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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롱 Apr 02. 2021

그래요, 제가 바로 모(毛)난 여자입니다.

시선이 주는 상처에 대하여.




미용실에 가면 꼭 듣는 말이 있다.




"와, 고객님. 머리숱 정말 많으시네요."




갈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내뱉는 말을 듣고 있자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스트레스 성 탈모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머리숱이 많다는 건 축복과도 같은 일인데. 나는 왜 자꾸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몸서리를 치는 걸까? 머릿결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숱이 좀 많다는 건데. 왜 자꾸 어깨가 움츠러드냔 말이다.


이 해답은 아주 오래전, 내가 급식을 먹고 교복을 입던 시절로 돌아가면 찾을 수 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근 20년간 내가 받은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












야, 고롱 팔 좀 봐! 여자애가 남자보다 털이 더 많아! 개 징그러워!


어린아이들의 말엔 가감이 없다. 꾸미는 것도 없지만, 숨기는 것도 없지. 나는 한 아이가 손가락질한 내 팔을 멀거니 내려다봤다. 얇은 털들이 우수수 나 있었다. 이게 왜?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아이는 자신의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넌 여자고 난 남잔데 네가 털이 더 많잖아!"

"그게 잘못된 거야?"

"잘못된 거지! 넌 여잔데?"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다시 한번 팔을 내려다보았다. 까맣게 그을린 팔뚝 위에 더 새카만 털들. 이게 그렇게 잘못된 거라고? 멍 때리는 내 귓가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야! 고롱 진화가 덜 돼서 그런 거래!"




이제 막 험난한 사춘기 로드에 다다른 급식 시절. 나는 새빨개진 얼굴을 어쩌지 못하고 다급히 옷소매를 끌어내렸다. 왁자지껄한 고함 사이로 아이들의 시선이 내 팔, 다리를 훑는다. 수치스러웠다. 왜 하필 교복은 또 치마라 살을 가릴 수 없는 걸까. 징그럽다니, 진화가 덜 됐다니 하는 못된 말에 받아칠 새도 없이 나는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그게 내가 받은 노골적인 시선의 첫 경험이었다.


이후에는 곧 죽어도 검은 스타킹을 신고 다녔다. 여름엔 벌점을 먹더라도 체육복 바지를 치마 안에 입고 다녔고, 쪄 죽어도 가디건을 벗지 못했다. 너 더위 안 타? 묻는 친구의 깨끗하고 하얀 팔이 부러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운 좋게 머리에만 털이 몰빵 됐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팔, 다리, 겨드랑이는 물론 손가락, 발가락, 인중, 그리고 얼굴에 난 솜털까지 빽빽하게 숱이 많았다. 제발 레이저 제모라도 시켜주면 안 되냐고 떼도 써 봤지만, 가정 형평상 그건 꿈도 못 꿀 처사였다.



결국 나는 아빠의 1회용 면도기를 훔쳐 털을 깎기 시작했다. 익숙지 않은 탓에 상처도 나고, 피부 겉면이 상하는 수모도 겪으면서 부득불 몸에 난 털을 죄다 밀어버렸다. 그러면 누군가의 혐오, 또는 호기심이 담긴 시선마저 거둬질 줄 알았다.










너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아무도 너한테 신경 안 써.


어느 여름날, 자연스럽게 내 팔에 팔짱을 끼던 친구가 물었다. 너 살이 왜 이렇게 까끌거리냐고.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제모를 어제 했더니, 털이 조금 자랐나 봐. 대답했다. 친구는 신기하다는 듯 내 팔을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러면 피부 다 상해. 누가 너 본다고 이렇게 제모를 하고 다니냐? 면도기로 밀면 털 더 굵게 나는 거 몰라?"

"그래도 내가 털이 엄청 많은 편이라 신경 쓰이더라고."

"그거 진짜 자의식 과잉이다, 너. 이거 봐! 벌써 샤프심처럼 굵게 나잖아!"




아니 내 털은 원래 샤프심처럼 굵단다, 얘야.


자의식 과잉이라니. 정말 미안한 소리지만, 나는 친구가 나로 일주일만 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쪄 죽는 여름날, 반팔과 반바지가 아니면 길거리를 걸을 수 없는 그런 날. 제모하지 않은 나로 살아보면 좋겠다고. 어디 그때도 네 입에서 자의식 과잉이란 소리가 나오는지 보자고 으름장이라도 놓고 싶은 기분이었다.


피부가 상하는 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전 날 저녁에 털을 깎아도 다음 날 아침이면 샤프심처럼 까슬거리는 것도 다 알고, 이럴 바에야 레이저 제모를 시도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건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내가, 털 많은 우리가 제일 잘 알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털 깎는 걸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수치스러움에 손잡이를 잡지 못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남들보다 조금 털이 많다고 빤히 내 살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의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그 끈질긴 시선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이라면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꼭 그렇게 끈질기게 쳐다보고 난 후에 자기 옆사람이랑 귓속말을 하며 나를 다시 보더라. 정말 마상이야, 마상.)




남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많다. 그것이 본인과 다른 부분이라면 더욱더 노골적으로 변한다. 나처럼 팔다리에 털이 좀 많은 여자를 보는 시선, 여드름 피부를 보는 시선, 아토피로 인해 상처 난 곳을 보는 시선, 남들보다 조금 체격이 큰 사람을 보는 시선, 말을 더듬는다고 또는 행동이 느리다고 보는 시선. 나아가 늦게 까지 결혼을 안 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 늦게까지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 등으로 발전한다. 


그 시선 속엔 본인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혐오와 호기심이 담겨있다.


그 시선은 반드시 누군가의 마음에 푹, 박혔다가 흉을 남기고 사라진다. 고의가 아닐지라도. 비록 나를 조준 사격한 게 아닐지라도 말이다.






제모 후 이삼일만 지나도 털이 저렇게 급속도로 자란다 (이 사진을 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 부끄럽다..) 돈이나 이 속도로 불었으면..





시선을 숨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인식하기도 전에 움직이는 눈알을 어쩌겠는가. 다만, 그 시선들이 노골적으로 어느 한 부분을 훑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자의식 과잉이며, 어느 누구도 너를 신경 쓰지 않는다며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도 뭣도 아니다. 그냥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이렇게 까지 움츠린 나를 바보로 만드는 것 밖엔 되지 않는다. (만일 어렸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숨지 말라고 다그치지 않고 당당해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혹시나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춘기 여러분들. 제가 멋진 어른이라면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려주고 싶지만 보다시피 그저 그런 어른이라 해답은 주지 못하겠네요. 그래도 너무 스스로를 미워하진 마세요.)





너의 계절이 돌아왔단다 도기야 열일해 주렴




날이 부쩍 더워졌다.

나는 오늘도 퇴근하고 제모를 할 생각이다. 비누칠을 듬뿍하고, 날 선 1회용 면도기로 조심조심 굵은 털들을 깎아낼 참이다. 언젠가는 시선에서 몸도 정신도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겠지. 내 생각에 그 '언젠가'는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때까지 미안하지만,

저는 모난 여자로 좀 살겠습니다.


조금 까맣고, 까칠 거려도 스쳐 지나가듯 시선을 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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