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Vestiaire Collective에서의 경험
지난 칼럼에서 말씀드렸듯 더운 날에는 에어컨 바람 밑에서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게 가장 재밌습니다. 약속 없는 주말이면 맥주 한잔 가져다 놓고 땅콩 집어 먹으며 편안한 차림으로 전 세계 리셀 마켓 곳곳을 누빕니다. 이베이로 뉴욕을 갔다가 옥션으로 도쿄에 한 클래식 샵에도 가봅니다. 크롬 번역기는 완벽하진 않지만 문맥상 이해가 될 만큼 번역해 줍니다. 각 나라의 인기 많은 리셀 사이트에 방문해 여러 브랜드를 보는 건 각 나라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성향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일본은 사이즈가 작은 편이고 대부분 옷의 상태가 깨끗합니다. 미국은 사이즈는 다양한데 큰 매물이 많고 브랜드가 다양한데 비해 옷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유럽은 딱 그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물이 적은 편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리셀을 모아 놓은 사이트가 생겨서 1년 전부터는 여기를 관심 있게 둘러봅니다. 'Vestiaire Collective'라는 사이트인데, 버려지는 옷을 최대한 줄이고 중고 거래를 통해 지속가능한 패션을 이어나가는 것을 슬로건으로 하는 프랑스 회사의 중고거래 사이트입니다. 이 사이트의 가장 큰 장점은 정품 검수 기능이 있어 판매자가 올린 상품의 정품 유무와 퀄리티를 확인하여 이를 구매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가의 상품을 구매하면서 생기는 가품 여부를 명확하게 가려주면서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의 장점은 중고 거래, 특히 전 세계적으로 거래하는 중고 거래는 가격을 떠나 퀄리티와 진품 유무가 중요합니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장점이 큰 사이트입니다.
필터링으로 원하는 요소를 (브랜드, 사이즈, 컬러 등) 명확하게 솎아내면 꽤 양질의 아이템이 나옵니다. '톰포드', '46 사이즈', '브라운 컬러 혹은 아이보리 컬러'... 나열되는 매물을 천천히 보면서 그간 톰 포드의 컬렉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어떤 걸 많이 샀는지, 어떤 컬러를, 어떻게 입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의 중고품을 보는 것은 이런 재미가 있습니다. 브랜드에 어떤 것을 소비하는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리고 누가 구매하는지 말입니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런 조사는 꽤 재밌는 결괏값을 알게 해 줍니다. 아, 물론 전 구매하고 싶어서 검색을 했습니다.
그렇게 검색을 통해 3페이지쯤 넘어가다 한 물건이 단번에 눈에 띄었습니다. '톰포드', '브라운', '실크', '한 번도 입지 않은'. 가격은 120만 원. 톰 포드 재킷이 보통 300만 원 이상 하니 중고 거래로 나쁜 가격은 아닙니다. 게다가 '한 번도 입지 않은'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클릭 그리고 사진으로 가격택이 달린 것을 확인하고 글을 천천히 읽어봅니다.
번역하면 "모헤어와 실크 소재의 멋진 톰 포드 아티쿠스 모델 블레이저입니다. 원단은 약간 우아하게 광택이 나며 화려한 저녁과 행사에 적합합니다. 사이즈는 46R이지만 48에도 맞습니다(저처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디테일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온라인에 올린 시점, 한 번도 입지 않았고, 주요 소재는 실크, 컬러는 브라운, 그리고 이탈리아의 Riccardo 씨가 보내는 상품입니다.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저 멀리 이탈리아에 있는 톰 포드 재킷을 구매할 생각을 합니다. 한국에서 이거 구매하려면 120만 원은커녕, 300만 원 이상을 주어야 할 겁니다. 네, 구매를 합니다. 저 120만 원에는 배송비와 관세까지 포함된 금액입니다. 물론 브랜드의 옷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가능한 빠른 결정입니다.
구매를 하면 위와 같이 진행 절차가 나타 합니다. 판매자는 오더를 확인하고 Vestiaire Collective 측에 상품을 보냅니다. Vestiaire Collective에 상품이 도착하면 '정품 검수'를 하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자신들의 검증 완료 Tag을 부착 후 구매자에게 배송을 시작합니다. 시간은 보통 14일 정도가 걸리지만 명확한 검수를 통해 온다는 점에서 퀄리티에 대한 걱정은 없습니다. 국내에서 주문한 것이 아니니 국제 택배를 평온하게 기다립니다. 한 달이 조금 안되고 상품이 도착합니다. 두근두근-
도착한 재킷은 잘 포장되어 있습니다. 페덱스 국제 화물을 통해 10일 만에 왔습니다. 주문한 지 10일 만이니 이탈리아에서 오는 것치곤 꽤 빠릅니다. 보통 파페치, 미스터 포터 같은 해외 구매이지만 빠른 배송을 자랑하는 사이트도 7일 정도는 걸리는데, 정품 검사까지 하고 10일이니 신속한 편입니다.
재킷의 소재는 모헤어, 울, 실크가 섞인 고급 소재입니다. 브라운, 블랙이 섞여 오묘한 멜란지 컬러로 만들어진 소재는 터치가 톡톡합니다.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한 실크, 울 느낌이 아닌 다소 종이처럼 뻣뻣한 느낌입니다. 이는 위에 판매자가 작성한 것처럼 파티에 어울릴 법한 소재입니다. 소재가 살짝 뻣뻣하다 보니 각이 살아있어 착용하면 멋지게 테일러링 된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광택이 적당히 들어가 있어 낮보다는 밤이 더 존재감을 멋지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착용의 흔적도 없고, 소매 단추가 달리지 않은 언피니쉬드 (착용자의 팔길이에 맞게 소매가 수선되지 않고 단추를 동봉하여 판매하는 스타일. 주로 고급 브랜드에서 행하는 기법) 소매로 확실히 새 상품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20만 원에 이 정도 퀄리티라니, 정말 제대로 좋은 물건을 구매했군요.
그런데 이 재킷 어디선가 본 것 같습니다. 네, 아래 사진에 나오는 광고 컷에 아이템입니다. 본래는 팬츠까지 있는 슈트 모델인데, 제가 구매한 것은 재킷뿐입니다. 팬츠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광택까지 있는 아이템을 한 벌로 입고 다니는 건 살짝 무리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어쨌든 광고 컷에 나올 정도로 중요한 아이템을 저렴하게 (톰 포드 기준에서는) 구매했으니 수선을 맡기러 갑니다.
톰 포드 옷을 구매한 후 수선을 안 한 적이 없기에 (보통 수선은 거쳐야 하는 브랜드이긴 합니다. 특히 제가 대부분 구매하는 것이 슈트와 재킷이니까요.) 전문 수선샵 '더명품사'를 방문해 수선을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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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을 마친 상태입니다. 소매를 제 팔에 맞게 길이를 수선하고, 총장을 살짝 줄였습니다. 사실 총장을 줄이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지만, 톰 포드 브랜드 특유의 긴 기장이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 구매하는 것이지만) 키가 작은 저에게는 무리가 조금 있습니다. 딱 2cm만 줄였는데, 조금 마음이 아픕니다.
이렇게 수선을 마치고 나니 온전한 저의 재킷이 되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이 되면 이 재킷에 블랙 트라우저, 그리고 화이트 셔츠를 입고 외출을 하려 합니다. 파티까진 아니더라도 마티니 마시러 갈 때 정도에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Vestiaire Collective에서는 벌써 2번째 구매입니다. 지난번에는 톰 포드 재킷을 80만 원에 구매했었습니다. 심지어 그 재킷도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상품이었습니다. 벨벳에 카무플라주 패턴이 들어간 턱시도였는데 이렇게 희귀하면서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니 꽤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발품을 팔면서 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도 있고, 득템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긴 여름이 아직 끝나지 않았네요. 오늘 밤에는 맥주 한잔에 월드와이드 동묘시장을 구경해 보는 건 어떠신가요. 저처럼 득템 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