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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의 웨딩홀 부페 아르바이트

by 칼과나


갈롱쟁이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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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는 용돈은 항상 모자랐다. (하긴 주 13000원은 너무 짜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한달 식비 20만원은 따로 준다.) 그래서 계절마다 옷을 사는 데 쓰는 allowance를 7만원 정도 배정했다. 넉넉하지 않다는 건 안다. 다만 티도 고무줄 바지도 후드티도 고등학생이 수수하게 입을 정도는 만들어줄 수 있는데 그걸 마다고 사입는 거니까 너도 나도 아쉬운 정도에서 절충하는 것이지.


아이는 양가 조부모에게 가끔 받는 용돈에 4계절 의복구매 보조금을 더해 어떤 때는 옷을 사고 어떤 때는 신발을 샀다. (닥터 마틴, 팀버랜드를 장만하심) 그리고 언제나 위시리스트는 그것보다 7.9배 정도 더 쌓여있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알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찾고 구하는 앱에 자기소개서를 올리고 쓴 자기소개서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괜찮아 보이는지 물었다. gpt와 함께 썼다는 아이의 자소서에는 정답처럼 보일 표현들로 가득했다.


경험은 없지만 열정은 가득하다는 둥. 체력과 열정이 준비되었다는 둥. 아이가 쓴 미사여구를 읽으며 같이 웃었다. '소올찍히 체력은 준비됐다고 말하기 좀 그렇지 않니?' '그렇게 써야 연락이 오죠.' 주거니 받거니 하며 몇몇 띄어쓰기와 오타를 수정해주었다.


아이는 '학력무관'으로 일을 찾았다. 현재 중졸이기 때문이다. 학력무관 일을 찾아도 19세는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이는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떤 난관이 있어도 끈질기게 해내는 편이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서 가능성을 본다. '에이 몰라, 안 할래. 귀찮아'보다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방구가 잦으면 어쩐다고 했던가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다. 웨딩홀에서 알바를 하는 친구가 있다며 친구 소개로 일하러 가기로 했단다. 내가 허락하는 조건은 심플했다.


1. 주 1회만이다.


2. 번 돈의 30%는 주식 계좌에 넣는다.


아이가 말했다.


"보통 친구 엄마들은 허락 안 하던데?"


"구뤠? 어차피 너 주말에 공부도 안 하는데 놀면 뭐 하니. 그리고 하고 싶다는 거 말리고 그럴 거 뭐 있어. 일찌감치 사회의 (쓴) 맛을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최저시급의 세계를 경험해보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쪽으로 결심할 수도 있고 의외로 괜찮은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의외로 괜찮은데 싶다면 일찌감치 돈 버는 족족 모아서 자산을 불려보는 것도 괜찮아. 세계 제일의 부자라는 워렌버핏이 유일하게 후회하는 게 좀 더 일찍 투자를 시작하지 않은 거라잖아."


아이에게 또 한 가지 해준 말이 있었다.


"엄마가 학교 갈 때는 깨워주고 태워주지만 알바는 달라. 스스로 일어나는 훈련을 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거든. 늦어서 잘리면 뭐 할 수 없고."


아이가 일하러 가기 전 날, 내일 아침 저 녀석을 끝내 안 깨워주면 일어났을 때 이미 지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놈 자식?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서 집을 나섰다. 부아가 조금 치밀었지만 가라앉혔다.


'맞아, 고등학교 첫 등교 때도 한 일주일은 일찍 일어났었지.'


9시반까지 집합, 밤 9시까지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고 오기로 하고 나갔다.


웨딩홀 알바라고 해서 부페 돌면서 빈 접시 치우는 알바인 줄 알았더니 빈 접시를 가져오면 남은 음식을 짬통에 버리고 이모님들이 식기세척기에 넣을 수 있도록 넘겨주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짬통이 가득차면 120kg에 달하는 통을 밑에 내려놓고 오는 게 하루종일 한 일이라고 했다.


첫날이라 9시 마감까지 일하지는 않고 7시쯤 끝내고 왔다. 어딘가에서 수수료를 떼가고 아이 통장에 들어온 돈은 77000원이라고 했다. 30%는 23100이다.


아이는 그 돈을 보내기를 무척 주저했다. 하루종일 몸에 짬냄새 쩔어가며 일했는데 손에 들어오는 돈이 5만원이면 좀 허무하다는 것이다.


"응, 7만7천원이어도 허무하긴 마찬가지야. 그리고 엄마도 계약서 상의 연봉은 훨씬 많아. 국민연금 내고 건강보험료 떼고 소득세 떼고 받으니까 훨씬 적은 돈이 되는데 그거 가지고 사는 게 직장인의 유리지갑인거야."


그리고 번 돈에서 일정액을 저금하도록 하는 것이 엄마만의 이상한 요구는 아니라는 것을 어필할 썰을 풀기 시작했다.


"엄마 직장 동료 중에 미국에서 대학 나와서 영어 엄청 잘 하는 사람이 있거든? 근데 우리 회사 들어오기 전에 강남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알바를 했대. 처음에는 그냥 출결 확인하고 숙제 체크해주는 보조로 들어갔는데 영어를 워낙 잘 하니까 학원에서 반을 맡겼대. 그때 그 동료의 엄마도 50%는 저축하라고 했다네? 그랬더니 2000을 벌어서 1000을 저축하고 1000을 써제꼈다는 거야. 물건이 남은 것도 아니고 여행을 간 것도 아니고 친구들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하다보니 카드값만 천이 나왔대. 그런데 왜 계속 그 생활을 하지 않고 월급 훨씬 적게 주는 우리 회사에 취직했을까?"



슈가 말했다.


"안.정...성...?"


"고러췌."


"근데 엄마 회사 보니까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던데?"


(뜨끔)


"아, 여기서 안정성이라는 게 절대 안 잘린다 이런 거라기보다는 삶이 안정된다는 측면인거야. 학원선생님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더래. 오후 4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해야 되는데 미국 유학 가려고 하는 애들 자소서 써주고, 면접 대비하게 하는 과외도 하고 돈 많이 받는 만큼 시도 때도 없이 갈려들어가야 해서."


"무튼 모을 때는 쓸 돈 적어서 아쉽지만 처음부터 내가 번 돈은 이게 전부다 생각하는 게 이로와. 어차피 니가 그 돈 가지고 뭐 하겠니, 밥 사먹고, 옷 사입고, 다 공중에 날아갈텐데."


아이의 첫 알바비의 30%인 23100원이 아이의 주식 계좌에 들어갔다.


아이는 짬통 알바는 허리 아프고 냄새난다며 커피전문점이니, 집 근처 고깃집 알바를 알아보고 있다.


주말마다 알바를 하러갈지, 이번 한번만 하고 말지 알 수 없지만 기록해 둔다.


아이가 경험한 첫 최저임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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