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차입니다."
"이미 하차 처리되었습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앞두고 누군가 카드를 두 번 태깅한 모양이다,라고 생각한 순간 다시 들려온다.
"이미 하차 처리되었습니다."
연속 두 번이다.
흘낏 보니 하차문 바로 앞 좌석에 앉은 노신사가 연신 카드 단말기에 태그를 하고 있는 듯했다.
1년 전만 해도 '왜 저래?' 했을텐데 '그럴 수 있지. 불안하지.' 속으로 끄덕인다. 나도 얼마 전에 집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후에 내려 지하철을 탔을 때 환승할인 못 받고 생으로 지하철 비용이 결제된 적이 있다. 지하철 직원분에게 카드를 넘겨주고 확인을 부탁했더니 버스에 탄 흔적만 있고 하차 태그가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확인해 주셨다. 아니 이건 진짜 억울하다니까. 나 분명히 찍었다구. 하차입니다 소리도 들었는데... 하지만 어쩌랴. 카드 태그가 안 되었다는데. 아쉬운 마음을 접고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버스에서 내릴 때 신경이 곤두선다. 나 찍은 거 맞지? 나 찍었다? 내 생각의 행방에 이정표를 찍어놓기 위해 자꾸 생각한다. 분명히 찍었어. 그러니까 다시 찍을 필요 없어. 자신을 다독이며 단호히 내려놓고 개찰구에 들어서기 전에 또 쫄린다. 또 1550원 생으로 찍히는 거 아니야? 환승할 때마다 짜릿한 위기감. 이것도 도파민 중독이에요?(아님)
그런 마음상태인 요즘이라 하차 태그를 하고 또 하는 그 어르신의 마음이 몹시 공감이 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운동하고 나서 샤워할 때도 종종 그런다. 샤워용품을 넣어두는 라커에서 샴푸와 세안제 등을 챙기지 않고 샤워실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 로커 열쇠 꽂아두고 그냥 나왔다가 로비에서 깨닫고 돌아가기, 샤워실에 도복바지 개놓고 그냥 나오기, 그걸 집에 와서 깨닫기, 도장에서 샤워실로 도복 입은 채로 넘어오면서 운동할 때 입고 온 옷은 도장에 두고 오기(샤워하고 나서 뭐 입고 집에 갑니까...) 세면도구 물기 닦는다고 샤워실 입구에 세워두고 그냥 가기 기타등등 물건 흘리기 에피소드는 셀 수도 없는데 최근에는 더 아찔한 것을 까먹는다.
탕에 들어갔다가 이제 나가려고 하는데 잠깐만, 샴푸만 했는지 린스까지 했는지 기억이 안 나버리는 거다. 이러다 약도 두 번 먹겠어...
추석에 엄마랑 목욕 갔다가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에 목욕탕에 구급차가 왔다 갔는데 이유가 귀에 꽂은 면봉 때문이었단다. 어느 어르신이 씻고 나서 면봉으로 귀구멍의 물기를 닦다가 전화가 오니 귀에 면봉을 꽂아놓은 채로 전화기를 열고는 귀에 가져다 댔다는 거다. 바로 쓰려져서 구급차에 실려가셨다는 후문이다.
아니 어떻게 면봉으로 귀구멍 후비고 있던 걸 잊고 그 귀에 전화기를 갖다대지? 라는 의구심이 든다면 당신은 아직 기억력이 쌩쌩한 것이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나서 샤워 후 면봉을 쓸 때마다 생각한다. 얼마든지 까먹지. 암만... 그러니까 기억해, 넌 지금 면봉으로 귀를 후비고 있었어. 귀에 꽂아두지 말고 반드시 버린 다음 다른 행동을 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둔다.
요즘 정신머리가 참... 기억력이 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성 갱년기 증상 중 하나가 건망증이라네?
뭐 어차피 갱년기 증상도 노화 중 하나니까 같은 식구인가...
엄마가 그랬다. 바로잡을 수 있는 거면 괜찮은 거라고. 아무 일도 없는 거라고.
그래 손발만 좀 더 움직이면 되는 거는 아무 일도 아니다.
손발이 튼튼해지는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안 움직여서 탈이다. 엣헴.
(산으로 가는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