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은 금요일이고 우린 아직 안 잘렸어

by 칼과나


25년 2월 18일이었다. 우리 부서의 많은 직원들이 퇴사하도록 통보받은 날이. 기존 조직에서 4명이 남게 되었는데 그 중 두 명은 다른 부서로 배치되었다. 그러니 원래 우리 부서에 남은 한국멤버는 나와 같이 일하는 대리님 두 명인 것. 비슷한 일을 하는 멤버들이 타이완, 싱가포르에 각 한 명씩, 함께 일을 한 적은 없는데 이번 조직 개편 후에 같은 팀이 된 일본 멤버가 된 둘, 이렇게 6명이 모인 부서가 되었다. (이 부서를 가팀이라 하자) 그러니까 나는 A팀 산하의 가팀 소속인 것.


그때 적은 글은 뒤에 링크.(이웃공개)


1497581.jpg?type=w966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6개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새로운 팀(A라 하자) 분위기에 동화되어 보려고 애썼고, 새로 속한 팀의 메인 잡과 관련 있는 업무를 해보려고 타진하는 중이었다. 원래 일하던 가팀은 사내에, 혹은 파트너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던 팀이라 내 타임슬롯이 많이 팔려야 좋은 거였다. 그러니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리뷰 의뢰를 많이 받아 다른 팀들이 내 시간을 많이 사주면 좋은 것. 다른 부서원들이 퇴사하게 된 것도 더 이상 그들에게 일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새로운 나의 보스(=가팀의 보스)는 내가 외부 일을 하지 않고 팀 내의 일을 찾아서 뿌리내리기를 바랬다. 그러니까 나보고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오라고 하지 않는 보스. 니 생활비는 내가 낼테니 집안일을 잘 해주길 바라는 보스였던 것이다.


가팀이 속해있는 A팀은 영국, 미국,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에 멤버들이 퍼져있고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한 팀이라는 감각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인지 한 달에 한 번은 사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툴로 부서원들끼리 casual talk 미팅도 있고(미국/일본 friendly 시간 대로 두 번), 한 달에 한 번 하는 부서회의에서는 한 명씩 취미나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도 차례로 이어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내 차례도 오겠지 하면서 설레발도 쳤었는데(뒤에 링크) 또 두어 달에 한 번씩 발행하는 사내 저널도 있어서 나도 열심히 나의 취미와 일 외에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글을 영어와 일어로 써서 보내곤 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집에 갓 들어온 부엌데기에서 벗어나 A팀의 당당한 팀원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다가 그놈의 조직개편이 또 있었다. 내 블로그에 조직개편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글이 어언... 몇 개이던가... 무튼 그 조직개편의 결과, 내가 (속한 가팀이) 속한 A팀이 원래 속해있던 영업조직에서 빠져나와 기술조직에 속하게 되었다. A팀은 우리 플랫폼으로 제품을 출시하고 싶어하는 글로벌 파트너를 지원하는 조직이었으므로 이익을 얼마나 벌어들였느냐를 중시하는 영업조직에서 빠져나와 우리 회사의 기술개발을 담당하는 조직에 들어가게 된 것을 A팀 리더인 철수씨(외국인 주의)는 잘 된 일이라고 들떠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철수씨가 간과했던 게 하나 있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면 뭘 한다? 그 팀 리더들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들여다본다. 첫 100일 간 자신이 새로 맡은 조직의 모든 리더들을 만나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한 기술조직의 리더가 100일 간의 스터디 끝에 조직 개편을 발표한 것이다.


조직 개편의 결과 내가 속한 가팀은 A팀에서 빠져나와 O팀에 배정되었다. O팀에 배정된 것도 배정된 건데 A팀 팀장 철수씨는 글로벌 파트너들을 지원하기 위해 알토란 같이 구축해놓은 하드웨어팀, 운영팀, 분석팀을 모두 기술조직의 이 팀 저 팀에 나눠주고 본인은 혼자 남게 되었다. 말이 좋아 파트너 정책에 집중한다고 하지만 그냥 팀원을 다 뺏기고 뒷방 늙은이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멀지 않아 그 분의 퇴사소식을 듣게 되는 건 아닌가 불길한 예감도 든다.


A팀의 마지막 먼슬리 미팅에서 철수씨는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미리 뭔가를 전해듣지 못하고 불시에 통보만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악마 편집장 매릴 스트립이 세 번째(맞나?) 이혼으로 너덜너덜해져서 That's all.을 뇌까리던 모드로 10분만에 회의가 끝났다.


불과 몇 달 전 내 눈에 점령군 같아 보였던 그가, 몇 달 후에는 패잔병이 되는 이런 상황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회사생활이 점점 다이내믹해진다. 조직개편까지 걸리는 반감기도 점점 줄어든다. 25년 2월에 한 번 뒤집어 엎었으니 한 3년은 이대로 가지 않겠나 했는데 6개월만에 또 한번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와중에 사무실도 핫데스크(정해진 자리가 없는) 시스템으로 레노베이션을 한다고 하고, 우리 업계를 관장하는 법안도 개정한다고 하고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올해 2월에 함께 퇴사하신 부장님 생각이 많이 나는 요즘이다. 그분 나이까지는 회사에 다니고 싶은데... 그래야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대비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텐데... 하고.


오늘도 타이완에 혼자 남아있는 멤버 S에게 물었다.


How are you doing?(잘 지내시는가...)


이런 저런 대화의 끝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It's Friday and we still have a job.

image.png?type=w966

그러게. 오늘은 TGIF고 우린 아직 일자리가 있다.


Who knows what the future holds?...


매일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도 AI에 밀려 직장에서 잘릴까봐 쫄려하고, 조직 개편에 이리 저리 잘려나가는 도마 위 생선 같은 신세인 나는 아이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주고 있을까.(이 얘기는 to be continue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국과 홍콩과 대만과 싱가포르의 예스, 노, 메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