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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09. 2022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Hope Gap, 2019)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마음으로 묵묵히 현재를 지탱하기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45년 후>, <다가오는 것들>과 비슷하게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남편이 배신감을 안겨주면서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상실감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는데, 해당 사건이 아내만이 아니라 남편과 자식까지 포함하여 가정 구성원 3명의 시점에 공평하게 배분되어 서술된다는 점이다. 남성의 배신을 겪고 극복하는 여성의 서사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결국 이 관계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지난 긴 세월의 보잘 것없고 자잘한 흔적들을 느끼게 만든다.



   평소와 같이 평온하게만 보이던 어느 날 아침, 오랜 결혼 생활 동안 진작부터 마음의 정리를 해온 남편 에드워드는 아내에게 차분히 이별을 선언한다. 당신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코 만족을 줄 수 없었고 그 오랜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새롭게 사랑하게 된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이제 그 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관계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그레이스의 믿음이 이렇게 한순간에 유리판이 깨지듯 산산조각나게 된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역시 자신에게 더 사랑을 표현해주길 바랐던 것인데, 그것이 상대에게는 부담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여자의 강한 자기주장, 답을 요구하면서 몰아붙이는 태도가 그들의 결혼생활을 짐작케 해 그가 지칠 만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또 그녀만의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점 역시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결국 에드워드의 말처럼 사랑이 시작됐다고 두 사람 모두 굳게 믿었던 그 순간마저 착각이었던 것일까? 에드워드의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내 사랑이 변한 게 아니라, 애초에 나는 너를 사랑한 적 없다는 선언과도 같다. 사랑의 소멸이 아닌 사랑의 부재.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언. 이보다 잔인한 이별의 언어는 없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곧바로 떠나고, 그레이스의 황폐한 마음은 빈집에 남겨진 그녀가 계속해서 에드워드의 환상을 보는 것을 통해 표현된다. 안타까운 것은 그마저도 얼굴은 보이지 않고 뒷모습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서재에서도, 주방에서도. 행복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이 아니라 멀게만 보이는 쓸쓸한 뒷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녀의 삶이 위태로워진다. 혹시나 그가 돌아올까봐 집밖을 나서지도 못하고 계단에 앉아 출입문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끝내 뒷모습으로 떠나간 사람을 진정으로 떠나보내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떠난 사람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마음으로 묵묵히 현재를 지탱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또 한편으로는 인생이 너무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레이스가 에드워드의 새 연인을 찾아가 끝내 마주했을 때, 그녀가 그레이스에게 한 '불행한 사람이 셋이었는데, 이젠 한 명만 남았다'는 말 속에서 그 한 명이 하필 그레이스라는 것. 그들은 끝끝내 진정한 사랑과 자기 자신을 찾았고 이제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 그렇지만 물론 다같이 불행을 짊어져야 한다고 고집을 부릴 수는 없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장성한 아들의 시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들은 떠난 아버지를 만나 어머니의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위태로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직장에 가지 않는 주말마다 본가로 향한다.

   그런데 사실 아들 개인의 삶도 평탄하지 않다. 어쩌면 자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어머니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그는 간절히 말한다. 나를 위해 살아달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그래도 적어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미리 말을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기도 한다. 그 모든 힘겨움을 어머니가 견뎌낸다면 자신도 인생의 힘든 순간에 어머니를 떠올리며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레이스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가 말하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겪어낸 아픔이 있었음을 읽어낸다. 너도 삶이 평탄하지 않았구나, 하는 말들을 건네며 포옹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알게된 바로는 실제로 감독은 부모의 이혼을 겪었다고 한다.감독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과 듣고 싶었던 말을 담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결국 그를 찾아가 그가 사랑하게 된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난 뒤,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한층 차분해진 모습으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바탕으로 타인의 아픔에 더욱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 되고, 다시 시와 함께 서서히 그녀 자신만의 삶을 회복해간다.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만든 홈페이지에서 "희망"을 검색하여 그와 관련한 시를 찾아 읽는다.




   아들이 쓴 시처럼 보이는 내용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가장 인상깊은 대목이다. 어머니의 한 발짝 뒤에서 묵묵히 걸어오는 아버지가 보이고, 카메라가 그들이 향해가는 길에 앞서 옮겨 가면 이미 저멀리 도착해서 혼자 서 있는 아들이 보인다.

   아들은 ‘당신들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라고, ‘버티길 바라는 나를 용서해달라, ‘ 길을 함께 걸어가자 말한다. 내레이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 그리고 절 놓아주세요.’


   날 놓아달라는 간절한 외침이 깊게 다가온다. 부모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앞으로도 평생 사랑할 것이지만, 끝끝내 달아날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만큼 가장 깊은 상처를 남겨준 그들의 삶으로부터. 그들과의 단단한 연결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들마저 들어올 수 없을 나만의 삶이 계속될 것이다. 다가오는 것들과 싸우면서 또 함께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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