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파도 가족이 있음에...

나이와 세월의 힘은 쉽게 변치 않던 사람을 변하게 한다.

by 정정


12/24 크리스마스이브, 오랜만의 가족 모임.


코로나 이후 처음 다 같이 모인 대대적인(?) 연말 행사.

원래는 매년 연말에 다 같이 늘 가던 횟집을 갔었는데 그간 코로나로 가지도 모이지도 못했었다.

정말 오랜만에 모인 거라 초반엔 살짝 어색(?) 하다가도 역시나 금방 이런저런 수다 타임이 이어졌고, 역시 우리 집은 미식가 집안이자 대식가 집안이다. 먼저와 있던 다른 테이블보다 먹는 속도가 더 빨랐던 거 같다...

그렇게 먹고도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케이크 먹고 싶다 해서 때마침 가지고 있던 카톡 선물함 털기.


오랜만에 모인 거라 장녀 모드 가동.

열심히 일해서 뭐 하냐, 불효의 시간이 긴 만큼 오늘 하루 내 카드로 다 긁어 긁어.

내일의(내년의) 내가 또 돈 벌겠지...


이제는 정말 아빠의 정년퇴임이 코앞인 게 와닿고, 요즘 들어 눈물이 늘으셨단 소식에 마음이 저릿했다. 나 역시 마음이 아프다는 걸 끝내 아빠에겐 비밀로 하기로 했고 편지로나마 엄마에겐 전했다. 내가 많이 아팠다고, 그래서 치료받고 있다고, 내가 아픈 줄 몰랐던 그때 짜증 내서 미안하다는 불효자의 고해성사.

엄마는 나를 안아주었고 나는 울었다. 난 이제 내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된 게 차라리 좋다. 엄마는 놀라서 한동안 손잡고 앉아있었다. 치료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 해도 부모님은 다르시겠지. 그래도 말해야 했다. 가족 간에 오해와 비밀, 특히 건강의 문제는 숨기면 독이 되기에. 나와 가족들은 떨어져 있고, 언제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갈지 모르는데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둘 순 없으니까.

한잔하신 아빠와도 포옹을 했다. 아빠는 술에 취해 나를 자꾸 불렀다. 무뚝뚝하던 어린 시절의 아빠는 나이를 먹고 유해지다 못해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시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너무도.......

남동생과는 거의 뭐 그냥 의리다. 잘해드려라 같이 사는 네가 잘 챙겨드려라. 나야 이렇게 올 때 카드 긁어서 돈으로 때우지만 넌 곁에서 잘해드려. 장녀/누나로 한 마디씩 하고. 이제 서른 된 동생도 이젠 어릴 때 아빠를 닮아 무뚝뚝해졌다. 부전자전이야 쓸데없이.

늦은 시간 노원까지 차 태워준 건 고마워서 이것저것 또 챙겨 보냈다. 새로 사서 아끼던 모자도 그냥 툭 줘버리고 ㅎㅎ 난 안 쓴다고 줘버렸다.


이번에 가고 설에 보자고, 설에 오면 아빠가 맛있는 고기 사준다고 꼭 오라는 아빠 눈을 마주했을 때 아빠의 눈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불효자인 나 대신 아빠가 울보가 된 모양이다.


잘 지내다가도 떨어져 사니까 이런다.

그래도 내게 우리 가족이 있다는 사실과 존재만으로 나는 살아간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12/25 새벽 1:42 am 길고 긴 하루 일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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