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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02. 2024

잊으며 산다는 것

대학을 졸업하며

   대학 졸업 전날, 퇴근 후 저녁을 먹은 뒤 학교 계정으로 사용하고 있던 드라이브를 급하게 정리하느라 새벽 2시를 훌쩍 넘겼다. 개인 계정 드라이브로 파일들을 효율적으로 옮기는 방법을 찾지 못해 몽땅 로컬pc에 저장해야 했는데, '디스크가 가득 참'이라는 사유로 다운로드가 자꾸 중지되었다. 저장공간을 확보하려고 내 오래된 pc에서 버릴 파일이 없나 샅샅이 훑다가 지난 몇 년 간의 다운로드 항목을 최근부터 역순으로 보게 되었다.

   졸업 유예 직전 막학기에 들었던 교양부터 전공까지의 학교 강의 ppt,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직무 및 산업의 취업준비 후기, 각종 기업 리쿠르팅 페이지에서 다운받은 직무 설명서들, 자원봉사/동아리 지원서 양식, 공기업을 준비할까 고민하던 시절 잠시 참여했던 스터디에서 공유했던 문제들, 행시를 준비하던 시절에 첨삭받은 정치학 논술 답지, psat 시험지들, 학사생 선발 양식, 각종 생활비 장학금 지원 양식 등등. 다운로드 항목의 스크롤을 내리며 20대 초중반을 거슬러 갈 수 있었다.

   대략 훑은 뒤에는 파일들을 하나하나 지웠다. 괜시리 지나간 세월에 대한 감상에 젖기도 하고 그 흔적들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가끔은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워나갔다. 이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파일을 정리하며 새삼스레 지난 기억들을 되살려보고, '잊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치열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내 삶이 독립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불안은 평생의 삶의 요소이겠지만, 그럼에도 나이가 들며 불안보다는 안정 쪽으로 점차 삶의 추가 기울어간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가족과 이외의 타인들을 더욱 건강한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예측할 수 없는 삶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젊은 날의 불안은 내게 애증이었다. 불안을 겪는 것은 늘 힘든 일이었지만 그 불안 속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그 앎은 변화하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기반이 되어줬기 때문에. 그래서 삶이 불안하게 느껴질수록 더더욱 잊지 않으려 애썼다. 내 삶의 흔적들에 대해 낱낱이 아는 것만이 유일한 나의 무기라는 믿음이 있었다. 가끔씩 잊으며 살아야 한다는 충고를 들을 때면 내심 그것을 태평한 소리라 여겼던 것 같다.

   이렇듯 나의 과거는 언제나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무엇이었지만, 이제 그것들을 다 선명하게 붙잡기에는 나이가 들며 점차 포기하거나 선택한 것이 너무 많아져간다. 고통스러워하며 분투했던 시간도 그 뒤에 벌어진 다른 무수한 일들에 덮여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간다. 그 희미해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수록 삶에 대한 회한과 정체 모를 허망함이 내 발목을 붙잡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흔적을 회피하지 않고 붙잡는 것이 지금껏 중요했다면 이제는 살아가면서 조금씩 과거를 기억 저편으로 놓아주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럼으로써 매일매일 다가오는 평범한 일상 속 현재에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영화 <보이후드>에 나오는 주인공의 엄마가 어느새 커버려 무심해진 아들에게 충동적으로 내뱉는 대사처럼,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I just... thought there will be more.)"라고 말하지 않으려면.


   또 한편 잊어버리며 살아야 하는 다른 이유는, 상처입었던 작은 기억들을 놓지 못해서 그 기억과 연계된 타인에게 되려 상처입혔던 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느낄 때마다 아차, 싶었다. 나를 이해하기 위한 명분으로 붙잡고 있던 기억들이, 타인에 대한 은근한 원망으로, 내 힘듦을 알아주길 바라는 의존적 욕망으로, 자기연민으로, 불안에 대한 집착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망각의 중요성을 깨닫는 요즘이지만, 물론 분명히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도 있다. 어른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어린이로서 받은 상처나, 사회에서 정해진 자리가 없던 청년으로서 겪던 힘겨움, 성숙하지 못한 어른 혹은 존경할 점이 없는 선배에게 겪었던 실망 같은 것들. 안정과 함께 권태로워질 일상 속에서, 무엇을 잊고 무엇을 간직할 것인가. 그러한 통찰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부지런히 이곳 저곳을 오가던 그 모든 계절들, 한때는 가까웠지만 이제는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 잦은 변화와 실망 속에서 담담하려 애쓰던 이십대 초중반의 시절을 흘려보낸다. 앞으로의 인생을 미련이나 후회가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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