린 이미 사람들로 차 있었고 중국, 인도, 서양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6인용 테이블 제일 끝에 자리를 잡았는데, 곁에 아무도 앉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출근을 준비하려 방으로 돌아갔더니 냉장고 위에 물병과 약병이 보였다. 뭐가 급했는지 물 한잔, 아침 상비약도 잊고 식당으로 향했던 것이다. 근 10년 만에 처음이다.
여기 와서 늘 그랬듯 8시 40분에 출근 콜을 하고 루틴에 따라 준비했는데 속옷과 양말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 중에 세탁소를 다녀오려 했는데 아직 찾지 못했고 의지 껏 나가지도 않았다. 혹시나 싶어 예비용으로 어제 신었던 양말 한 켤레를 손빨래 후 의자에 걸어두고는 로비로 내려갔다.
프로듀서가 배웅을 위해 내려왔고 차를 불러 조연출, 음악감독과 함께 출근했다.
아침 / 음악 극장 앞에서 고참 여배우 뚜엣을 만났다. 출근 전 제작 PD의 문자로 뚜엣이 가방을 잃어버려 30분 지각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정시 7분 전에 극장 앞에서 만난 것이다. 반가워 사연을 물었더니 3일 전에 잃었던 가방을 찾아오는 길이라며 안도했다. 그녀의 가방은 루이뷔통.
청소년극장 발코니에서 바라본 입구
정시가 되어 무대에 올라 배우들과 아침인사를 나눴다. 근육들 아프지 않냐고 말했더니 모두 아프다고 했다. 난 오늘도 아플 거라고 했고, 하다 보면 괜찮을 거라 말하며 함께 웃었다. 오늘 일정은 오전에 음악으로 2번 '캐츠 파라다이스'를 다시 정리하고 1번 '이페르의 전설', 10번 '출정'을 진도 나갈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오후에는 2번 '캐츠 파라다이스'의 안무 진도를 마무리 짓고 그 후 10번 '출정'의 새 안무 및 동선을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우들은 새로운 동선이 시작되는 것에 놀라했지만 웃었다.
음악감독의 진행 가운데 나는 객석으로 내려와 오후에 진도 나갈 '출정'의 동선을 살피고 준비했다. 어젯밤에 지난 공연 영상을 통해 동선을 점검했지만 대본에 구체적인 표기를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새로 문서를 만들어 패드에 붙이고 이곳 배우들의 이름을 넣어 새롭게 장면을 준비했다.
10시에는 처음으로 스태르 회의가 있었다. 접견실에서 가졌는데, 뚜안이 매니저로 어레인지 했고 조명, 음향, 영상 파트의 오퍼레이터들이 참여했다. 통역으로는 1 통역인 단미는 음악 연습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2 통역인 타오가 함께 했다. 타오는 단미의 제자인데, 나와는 처음으로 통역을 진행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전문용어, 극장 용어등에 익숙지 않아 애먹었고 쩔쩔매는 타오를 위해 몇 부분은 영어로 뚜안과 대화 나눴다. 그러나 세부사항을 확인하고 정리할 때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음향파트에 우리가 요청할 사항은 와이어 마이크 20대, 와이러스 핀 마이크 2 ~ 8대, 마이크 스탠드 20개, 보면대 20개인데 와이어, 와이러스, 핀, 핸드 등의 용어와 적응이 서로 차이가 있어 그 간단한 수량파악과 사용가능 여부를 확인하는데 30여분이 걸렸다. 오퍼레이터와 대화하다 안되어 음향 팀장이 왔고, 그와 대화하다 안되어 기술팀장이 내려왔다. 말로 서로 확인이 어려워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 보여주면 그 기종에 대한 이야기로 번졌다. 그래서 결국, 조연출이 손으로 아이스크림 비슷한 마이크 그림을 그려 그것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각 마이크의 수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여 우리가 사용가능한 마이크는 와이어 핸드 8대, 와이러스 핸드 8대 와이러스 핀 8대임을 확인했다. 보면대 17개, 마이크 스탠드 17대로 추가로 재차 확인했다.
모니터 스피커에 대해 물었더니 상부에 이미 4대가 행잉되어 있다 했고 난 추가로 그라운드 모니터 2대를 상하수에 각각 1대씩 요청했다. SFX(효과음향)를 위해 서라운드 스피커의 객석 배치를 문의했고 가능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객석에 스피커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레이턴시(공연공간의 넓이와 거리에 따른 음향 전달의 시간 차) 때문에 어렵다고, 딜레이를 계산하는 기계가 없다고 했으나 사운드 이펙트를 위한 것이기에 딜레이가 돼도 문제없다고 하자 모두 이해하고 몇 대의 설치를 원하는지 물어왔다. 개념상으로 객석 상하수(무대를 기준으로 객석에서 무대 오른편이 상수, 무대 왼편을 하수로 칭한다.) 1층과 2층에 각 한대, 2층 뒤에 2대가 필요해 6대를 원했지만, 극장에서 가능한 스피커는 4대가 전부라고 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콘솔은 32 채널이고, 기종은 확인 안 했다. 정확한 정보와 소통을 위해 테크 라이더(공연을 위해 필요한 각종 기계, 기술에 관해 기록, 정리한 자료)를 작성하기로 했고 연출부는 한국의 음향감독에게 위 사항을 요청하기로 프로듀서와 협의했다. 그 말 뜻은, 이 공연을 위해 한국에서 음향감독을 공수하기로 했다는 것이고 다행히 프로듀서가 그 가능성에 대해 이미 음향감독과 서울에서 대화했다고 말했다.
무대 미술은 최소화하려는 기본 계획에 따라 업스테이지(객석에서 바라볼 때 객석에서 먼 무대를 업스테이지, 객석에서 가까운 무대를 다운 스테이지라 부른다.) 전체를 덧마루로 쌓아 2단 차를 가지려 했다. 하여 극장 보유 덧마루 수량을 물었더니 사이즈를 묻길래 우리식으로 3X6, 4X8의 개념으로 접근하려 했다. 한참 덧마루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직접 보여주겠다고 하기에 따라갔다. 우리식 개념의 덧마루는 아니었고 간이제작 덧마루였다. 높이도 기본 사이즈도, 수량도 모두 부족했다. 다시 접견실로 돌아가 덧마루의 사용 계획과 무대 배치를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다행히 조연출이 가진 사진 중에 비슷한 공간 배치가 있어 사진을 보여주며 무대의 배치를 공유했다. 뚜안이 여러 곳에 전화했고, 다시 기술팀장이 내려와 사진과 배치도를 보며 높이와 위치 등을 물었고 그림을 통해 설명했더니 모두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기술팀장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높이는 40센티만 가능하다고 했는데 기술팀장이 내려와서는 45센티로 가능하다고 해서, 그렇게 요청했다.
회의 중에 갑자기 음악감독이 통역과 내려와 옆 테이블에서 부산스럽게 무언가 하더니 제작 피디와 함께 사라졌다.
조명은, 17대의 스페셜 라이트와 셋 터치를 위한 조명, 기본 무드 등을 얘기했는데 기술팀장은 무대그림을 그려가며 상부의 조명기 위치에 따른 구역을 설명했고 가능한 위치는 셋업 시 함께 자리 잡기로 했다. 오늘은 캐주얼 미팅으로 진행하려 하지 않았냐고 제작 PD가 농을 치자 조연출은 내게는 캐주얼이 없다고 농으로 받았다. 공식 회의를 마치고 극장 매니저 뚜안과 조명 메모리 가능 여부에 대해 대화했다. 오기 전에 제작사 기술팀장이 이곳 장비가 메모리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기에 대안은 준비했지만, 그래도 메모리가 된다면 완성도가 높아지니 물었다. 뚜안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지난번 <트롤의 아이>도 100여 개의 큐를 메모리 했다며 너희는 큐가 많지 않냐고 물었다. 이번 공연의 큐는 많지 않을 거라고 했고 약 200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문제는 조명을 담당하는 륵이 그것을 소화할 수 있을지가 염려라고 했고 메모리가 된다면 내가 륵과 함께 진행해 보겠다고 했다. 동시에 셋업 기간 중 극장을 몇 시까지 사용할 수 있냐고 물었고 사전에 요청하면 늦게도 가능하다고 했다. 밤을 새워 작업해도 되냐 물었고, 극장에서 페스티벌 시 그런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럼 나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며 서로 웃었다.
어제까지 공지받은 셋업 시작일은 8월 28일(월)부터였는데 오늘 회의를 통해 일정을 재확인했더니 26일(토)부터 가능했다. 26일 오전에 무대 배치를 진행하고, 조명 메모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됐다.
뚜안과 정치에 대한 대화 베트남 다른 도시에 비해 내가 느낀 하노이에 대한 좋은 인상을 말했고 뚜안은 하노이의 긴 역사, 그러나 지금은 소멸되고 있는 역사성에 대해 얘기했다. 어쩌다 한국 대통령 얘기를 하게 되어 윤과 문에 대해 서로의 견해차를 나눴고, 한국 통일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들었다. 분단 및 전쟁, 통일을 겪은 국가의 경험담이었고, 통일이 안되었다면 베트남이 훨씬 더 발전했을 수 있다고 뚜안은 말했다.
오후 안무 1 2번 '캐츠 파라다이스' 후반 8마디를 마무리 지었다. 아직 노래가 그 부분까지 끝나지 않았지만, 유니즌이고 어렵지 않은 부분이어서 안무진도부터 나갔다. 안무가에게 쉬는 시간에 한국에서는 이 장면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가 물었더니 4시간 한 타임이면 진도가 끝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통역이 필요한 시간, 아직 장면과 작품에 이해가 없는 상황, 뮤지컬에 대한 첫 경험인 상황을 감안하지만 날짜로는 4일, 시간으로는 약 9시간 정도 걸렸다. 서경대에 첫 강의를 나가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학생들과 만들 때 외부와의 작업 시간을 계산한 적이 있다. 1분 대 10분. 외부에서 1분 걸릴 작업이 학교에서는 10분이 걸렸었다. 그때의 학교와 지금의 여기가 겹쳐 돌아봤다.
동선 1 10번 '출정'을 배우들과 작업해 봤다. 아직 대본을 함께 읽기 전이라 장면과 인물, 상태와 상황을 설명했고 각 인물의 호흡 위치, 방향 등을 함께 묻고 답하며 장면의 리딩을 시작했다. 대본의 번역과 악보의 번역이 다르고, 영어 고유명사 IPER 이페르를 아이퍼로 발음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이페르의 발음은 아이퍼가 아닌 이페르로 통일시켰고 리딩 때는 대본의 번역을 따르도록 했다. 배우들은 리릭쇼(Lylic show, 노랫말을 음악 없이 최대한 음악적 정서와 인물의 상태에 집중하여 말로 표현하는 것)를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가사 부분을 노래로 부르려고 했다. 노래를 부르지 말고 말로 하라고 했더니 에너지 낮게 정보만 전달하려 했다. 계속 멈추고, 노랫 말이 가진 이유와 상태를 붙돋고 여러 차례 반복하며 리릭쇼의 틀을 갖춰 진행했다. 에너지를 높이라고 했더니 의지와 상태는 포함되지 않아서 의지를 담은 말의 이유와 방식을 다시 시연과 함께 얘기 나누고 반복했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시작은 했다.
우리말과 베트남말이 함께 병기된 대본
리딩 후 악보를 펴게 하고 마디별 움직임을 정리했다. 이 작업 또한 처음 해보는 것이라 속도는 더뎠고 무얼 하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따라왔다. 악보 위 동선 정리 후 다시 리딩을 반복해 장면과 노래 안에 동선이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 상상하게 하고, 모두를 일으켜 세워 무대에서 동선작업을 시작했다. 아직 이곳은 번호 마킹(무대 위의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무대 바닥에 표시한 번호)도 체계화되지 않았다. 센터표시도 없다. 가로 세로 넘버를 정하고, 그 위에 배우들을 포지션 시키고, 그 후 음악 없이 동선, 음악과 함께 동선을 반복했다. 배우들 입장에서는 정신없이 끌려다닌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방식과 시스템이 익숙해지면, 정신없음에서 순서를 찾고, 개인 작업의 준비를 이해하며 연습 무대 위에서의 협업이 시작될 것이라 생각한다.
안무 2 내 작업이 끝나고 안무가에게 돌아간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배우들은 쉬는 시간에도 무대 한켠에 모여 전 시간 배웠던 노래, 안무를 서로 맞췄고, 일정 안에 모든 것을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안무가는 배우들에게 음악과 그 안의 선을 익히게 하기 위해 다시 음악을 틀고, 배우들이 움직임 없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동선을 머리에서 정리하고, 동시에 음악도 익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베트남 청소년극장에서는 오늘 우리 한국 스태프들을 위해 저녁 회식을 준비했다. 극장에서는 원장 시티엔, 부원장, 수석 세트 디자이너 빵, 수석 배우 쯔엥, 매니저 뚜안, 음악감독, 행정실장 등이 참석했고 우리는 대표 프로듀서, 나, 제작 PD, 안무가, 음악감독, 조연출, 그리고 통역 1 단미, 통역 2 타오가 함께 했다. 장소는 맥주를 직접 양조하는 곳이었는데 가보니 내가 좋아하는 필스너 우르켈의 베트남 양조장이었다. 오늘 종일 왼쪽 눈병이 나서 고생 중이었는데, 그 맥주는 참을 수 없어 양껏 마셨다. 병을 키웠다.
시티엔 원장은 모두 발언으로 너희와 함께 하는 작업이 기쁘고 아주 많은 기대가 된다, 우리 배우들은 어쩌면 너희에게 학생과도 같을 것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너희와 함께 하면서 배우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더라. 인상 쓰고 다니지 않더라. 그들도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잘 부탁한다라고 했고 우리 측에서는 대표 프로듀서가 작년 첫 만남의 눈빛과 지금의 눈빛이 서로 다름에 우리가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화답했다.
약 3시간의 식사와 화담을 통해 사적, 공적 많은 대화를 나눴다. 토요일 오전에 진행할 안무 워크샵 발표에 대해 공지했고 극장의 지도위원들은 모두 참관하기로 했다. 또 내년에 완공될 새 극장에 대한 설명과 기대를 시티엔 원장이 말했고 그와 대화 후 내 앞에 앉았던 수석 디자이너 빵은 극장에 대한 나와 원장의 대화를 모른 채 또다시 극장 이전에 대해 얘기했다. 빵의 말속에서도 새 극장에 대한 그의 기대와 설렘이 읽혔다. 원장도 수석 디자이너도 묻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새로운 극장에 대한 기대에 또 그곳에서 만들고 싶은 일들에 대해 부풀고 들뜬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 잘 안다. 그 마음 귀하다. 아직 이들을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면 함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오래.
식사 후 원장은 걸어서 우리 호텔까지 배웅했고 내가 차를 잡아 준다 했지만 굳이 사양하며 걸어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매니저를 통해 내년 가을 우리 스케줄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