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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한다는 아들이 일반고 가게 된 속사정

진로 확신하는 아이들 얼마나 될까... 충분히 고민하고 좋아하는 걸 찾길

by 칼과나 Mar 24. 2025

아들이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학생 때 요리특성화고에 가고 싶다고 했던 아이였다. 조리사 자격증을 따려고 필기시험 준비도 하고 실제로 시험도 치고, 실기시험 준비도 했다. 하지만 요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으로 쉽게 넘을 수 있는 관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 공부 습관을 잡아가야 할 초등 고학년 시절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준비가 안 된 온라인 수업을 받아야 했던 아들이다. 그때부터 급격히 학습 습관이 무너졌다.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아무도 다잡아주는 이 없이 다른 재미있는 콘텐츠로 빠져들어갔다.


한번 무너진 습관은 좀처럼 바로 세우기가 힘들었다. 그런 상태로 시간은 흘러 어느새 고등학교 입시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특성화고 가라는 엄마 설득하는 아이


나는 아이가 둘이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나 같이 자랐는데 첫째인 딸은 그렇지 않았다. 해야할 일은 알아서 하고, 학원 스케줄이나 도서관에서 하는 활동 같은 일정이 정해지면 알아서 갔다. 공 두 개를 돌리는 저글링에 익숙해지면 공을 하나씩 추가하는 것처럼 아이는 일단 익숙해진 일상 위에 학년이 올라가면서 추가되는 새로운 일정이나 학습시간을 끼워넣어 능숙하게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런 첫째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만족스러운 내신 성적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사교육으로 단련된 아이들의 아성을 뚫지 못하는 건가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특성화고 설명회 강당. ⓒ 최혜선관련사진보기


그럴수록 학습 습관이 잡히지 않은 둘째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특성화 고등학교 설명회를 돌아다니느라 지난해 10월을 바쁘게 보냈다. 별로 내켜하지 않는 아이를 특성화 고등학교 설명회에 가보자고 설득하면서 내가 했던 얘기는 이거였다.


"고등학교 왜 가? 결국 대학 가려고 가는 거잖아? 특성화 고등학교 가면 대학 가기가 훨씬 쉽대. 누나처럼 열심히 공부해도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만족스러운 내신 성적을 받기가 힘든데, 너 지금처럼 공부해서 인문계 고등학교 가면 어떤 성적이 나올지 엄마는 걱정돼."


아이는 공학 계열의 특성화고, 무역 계열의 특성화고를 골라 설명회를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나를 설득했다.


"엄마, 나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 요리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요리를 좋아한 건지,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게 걱정인 세상에서 요리를 좋아하는 나를 좋아한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싶었던 요리에 대한 마음이 시험 준비 좀 해보고 1년 반쯤 지나서 이렇게 바뀌었는데,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지금 딱히 관심도 없는 전공의 특성화고로 진로의 방향을 좁히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뭐라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특성화고 설명회에서도 선생님이 그렇게 설명하셨다.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면 인문계 고등학교 가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배워보고 하면서 3년 더 탐색하는 게 맞다. 다만 확실한 관심사가 있다면 특성화고에 와서 그것만 집중적으로 배우고 익히면 된다고.


그러니 아이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조금 더 여러 진로에 자신을 열어놓고 배우고 탐색하는 기간을 가지는 게 맞을 것이다. 해본 경험이라고는 학교와 학원이 다인 십대 아이가 자신의 진로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나만 해도 고등학교 때 기자가 되고 싶어서 국어국문과에 진학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진로지도 교수님과 상담을 하다가 '기자가 되고 싶다'는 너의 목표는 진짜 니가 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막연한 환상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니 내가 되고 싶다는데 왜 교수님이 진정성을 판단하세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딱 그 나이만큼 더 사회 생활을 하고 난 지금에는 교수님이 그때 진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쓴소리를 해주셨구나 생각한다.


이십대 때 내 주위에는 성적이 좋아서 성적에 맞춰서 전공을 정한 친구들이 있었다. 한 친구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교대나 사범대에 가기에는 점수가 아깝다고 할 만큼 수능 성적이 잘 나왔다. 그렇게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했던 친구는 취직해서 팀장까지 하다가 다시 수능을 쳐서 수학교육학과를 다시 전공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약대를 나오고 대학원까지 나와서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던 선배는 끝내 다시 수능을 봐서 의대에 들어갔다. 지금은 종합병원에서 의사로 일한다.


높든, 낮든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결국 몇 년이 걸려 다시 길을 찾아가는 걸 보면서 나는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 말고 아이가 좋다고 하는 것을 찾도록 도와줘야지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걸 알고 선택하는 사람이 되길


▲요리 필기 시험 치러 가는 아이. ⓒ 최혜선관련사진보기


어떤 책에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무엇을 하는지를 돌아보라고 하는 글을 읽었다. 그 관점으로 보니, 아이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자기 방에 있는 운동 기구에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제 아이와 함께 알아보고 있는 진로는 체육 쪽이다.


체육을 선택한다고 해도 후에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고 그것이 정답이라는 보장도 없다. 십대, 이십대에 열렬한 연애를 했더라도 결혼은 혼기가 찼을 때 만난 상대와 하는 것처럼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에 눈에 들어온 무엇인가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선택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선택한 것을 나중에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도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해본 경험이 있으니 그때가 오면 다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선택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자기가 선택한 답을 정답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일 뿐이니 그렇다면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면 좋겠다. 설사 그것이 나중에 틀린 것이 되더라도. 그때는 또 그때 옳은 것을 선택하면 될 테니까.


7세고시를 만들어내는 세태, 미리 짜놓은 대입까지의 로드맵 같은 것은 주지 못하는 부모지만,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일,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 나에겐 어렵지 않은데 남들에게는 힘든 일이 무엇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찾아가는 경험은 넉넉하게 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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