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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 Apr 05. 2021

우리의 첫 만남

강아지 뒤에 사람 있어요:임시보호에서 입양까지


2019년 가을, 드디어 오랫동안 생각했던 임시보호를 실행하리라 마음먹었다. 당시 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서 지친 마음도 달래고 몸도 바쁘게 지낼 일거리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이왕이면 좋은 일을 하면서 바쁘게 보내고 싶었다. 아직 새로운 강아지를 입양할 정도의 마음은 준비되지 않았지만, 물리적인 조건은 충분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두 번째 신혼집은 공간도 충분하고, 나도 자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짝꿍과 함께 그간 친정개님도 돌보고, 꾸준히 유기견 입양 카페도 방문하고, 정기 후원도 했던 것이 아닐까. 뭐 소액이나마 직접 정기 후원을 했던 유기견 카페가 폐업하는 과정에서 여러 상처를 받으며 더 이상 어느 단체든 현금 후원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 직접 몸으로 실천할 타이밍이었다. 


매일 여러 공고를 보면서 고민했다. 단순히 잠시 동안 강아지를 돌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많은 것을 생각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구조나 기관봉사 경험도 없고, 직접 좋은 입양자를 찾아줄 자신도 없어서 기관들을 중점적으로 조사해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거주하는 비수도권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일부 기관들은 관리 상의 이유로 수도권 거주자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일명 유기견판이라는 곳은 좋은 마음으로 모였지만, 워낙 복잡한 이해관계와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인과 단체가 많으니 이해했다.


임시보호 혹은 입양자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동물들을 오히려 교묘하게 유기하려는 사람도 흔하게 눈에 띄었다. 여러 사건들로 알려진 바와 같이 구조자 개인이나 단체들 간의 갈등, 특정 견종만 편애해서 구조한다는 질타, 해외 구조 활동으로 취득한 이윤에 대한 의구심 등 다양한 갈등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취지로 뛰어들었다가 상처만 받고 돌아서며 그만두는 경우도 온라인 상에서나마 자주 목격했다. 간접경험으로도 많은 상처를 받았던 터라 직접 발을 들이기가 조심스럽다.


이게 참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유기견 구조는 투명하게 운영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인 것 같다. 주소를 노출하면 일부러 찾아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까지 유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구조활동에도 직접 나서지 않으면서 잔소리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며, 때로는 유기견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힘겹게 입양을 보내더라도 좋은 입양처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조건으로 내걸더라도 다시 파양 되는 경우도 많으니. 





그래서인지 우리의 첫 만남도 비밀스럽고 기이했다.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지 무심코 게시글을 보다가 한순간에 눈에 띈 게시글이 있었다. 4개월 추정의 홍역을 이겨낸 말티즈. 이 정도 연령의 인기 품종견이 유기될 수 있다니. 놀라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냉정하게, 가능한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강아지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연령이고, 아픈 것도 거의 회복한 것 같고, 무엇보다 어리니까 입양도 잘 갈 것 같았다. 너무 정들기 전에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썼다. 구조자, 병원 내원 봉사자, 이동 봉사자, 임시 보호자 등. 각자 생업이 있으니 상황에 따라 시간이 맞는 사람들이 선뜻 나서서 도우면서 생겨난 구조였다. 구조 과정은 다소 은밀하고도 묘했다. 막상 은밀한 시스템을 엿본 기분은 무척 슬펐다. 유기되는 아이들은 너무 많고, 이 중 일부만 구조가 되고, 구조해서 임시보호처나 좋은 입양자를 구하는 것도 너무 고되고 어려운 일로 보였다. 


막상 아이를 만나고 나니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실은 홍역을 이겨낸 아이라고 해서 상태가 좋을 줄 알았다. 남은 약만 잘 먹이면 된다는 것이 내가 전달받은 정보의 전부였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아이는 범상치 않은 눈곱과 콧물이 얼굴에 가득했고, 귀에도 딱쟁이가 덕지덕지 붙어 귀를 계속 긁었다. 또 아무리 강아지의 체온이 사람보다 높다지만 너무 뜨거워서 깜짝 놀랄 정도로 열이 났다. 작고 마른 몸으로 끊임없이 기침하면서 콧물로 내 옷을 적셨다. 이렇게 아픈 강아지는 난생처음 봤다. 그동안 내가 꾸준하고 오랫동안 봐온 개는 부모님과 함께 키운 친정집 푸들이 유일한데, 당시 기준 14년째 키우면서 노환 외에는 아팠던 적이 없었다. 


1.4킬로밖에 안 되는 이 작은 강아지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시련을 겪는 것일까. 이미 처방받은 약을 하룻밤 먹였음에도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아서 다음 날 바로 병원으로 갔다. 홍역은 아직도 진행형(양성)이며, 옴 진드기에 감염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귀에 딱쟁이가 있다면 거의 옴 진드기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보호소에서 옮았지만 잠복기였으리라. 귀여운 강아지를 잠시 돌보면서 좋은 일도 하고, 바쁘게 보내겠다는 가벼운 마음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생명의 무게가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홍삼이가 우리 집에 온 첫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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