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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엔터 Aug 09. 2023

시고르자브종의 회고록에 덧붙여

우당탕탕 귤엔터 3화 잔디밭 뒹굴며…맘껏 누릴 수 있는 삶이 대물림되길


지난 칼럼 ‘시고르자브종의 회고록’은 쓰레기와 오물이 널브러진 마당에 묶여 지내는 개, 감귤이 시점으로 작성한 이야기이다. 국내 최초 강아지 아이돌 콘셉트로 입양홍보를 했던 ‘제주탠져린즈’의 어미개가 바로 감귤이다. 그 마당은 ‘제주탠져린즈’가 태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한 주민으로부터 그 마당에 개들이 원래는 더 많았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서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학대, 유기, 방치되거나 도움이 필요한 개와 동물의 이야기를 많이 접해왔다. 하지만 그 마당을 거쳐간 개들의 생애를 따라가며 우리는 이 불행이 아주 오랫동안 대를 이어져오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시골 잡종 개들의 고단한 삶이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번 지면 관계상 삭제했던 이야기, 너무 전형적이라 오히려 넣지 않았던 이야기를 덧붙여보려 한다. 마당에는 원래 성견 7마리가 묶여있었다. 낯선 사람과 개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던 황구 한 마리는, 어느 날 목줄이 풀려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을 경계하던 개라 아직 잡히지 않았다면 들개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한다. 제주도 유기견이 많은 이유로 “육지에서 온 관광객이 버리고 간다”는 설이 돌지만, 실제 제주도 유기견은 대부분 이 황구와 같은 경로로 발생한다. 호랑이 같은 멋진 반점을 가졌다는 감귤이의 어미 개를 우리는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주인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몇 번이나 줄이 풀렸고 큰 개가 풀려있으니 신고도 여러 번 당해 구급차가 출동한 적도 있다고 했다. 결국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는데, 한 주민은 보신탕집에 간 것이라고 확신에 차 말했다. 우리가 자몽이라 이름 붙인 9개월 강아지는 1월 무렵 새끼 7마리를 낳았다. 우리는 이 새끼들을 ‘제주탠져린즈’를 잇는 ‘제주만다린즈’라 이름 붙이고 가족을 찾아주고 있다.


추운 겨울 마당에서 홀로 출산한 자몽이


주인 할아버지는 정말로 개를 좋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건 동네 주민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였던 것이, 그는 매일 끼니때마다 햇반과 참치 캔을 마릿수에 맞게 사다가 사료에 비벼 주었던 것이다. 그의 말로는 개들 식비로 한 달에 200만원도 넘게 든다고 했다. 조금 과장되어 있겠지만, 가끔은 특식이라고 라면을 주기도 했으니 라면, 햇반, 참치 캔 값을 마릿수에 맞게 계산해보니 얼추 비슷한 금액이 나왔다. 그는 사고로 잠깐 입원해있는 와중에도 개들 밥을 주기 위해 택시를 타고 와서 챙겨주었다고 했다. 자꾸만 태어나는 새끼 강아지로 골치를 썩을 때마다 주변에서 “개장수에게 넘기라”는 말도 들었지만, “보신탕거리로는 절대 안 된다”는 그 나름의 철칙도 있었다. 개를 좋아해서 본인의 감귤 농장에도 개를 키우다가 자꾸 새끼를 낳아 곤란하던 차에 어느 날 말 농장을 한다는 사람이 큰 트럭에 개들을 다 싣고 갔다고 했다. 정말 말 농장 사람이냐고 물으니 사실은 잘 모른다고 했다. 중성화 수술 같은 건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했다. 묶어두기만 하는데 왜 자꾸 임신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지난달 이 개들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며 건강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가장 나이가 많은 네 살 된 온주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던지라 자궁에 물이 차있었고, 이제라도 수술을 하게 된 게 다행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5마리 성견 모두 예상했던 대로 심장사상충 양성을 확진받았다. 심장사상충은 밖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쉽게 걸리는 병이지만, 매달 약을 챙기면 예방하기 쉬운 병이었다. 죽은 탱자가 전염병으로 죽은 것 같다고 주인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리며 매년 꼭 예방접종도 해야 한다고 하자, “중성화 수술에 접종까지 개 키우는 게 너무 복잡하고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매일 밥을 챙겨주는 것도 이제는 힘들다며, 새끼 강아지들처럼 큰 개들도 얼른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감귤이는 몸을 낮추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오래도록 쓰다듬을 받았다.


전염병이 돌며 성견들이 좀처럼 사료를 먹지 않아 고민하면서 마당을 서성이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주민이 양손 가득 비닐봉지에 싸온 것을 아이들 밥그릇에 쏟아부었다. 고등어조림 찌꺼기와 먹다 남은 김밥이었다. 아파서 입맛이 없는 줄 알았던 개들이 그것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걸 보면서 기운이 쭉 빠졌다. 어쩐지 비싼 캔 사료를 아무리 비벼줘도 먹지를 않더라니. 비법은 고등어조림이었구나! 사료가 먹고 싶지 않을 만했다. 오랫동안 사람 음식을 먹어왔으면 간이 많이 망가져 있을 텐데 앞으로 치료를 앞두고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는 수의사의 당부도 있던 터라, 잔반을 주는 주민들을 마주칠 때마다 앞으로 잔반은 일절 주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개중에는 “옛날에는 다 이런 거 먹었어”라고 말하며 시간을 내어 불쌍한 개들을 위해 챙겨온 호의를 거부당해 기분 나쁜 내색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개가 사람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 줄 몰랐다며, 그럼 뭘 먹여야 하고 어디서 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분도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과자를 주는 사람, 사람이 먹는 우유에 스팸을 비벼서 들고 오는 사람도 만났다. 마당개들은 무지로 인한 학대의 모호한 경계 속에 살고 있다.


파보 바이러스를 가장 심하게 앓았던 조생이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입원 치료 후 컨디션을 회복하였다. 겨우 회복한 조생이를 다시 마당에 데려다 놓을 수 없었다. 그럼 다시 다른 병에 걸릴 것만 같은 곳이었다. 안전한 곳에서 심장사상충 치료를 마치고 반려견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실내 임시보호처를 구했고, 운 좋게도 좋은 임보자님을 만나 조생이는 지금 집에서 인간과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도록 묶여 살던 아이와의 산책이 왜 이렇게 평화로운지 모르겠어요.” 초록 풀밭 사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조생이의 사진을 보내주며 하신 말이다. 그 사진을 보자 조생이를 처음 마당에서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에 조생이는 훨씬 크고 예민해보였고, 더러워서 솔직히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집 안에 있는 것보다 마당에 묶여 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최근 단정한 침대 위에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는 조생이의 사진을 보면 원래 그렇게 살았던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며칠 전에는 비가 내리자 바깥에 나가기 싫어했다고 한다. 비 맞기 싫어하는 마당개라니. 나고 자라 평생을 짧은 줄에 묶여 내리는 비를 속절없이 맞아야만 했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국내 최초 강아지 아이돌 콘셉트로 입양홍보를 했던 일곱 강아지 ‘제주탠져린즈’의 엄마개 감귤이. 1m 목줄에 묶여 내내 갇혀 살던 감귤이가 생애 첫 산책에 나섰다.


며칠 전 온주와 감귤이의 생애 첫 산책을 해주었다. 1m 줄에서 벗어나자 온주는 먹고 쉬는 곳을 벗어나 그저 마당 구석의 풀숲으로 가더니 배변을 했다. 감귤이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몸을 낮추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오래도록 쓰다듬을 받았다. 얼마 전 반려견 금배와의 산책 중에 늘 사납게 짖는 마당개의 목줄이 끊어졌던 일이 있었다. 몸을 던질 듯이 무섭게 짖던 아이는 줄이 끊어지자마자 우릴 지나쳐 잔디밭으로 달려가더니 바쁘게 냄새를 맡고 잔디에 몸을 뒹굴었다. 한참을 주인 손을 요리조리 피하며 잔디밭을 누볐다. 묶여만 지내는 아이들의 욕망이 이다지도 볼품없고 소박하다니. 최근 제주에서는 입과 발을 뒤로 포박하듯 묶어 방치된 개가 발견된 데 이어, 코만 빼고 땅속에 묻혀 있는 개가 발견되는 등 잇따라 동물학대 사건이 일어나 공분을 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건에 더욱 분노하는 데에는 동물학대 범죄가 대부분 불기소 처분되거나 벌금형에 그친다는 점도 있다. 살아있는 동물을 때리거나 산 채로 땅에 묻는 것조차 아직 처벌받아 마땅한 폭력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제주탠져린즈와 마당개들의 주인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가 대단한 악인이 아니라 개들을 위해 한 달에 200만원이나 쓰면서 나름 열심히 돌보는 사람이라는 것에 놀란다. 주인 할아버지는 아마 개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을 것이다. 개를 포박하여 유기견 쉼터 앞에 던져둔 이나, 개를 산 채로 매장한 자와는 완전히 다른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인간의 감정이 애정이든 혐오이든, 그 대상인 개가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싶다. 애정의 결과로 그 개들은 손쉽게 예방할 수 있는 병에 걸리고, 피할 길 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건강을 해치는 잔반을 먹고, 먹고 자는 자리에서 배변하고, 태풍과 한파를 고스란히 맞으며 1m 반경에서 평생을 살다 죽는다. 이들이 삶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겪고 있는 것은, 고통이다. 오랫동안 대를 이어져온 불행이다. 동물 학대는 동떨어진 개별 사건이 아니다. 동물의 고통에 대해 무감한 결과이고, 원래 그런 것이라며 묵인해온 결과이다. 인간이 주고 싶은 것 말고, 동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우리가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감귤이의 7마리 새끼 제주탠져린즈는 얼마 전 영귤이를 끝으로 모두 반려견 데뷔에 성공했다. 이들은 다른 시골 잡종들과 달리 안전한 집과 가장 푹신한 곳에서 편안하게 쉬고, 건강하고 좋은 것들을 먹고, 매일 충분한 산책과 활동을 하며 지내게 될 것이다. 이건 탠져린즈가 특별히 예뻐서 누리는 것들이 아니라,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매일같이 고민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탠져린즈가 도심을 누비며 살아가는 10여년 남짓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길 바란다. 시골잡종 개들에게 고통이 대물림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서 누려야 할 것을 마땅히 누리는 삶이 대물림되길 바라본다.



▶ 귤엔터 이사진 : 구낙현·김윤영·금배

MBTI가 ENFP인 사람, INTJ인 사람, 그리고 말이 없는 강아지 금배로 이루어진 팀이다. 매일 산책하는 금배와 더 행복하게 걷기 위해 최근 제주로 이주했다. 걷다가 만난 마당개와 들개의 새끼들을 길거리캐스팅하며 ‘제주탠져린즈’라는 반려견 연습생 그룹을 꾸렸다. 지금은 이들의 소속사 귤엔터로서 반려견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강아지 금배와 걸으며 만난 제주의 자연과 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 이 글은 2022.04.29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429160501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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