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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Jan 21. 2024

내 나이 계란 한 판 연기를 도전하다.

연기를 시작하게

만들어 준 모닝 페이지


내가 돈이 많다면_________하고 싶다.

내가 20살이라면_________할 것이다.


주차마다 아티스트웨이에 리더로 이끌며

진행할 때마다 계속 내_________에 기록했던 "연기"


계속 기록을 해나갈수록 떠올랐던 한 마디.

연기가 그립다.


작년 소셜링을 100회가량 돌아다니고 호스트를 하면서 느낀 건 나는 많은 사람보다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과 깊이 있는 연결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최고나 권력에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재작년 하루 평균 3시간 남짓 자며 주말에는 커리어를 위한 워크숍, 새벽에는 모닝런을 뛰었고 철저한 스케줄 속에 14시간씩 필라테스 수업을 연강을 하며 자신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항상 핫식스로 각성 상태라 그땐 피곤하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많을 때는 월 6~700찍으며 일에 매진했다. 근데 밖에 몰라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단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던 일과 돈벌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일을 시작한 후 혼자 대출을 받아 자취를 시작했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싶고 동선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 회사 앞 5분 거리 자취방 했다. 일을 시작하고 2년 반 목표했던 조그마한 원룸의 전세를 갚았다. 연인과 헤어진 후. 웨이트 쪽 제안을 받아 새롭게 도전하겠다며 사표를 냈다. 근데 조건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가지 않게 됐다. 시간의 백이 생겼다. 항상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묶여 살았다. 헤어진 후유증도 있었고 쉬고 싶었다. 이별 후 나를 찾겠다며 많은 곳을 돌아다니게 됐다. 


일에 미쳤던 경험이 있으니 돈이야 또 벌면 되지. 물질이 전부는 아니지 않나?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걸까? 사람보다 돈벌이에 집착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결국 돈을 버는 이유도 행복하기 위함이 아닐까? 커리어를 높이 쌓아 올리는 것에서 순수하게 사람을 알고 나를 알고 싶어졌다. 입의 풀칠할 정도의 돈을 벌며 무모한 모험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가치관, 삶 그냥 궁금했다. 문토 외에도 다양한 그룹을 경험했다. 순수한 호기심 때문에 겁 없이 사이비 종교에 들어가 관찰 일지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불교, 기독교, 사회 운동권 그룹, 사회 복지, 인권 시위 단체와 정반대 지점의 억 단위가 오가는 사업가 그룹도 가보게 됐다. 운동, 신체, 질병, 건강 외에도 다양한 워크숍, 자기 계발 모임, 비건, 성 다양성을 존중하는 예술가 그룹, 명상, 장애인 그룹, 심리치료, 상담, 비영리 그룹을 경험했다.  정치, 종교, 모든 면에서 내게 강요하지 않는다면 편견은 없는 편이다. 새로운 관점,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 흥미로웠다.


같은 대한민국에 발을 딛고 사는데 삶의 양식이 천차만별로 달랐다. 지금 내 시야에서 보이는 삶이 전부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네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강남 타워 팰리스에서 막대한 부를 손에 거머쥐고 자살을 한 일화를 접하고 문명과는 정반대의 생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 살아가는 해맑은 사람을 마주하면서 문명에서 도태되는 것, 부를 이루는 것과 개인의 행복이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따르는 최고가 되려 하기보다 개인의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고 선택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고유성과 나다움에 치우치는 것은 내적 안정감에 좋았지만 스스로 고립되기 좋았고 트렌드와 대중성에 치우치면 외적인 안정감을 채우기 좋지만 헛헛하다. 적절히 섞이기 위해 개방성을 높여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기보단 관심 없는 분야도 들여다볼 필요성을 느낀다.


양극단을 경험해 보니 나는 관찰자로서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인풋을 경험하니 혼란스러웠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관찰자로서 관전을 하듯 아무 말없이 이야기를 듣는 포지션이 되기도 이야기꾼이 되어 떠드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룹마다 나를 기억하는 이미지가 제각각 달랐다. 내향적인 사람으로 보기도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기도 했다. 친구는 호기심 하나로 사람을 관찰하는 날 보면서 은근 또라이라면서 조또(조용한 또라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양극단을 오가면서 느낀 것은 극으로 치우쳐 최고에 자리에 이르는 길이 행복이 아님을 깨달았다. 분명 좋은 의도로 시작했어도 치우쳐 이익과 결합할 경우 원래의 목적을 잃고 변질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물질은 분명 필요한데 높아지는 위치에 변질되는 모양은 안타까웠다. 


어릴 땐 회의감이 느껴지는 속세에서 벗어나 수녀원에 수녀나 절간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근데 종교도 물질과 결탁하며 순수하지 않았고 기업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시위를 하고 시스템을 바꾸려 싸워도 좌절을 겪는 이들을 목도했고 이익과 결탁하며 순수한 목적은 사라졌다. 약자가 꼭 선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상호 작용 리액션이었다. 세상은 한 가지의 원인만으로 규정할 수 없이 복잡다단하다. 개인의 정신으로만 보기도 시스템의 문제로만 보기에도 양측의 입장을 들었을 때 모두 타당한 근거로 이뤄진 각자 세계에 맞는 정답이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라는 말처럼 끊임없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도돌이표 같은 무수한 질문지 중 내 때에 맞는 답을 선택할 뿐이다. 명확하게 a는 a다.라고 정답을 이야기하기에는 각자의 개별성에 따라 정답은 다를 수 있다. 모든 정답은 외부가 아닌 내 마음의 욕망 속에 내재되어 있었다. 외부에서 답을 늘어놓은들 내 안에 있는 정답과 일치하니 선택하는 것일뿐 내가 볼 때는 사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답정너 기질을 가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함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조언을 주더라도 상대가 내 의견을 수용하고 따르지 않더라도 괜찮다.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자유존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상대와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생물임을 이해한다. 내가 상대의 답을 통제하며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살아도 우리는 모두 다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본다. 단어 하나를 보더라도 각자 다른 경험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듣고 있었다. 빠르게 몰아치는 사회 속에 진짜 상대방의 말을 듣고 질문하는 사람보다는 자기의 주관을 쏟아내기 바빠 보였다. 경청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만 내가 정말 마음으로 경청을 잘 했을까? 잘 듣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을 듣고 살피기에 대한민국은 너무 빨랐다. 여러 그룹에 몸을 담고 경험해 보니 경험하기 이전에 말을 뱉는 건 선입견과 색안경이었음을 느낀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오해할 만한 말을 뱉는 뒷담을 굳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혹 미운 사람이 있으면 혼자 글을 쓰며 정리를 한다. 그건 나의 주관적인 의견일 뿐 다른 사람에게는 맞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난 100개의 소셜링을 겪어도 좋은 걸 하나만 추천하기가 애매했다. 그냥 모두 좋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누군가가 전달한 말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소셜링을 그냥 추천받기 이전에 내가 뭘 원하는지를 알고 선택하고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좋고 나쁨의 판단은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굉장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내가 겪어보기 전까지는 나쁘다고 이야기하더라도 믿지 않고 경험해보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나와 정반대의 가치관과 신념을 지닌 사람과도 대화 할 수 있었다.


누구의 잘못을 갖고 물고 뜯고 늘어지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동조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몰고 가는 세태에 회의감을 느낀다. 빠르게 뜨고 지는 이슈나 트렌드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사물의 보이지 않는 이면의 숨은 뜻과 본질 찾기를 좋아했다. 계속 반복되는 역사 속에 모양만 다를 뿐 인간은 매번 비슷하다는 느낀다.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 고전 속의 인물이 오늘날의 인물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세상에 발을 담고 살아가고 있으니 트렌드에 관심은 없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세상에 나오려는 시도를 한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사람들은 제각각 다르고 다양해서 재밌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편안한 내향적인 성향을 지녔다. 세상에 나와 어우러지기 위해 사람을 마주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을 마주할 때 첫인상에 밝고 표현을 잘 하니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기도 다. 리액션 부자에 말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다. 근데 특정 질문에 말을 잘할 수 있었던 건 혼자 그 문제의 대해 이미 무수히 스스로에게 되묻고 적어내고 나만의 언어로 답을 내린 결과물이었다. 불편한 곳이나 말을 많이 하고 오디오가 비지 않는 곳에서는 말수가 줄었고 말을 잘 할 수 있던 이유는 편안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내향적이고 사색을 잘하기 때문에 특정 주제에서 말을 잘했던 것 같다.


사람에게 오는 에너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다. 가끔 적당한 긴장이 말을 더 잘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말할 때 마다 머릿 속에 아이디어들이 불꽃놀이 하듯 펑펑터지고 연결되고 이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 하면 즐겁지만 나도 모르게 모든 레이더를 곤두세우고 있기에 헤어짐과 동시에 급 소진됨을 느낀다. 사람이 있으면 사람과 대화하느라 핸드폰을 잘 안보고 가는 길은 소진되서 핸드폰을 잘 안 본다. 집에 가는 길 멍을 때리거나 외부 자극을 차단하기 위해 눈을 감고 이동을 다. 피로감을 더해주는 sns는 자연스레 안 하게 됐다. 떠오르는 생각을 수시로 메모하다 보니 메모장은 2000개가 넘었다.


문득 나는 예술을 즐기기 위해서 한게 아니라 생존이었다. 생각이 올라온다. 남들보다 생각이 많은 복잡한 사람이었기에 깊이 있게 파고 들 수 있었고 집중력과 몰입감이 좋고 열정적이라는 장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자극에 민감하니 내가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끊이질 않아서 요약과 정리가 잘 안 되는데 타인의 글은 요약, 정리를 잘했고 파고드는 성향 덕분에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생각이 많으니 살기 위해서 몸을 부지런하게 필수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아무것도 안 해도 민감도가 높아 외부 자극에 대한 인풋이 항상 많았다. 하나의 사건만으로 무수한 생각들이 가지치기하듯이 뻗어져 나가 통제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input이 많은 자극적인 숏츠나 sns를 멀리하게 됐고 외부 자극이 덜한 잔잔한 자연을 찾게 됐다.


생각 패턴에서 벗어나 실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추상적인 시각화와 움직임, 실존하는 몸을 직접 표현하고 말로 표현하는 창작 과정을 통해 아웃풋을 해야 살겠다는 생각이 었다. 몰입감이 좋을 때는 주변의 소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와 내가 하는 행위만이 존재한다. 빠지면 맑은 눈에 광기를 빛낼 수 있게 된다. 근데 그렇게 푹 빠지고 너무 몰두하 주변 사람들과는 어우러지기 힘들고 이해받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래서 그림도 글도 아무런 방해없이 혼자 할 수 있고요한 시간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항상 복잡하고 어렵다. 는 말로 돌아오는 일이 익숙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생각이 많은 줄 알았다. 아니란 걸 깨달은 후로는 내 안에 깊숙한 생각을 이야기하기보단 리액션을 하고 호응해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생각이 많지 않다.라는 걸 알게 되니 홀로 풀어내는 것이 익숙해져 예술을 했구나 싶었다. 공감받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복잡한 사유가 깊게 파고드는 것이 내게는 놀이였고 재미였는데 주변에서는 심각하게 안타깝게 바라보는 태도에 말을 꺼낸 것을 후회하게 됐다. 그러니 만났을 때 깊게 파고드는 이야기보다는 가볍게 리액션을 하거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굳이 속내를 대화에서는 내비추지 않게 됐던 것 같다. 사실 이해받기를 어느 정도 포기했던 것 같다.


사람들 눈에 띄는 최고가 되기보다는 평범한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과 연결감을 느끼는 삶을 꿈꾸게 됐던 것 같다. 스스로 복잡한 편임을 인정하니 남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함을 이제는 이해한다. 타인의 복잡한 일들을 나도 이전에 무수히 고민했던 생각이었기에 상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됐다. 상대방의 전부를 헤아리고 공감할 수는 없지만 들으면서 같이 이입하고 들어줄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것 같다. 내 안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을 때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 줄 힘이 생겼다. 근데 내 생각을 충분히 들어주지 않고 글을 쓰지 않은 날은 생각이 복잡해져서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할 힘이 떨어지고는 했다. 모든 창작은 결국 나를 비우고 세상에 나와 다시 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한 삶의 수련 과정이었다.


하나의 정답을 도출하기까지 무수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내였다. 예상했던 생각들은 대부분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 탓에 생각이 강화됐다. 하지만 납득이 가는 의견을 제시해준다면 수용하고 적용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다름을 이야기하는 과정도 즐길 수 있다. 가끔 타협할 수 없는 도덕적인 선을 해치는 신념에 대해서는 고집스럽지만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어 납득이 가면 실천하고 실험하길 좋아한다. 도덕적 선의 기준은 스스로에게는 가혹한 편이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편이었다. 보통은 남탓하고 풀어버릴 일도 나는 그 상황에 놓여서 동참했다는 것만으로 나를 검열하며 양심통으로 내 몸이 몇배로 고통을 받는다. 는 걸 깨달았다. 규칙을 깨는 것도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함부로 남을 탓하며 악하게 살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 안의 감정적인 강렬한 감정과 에너지는 움직임과 예술로 승화하게 되었다. 적절히 승화하지 못 해 화병이 쌓일 경우 실신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싫은 소리를 하면 상처를 준 사람들은 보통 잊어버린다지만 난 민폐를 끼치고 내가 상처를 주며 가해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만으로 뼈져리게 후회하며 괴로웠다. 나로 인해 타인이 아플바에는 거리를 두는게 옳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 온전함을 추구하며 타인은 뭘해도 상관없지만 스스로에게 옭아매는 일이 잦았다. 민감하다보니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걸 가끔은 모른 척하고 눈치없는 백치처럼 해맑게 뇌를 빼놓은 것 마냥 행동하는게 마음이 편했다. 드러낼수록 긁어 부스럼이고 미움을 받으니 모른 척 한다.


타인을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말을 뱉었다는 것 만으로 죄책감으로 몇배로 더 고통스럽게 돌아왔고 후회를 하게 된다. 주변 사람도 같이 힘들게 만들었을 생각을 하니 나혼자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 헤맨게 글쓰기였다. 글을 쓰면 나를 힘들게 했던 이와 내가 왜 힘들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했고 이 생각 또한 찰나일 뿐 이 감정과 생각이 모두 내가 아님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줬다. 스스로 문제의 실마리에서 해결책까지 찾게 된다.


나는 내 안으로 몰입하는 것에 특화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타인의 감정에도 쉽사리 동화되어 이입하고는 다. 그러다보니 굉장히 감성적인 친구 옆에서는 감정적인 사람으로 물들기도 했고 논리적인 친구와 대화를 하면 논리적인 사람으로 물들기도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이 어떤지에 따라 굉장히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주변에 아픔과 힘듦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동화한 나머지 후유증으로 일주일을 앓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나를 자연스럽게 보호하기 위해 정말 내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을 기억하기보단 빠르게 잊고 공감하지 않으려는 나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생겼다. 방어하듯이 F지만 T스러운 면모를 자연스레 습득하게 됐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쉴 수 없다. 너무 친밀한 관계보다는 적당한 거리감과 바운더리를 지키는 것, 내 공간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혼자 책읽고 글을 쓰고 움직이고 창작을 하며 몰입하면 바빠서 외로움을 틈을 못 느낀다. 집중하면 나도 모르는 새 몇시간이 흘러가 있다.

혼자 놀기가 너무 좋은 탓에 주기적으로 자신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는 연습을 한다. 강사일과 사람을 많이 접하니 외향형 비율이 조금 더 높게 나왔지만 본질은 자아성찰과 내적 탐구, 혼자 있을 때 충전이 되는 내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사람을 좋아하지만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주변에 많은 사람이 필요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환경이 어떠하든 내 마인드를 바꾸는 정신 승리가 가장 쉬웠다. 그래야 바뀌지 않는 환경에서 독기를 품고 버티거나 환경에서 일단 도망가 나를 먼저 추스르고 회복하고 단단해지기 위해 작전상 후퇴를 할 수 다. 잠시 떨어져 있어야 상황을 객관화할 수 있었다. 그게 먼저 선행돼야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시스템을 바꿀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본인이 여유가 생겼다면 세상을 살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개개인이 단단해지고 변하면 시스템에 대항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들을 모아 잘못된 시스템에 저항하고 바꾸려는 노력은 그다음으로 이어 나가야 되지 않을까?

능력과 기능, 자본 위주의 교육 이전에 양심에 관한 교육이 선행되고 인간다움을 얘기할 수 있었다면 모든 도구를 만들 때 인간에게 이롭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악의 평범성을 따르는 방관자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결과만을 보고 원인을 찾기 이전에 가장 근본적인 양심의 불편함을 살펴보는 게 실마리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세상은 바빠서 사유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양심이나 사람보단 돈을 먼저 논하고 기능적인 것과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이니 지금 이뤄지는 세상의 모든 문제와 결과들이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물질을 전부가 아닌 도구로서 바라보고 활용하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칼이란 도구를 지닌 사람이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졌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의사의 칼이 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줄 요리사의 칼이 되고 살인을 하는 연쇄 살인마의 칼이 된다.  그러니 사람이 어떤 목적과 의미를 갖고 살아가는지를 알고 세상에 의문을 품는 사유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세상 변화시킬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보다 개개인의 건강서포트하는 포지션이 적합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내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해야 했다. 마냥 착하기보다 거대한 위업을 이루기보다 개인의 행복을 원하는 지극히 평범한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내 꿈소그룹인 가정을 이루는 것, 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 엄마가 되어 자식을 키우기란 꿈이 조금씩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미래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엄마를 꿈꾸며 무모하게 하고 싶은 도전을 이어나갔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상황극 교사를 하고 친척들 사이에서 몇 시간씩 아이들과 놀아주며 행복감을 느끼고는 했다. 필라테스 강사로서 회원님을 만나며 출산으로 인해 몸이 망가졌지만 아이들 덕분에 웃음 짓는 어머니들이 인상 깊었다. 어떤 삶일지 나를 온전히 내려놓는 삶이 굉장히 고되겠지만 엄마의 삶이 어떨지 궁금하.


일에만 빠져 있다가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사랑 이후 삶의 관점이 바뀌었다. 사랑은 돈을 버는데 하루 종일 시간을 투자하고 싶단 가치관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하루하루가 마냥 아쉽게 소중히 느껴졌다. 사랑은 사람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잠깐의 사랑은 몰랐던 나를 알게  180도 다른 삶들을 선택하게 했다. 서울 토박이였고 남자 친구가 전남에 살았는데 돈을 빡쌔게 벌어서 직장과 삶의 터전을 내려놓고 지방으로 가서 센터를 차리는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연애할 때 주말 없이 일을 해서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게 슬펐다. 미래를 상상하며 일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상대방의 감정과 마음을 살필 수 없었다는 게 뼈저리게 후회됐다. 잃고 나서야 후회를 했다.


내 인생에 가치가 성장과 변화에서 사랑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혔다. 헤어진 후 일에 빠져 상대를 못 살핀 게 후회로 남았다. 건강했는데 실신을 겪고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힘들었다. 과거 업무 외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효율을 생각하며 스케줄을 풀로 채우고 사람을 만나지 않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니 완전히 바뀌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항상 일이나 뭔가 몰두하면 핸드폰을 들여다보질 않았다. 쉬는 시간은 잠시 눈을 붙이고 멍을 때리는 시간이었는데 자주 카톡을 하는 연인에게 칼답을 하고 매일 밤 일이 끝나고 통화할 생각에 설레는 나를 마주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참 신기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가족과도 이별을 겪었다.

내게 안전지대가 부재했다. 정서적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싶단 생각에 여러 책을 읽고 심리워크숍을 듣고 콘텐츠를 만들었다. 아티스트 웨이 리더가 되어 이끌기 시작했다. 함께 내면적인 부분과 외적인 부분도 성장해서 좋은 시너지를 오랫동안 주고받고 다. 하고 싶은 새로운 도전꾸준히 실행하면서 서로의 안전지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 안전지대를 구축하면 내 사람이 생겼을 때 의존하지 않고 가정을 잘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좋은 여자 친구, 연인, 엄마, 가정을 꿈꾸면서 내가 홀로 있을 때 인연에게 감정 기복을 풀지 않고 홀로 다스리는 방법, 경청, 공감 등을 공부했다. 심리를 공부하고 글을 써 내려가는 작업을 했다. 가정이 생겼을 때는 시스템과 외부를 탓할 수 없고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나를 컨트롤하고 다듬는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감정기복에 시달리지 않고 호르몬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움직임, 생활, 예술을 통한 건강한 승화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됐다. Input이 너무 많아서 흘려보낼 장소가 필요했고 콘텐츠를 기획하게 됐다.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 하고 싶은 도전을 후회 없이 하기를 선택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도전한 후에 내가 맡은 역할에 따라 미련 없이 안정감 있는 직업을 유지하고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늦바람으로 고생하지 않기 위한 예방 주사인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꿈꾸려면 현실 감각을 키우는 것이 맞다. 현실에 안정감 있게 돈을 채우고 매진하는 게 맞았다. 상대에게 바라지 않고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상대를 통해 내 결핍을 채우려고 하기보단 스스로 결핍을 채우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매번 미래를 그리며 바쁘게 살다 보니 상대를 섬세하게 살피지 못했다. 현재 행복을 즐기는 게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 머물고 듣는 것, 감정을 나누는 부분을 깊이 파고들고 연구하게 됐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온다.라는 말에 맞춰서 나를 사랑하는 방식, 나와 친해지는 방식을 다방면으로 공부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꼈다. 내가 즐기는 일, 나와 관계를 잘 맺는 부분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의 욕망에 따라 움직였고 남들이 보기에 현실보다는 이상을 꿈꾸고 선택하는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기준 치고는 순수사람이 되었다.


어릴 때 가난한 가정이라 하고 싶은 걸 참으며 살았다. 

시대 예보 속에 잠깐 언급했던 고전적인 k장녀였다. 책임감과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왔기에 심리를 배우면서 내 속 안에 찌기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비워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어릴 적 어른 아이로 살아온 상처를 나의 선에서 모두 끊어낼 것을 다짐하며 심리 워크숍을 들었다. 인연이 닿아 기회가 찾아온다면 절대로 다음 세대에게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될 것이다. 출산율 0.6%의 불안한 시대. 핵개인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니 직업에서 사회적으로 커리어를 쌓고 성공하는 것보다 어쩌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좋은 엄마 되는 게 꿈처럼 어려운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아이가 "자신을 왜 낳았냐?"면서 내게 원망해도 빙그레 웃음 짓고 안아주며 "사랑해서 "라며 품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엄마가 되는 꿈을 꾼다. 내 몸이 아파도 그런 말과 행동을 건넬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 자신에게 사랑스러운 말을 마음에 박히도록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했다.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예쁜 말은 소셜링 참여자에게 "그대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라는 말들을 건네는 기초가 되었다. 타인에게 건네는 예쁜 말은 자신의 모양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자 아등바등했던 어린 나, 인정에 목말라 능력 쌓기에 급했던 과거의 나를 위해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알아주고 수용해 줬을 때 마음의 울림을 주고 자연스러운 변화를 줄 것이다.


어린 시절 따스함을 표현받기 어려웠다면 영원히 떠나지 않을 자신에게 습관처럼 해주는 정성이 필요했다. 스스로에게 keep going! 계속해! 파이팅! 을 외치며 다그치고 목표를 향해 간절할 때보다 따뜻한 말은 건넬 때 추진력이 생겼다. 따스한 말은 번아웃으로 인한 무감한 상태를 막아 줬다. 감정을 다채롭게 하며 나를 다시 살아있게 몰입할 수 있는 힘을 체험하게 만들어줬고 문제를 직면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정서적 안정감을 선물 받지 못 한만큼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치열하게 배워야겠단 생각을 했다. 내 마음속 진짜 욕망을 들여다본 결과 지금 하는 철없는 행위가 어릴 적 내가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기에 당장의 돈이 되지 않더라도 남들이 뭐라 하든 지금의 나에게는 옳다. 는 확신이 들었다.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가족과 끊어지고 사랑도 잃고 회사와 이별하고 건강도 잃고 여러 모양의 상실을 경험했다.

아홉수라서 그런가? 삼재를 제대로 겪었다. 내 인생이 꽤나 파란만장하단 생각에 글을 써 내려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삶의 조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하반기 에세이 2권을 완성하게 됐다.


에세이를 쓰면서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치유의 시간이었다. 글쓰기를 잘 이끌어 주시고 좋은 말을 건네주셨던 모두에게 고마웠다. 나처럼 힘들었을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어렵지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으니 여러 사람들과 또 나누고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값지게 받았던 따스한 힘을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여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만약 어릴 때 나를 잡아줬던 따뜻한 말이 없었다면 내가 그 시기들을 버텨내고 지금 살아있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감정을 해소하고 몰입하는 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메모는 2000개가 넘게 쌓일 정도로 익숙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글은 쉽지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 드러내도 되는 걸까? 글을 쓸 때 너무 솔직해지고는 했다. 깊게 빠져 푹 몰입해서 쓰다 보면 실제 내 생각보다 격정적으로 쓰기도 했다. 쓰고 나서는 에이~ 이 정도는 아닌데.. 혀를 끌끌 차며 웃음 짓는 나를 발견했다. 난 꽤나 행복한 사람인데 글만 보면 고통스러운 사람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선입견을 갖기 좋겠다. 나는 어디까지 나를 밝혀야 되는 걸까? 선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짧은 글보다는 상황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묘사한 글을 써내려 가는 게 익숙했다.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았다.


글은 나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정체성같이 느껴졌다.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던 나에게 글을 쳐내는 것 하나하나가 뼈아프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한 단어, 한 문장이 소중하게 느껴져서 어디를 쳐내야 될지 영 감이 오질 않았다. 이런 곳에서는 쓸데없이 자기애가 높아 집착했던 것 같다. 내가 애정을 가진 예술 작품과 콘텐츠를 동일시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분리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글을 퇴고하려고 손을 댈수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 끊기지를 않았다. N의 망상 그 자체다. 단순하게 명확하게 핵심을 담아 함축적인 글을 쓰는 카피 라이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글을 늘리는 건 쉬웠고 줄이는 건 어렵다.


디테일하게 섬세하게 상황을 영상을 찍어내듯이 글을 길게 풀어내고 무한대로 늘리는 건 자신이 있었다. 특정 상황, 경험대한 감정과 신체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가능했는데 핵심을 담은 짧은 한 마디를 담기는 영 어려웠다. 훈련이 필요했다.


글을 쓰다 보니 순수하게 내 글만담은 책을 만들고 싶어졌다. 브랜딩 전자책 챌린지를 신청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끌렸던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브랜딩 전자책 강의에 맞춰 글을 쓸려고 할수록 몸의 저항감이 생겼다. 돈을 벌기 위해 불안과 결핍을 자극하는 후킹적인 요소를 사용하는 건 거북했다.


돈을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타인의 가장 아픈 지점과 결핍들을 건드려 고소득의 비용을 취득하는 내용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대립되었다. 

결국 반절까지 글을 쓰다가 멈추게 됐다.

전자책 챌린지에서 홀로 실패자였다.

걸림과 의문이 드는 거짓을 쓰지는 못 하겠다.

왜 예술가들이 대중적인 것에 맞춰 작품을 만들기

어려워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야기하고 싶은 걸

못 쓴다면 그냥 다른 업무를 통해 돈을 버는 게 나았다.

하고 싶은 바를 얘기하고자 글을 썼으니 추가적인 물질이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생각들이 올라왔다.

지금 방식이 아닌 다른 브랜딩 방법, 표현 방식 추가로 

공부를 하며 나를 설득하고 세상과 접점을 이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고 아프고 힘들었을 사람에게 삶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따스한 힘을 주고 싶어서 글을 썼던 건데 책을 내는 이유도 나와 연결되지 못한 사람접근하기 쉽게 해결책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돈을 벌고는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독자에게 큰돈을 벌고 갈취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프지 않고 그 고통에서 벗어날 힘을 얻고 스스로 일어나기를 원했다. 자신의 마음속 희망을 발견하길 바랐다.


돈만 벌기 위한 글은 상대방의 가장 약하고 아픈 부분을 건드려 가스라이팅을 거는 느낌을 받았다. 속의 매슥거림을 경험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뒷목의 뻐근함을 선물 받았다.

아무리 글을 쓰려고 자리에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마음의 양심적 걸림이 올라왔다. 계속 쓰고 싶어서 몇 시간을 앉아서 키보드에 손을 대고 있어도 도저히 글이 쓰지 못했다.

신념이 맞닿지 않을 때 속도감이 떨어지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감정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와는 확연히 달랐다. 남들은 그냥 잘 쓰는데.. 내가 이상한 걸까? 의문이 들었다.


예시 자료로 들었던 빠르게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서 걸림이 올라왔다. 이걸 하지 않으면 당신은 허리 아플 거야. 당신은 몸이 틀어져 있어. 그러니 나는 이걸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니 내게 와야만 해.


내가 힐라테스라는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콘텐츠를 만들었던 것도 소메틱과 심리 과정배우면서였다. 이야기하고 싶은 콘텐츠를 빠른 효율과 매출, 영업을 해야 되는 센터에서는 할 수 없때문에 연구해서 만들게 된 프로그램이었다. 생활 전반의 예방과 건강을 삶에 녹일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몸은 "당신의 몸은 틀어졌어요."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뇌가 인식하고 신체의 특정 부근에 긴장감이 생긴다. 뇌에서 신호를 보내고 인식하고 움직임을 만들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강박이 생길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스스로 특정 부위를 못 쓴다면서 한계를 걸고  움직이지 않게 된다. 움직이지 않은 몸은 기능이 떨어지게 되면서 특정 부위를 쓰지 않았기에 못쓰게 된다. 강사가 불안을 거는 한마디가 건강의 악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계속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돈을 벌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사람이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강사가 건네는 "말 한마디의 힘"은 굉장히 중요하다.

근데 브랜딩과 마케팅, 세일즈에서는 불안을 조성하는 말, 당신은 틀어졌어. 그러니 나에게 와야만 돼! 이 말이 나는 가스라이팅처럼 느껴져 윤리적인 불편감에 매슥거림을 느끼게 된다. 내게 왔을 때 좋은 해법을 줄 수 있는 건 맞지만 꼭 상대의 불안을 건드려야 될까? 의문이 든다. 난 진실을 진정성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움직임을 통해 내 몸과 마음을 알고 기분 좋게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근데 브랜딩 전자책에서 그런 예시를 들면서 불안감과 결핍감을 파고 들어서 고단가의 돈을 내게끔 유도만 하는 느낌이었다. 돈을 크게 걸어야 최선을 다한다. 모든 배움은 돈을 위함이다.라는 마인드셋이 어떤 대가도 않고 내가 했던 노동과 봉사, 예술 활동 모든 일들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는 같았다. 모든 행위에 목적과 배움이 단순하게 돈을 벌기 위함이라니 거북했다. 나는 그냥 배움 자체와 모든 과정이 즐거웠고 즐기기 위함도 있었다. 모든 행위의 목적을 돈 버는 일로 만드니 자유를 빼앗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엄마가 되면 돈을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칭찬받기 어렵고 잘해도 본전일 텐데 그런 마음 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삶의 몰입감 없이 꽤나 헛헛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아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간절하다. 간절한 사람들은 그렇게 빚을 져서라도 큰돈을 낼만한 사람들이다.


왜 브랜딩 전자책에 동영상 강의에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을까? 나는 과거에는 통증과 결핍에 굉장히 민감했다. 가난했고 상처받아 아픈 시기가 있었다. 우리 엄마가 꽤나 간절한 사람이었기에 종교에 빚을 내 몇천만 원을 내는 사건을 겪은 적이 있었다. 인간의 불안을 건드려 고수익을 내는 종교들과 겹쳐져 브랜딩 수익화 방식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도덕적 민감도가 높아서 끌림, 호기심이 아닌 불안과 결핍을 이용한 브랜딩 방식 윤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고 최고가 되는 방식이 떳떳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기에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 살아갈 힘, 내면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고 싶었다. 타인의 (맹목적인 종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 의존하는 것으로는 결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없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먼저 단단해져야 개인의 행동 양식을 바꿀 힘이 생기고 세상의 불편한 틈을 바라보지 않을까?


협상법을 배웠을 때도 알고는 있어도 일부 기술들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를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들거나 스스로 생각할 힘을 막 행위의 낌새만으로도 거북했다. 그래서 일방향의 강의나 시스템 작업보단 소그룹 형식의 깊은 사색을 나누는 쌍방향의 소통 방식을 선호했다. 나도 그냥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 서로 영감을 받으며 성장하고 싶지. 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개인이 자유하지 못 하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어떤 조건을 갖췄든 급을 나누기보다는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바라보고 가능성을 발견하싶었다. 글을 통해 가능성과 기회를 줄 경험과 지식, 내가 알고 있고 힘을 받았던 메시지을 공유하고 싶었지. 나를 의존하거나 종속시키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살아가는 힘을 갖게 하고 싶었지. 함부로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돈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행복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건 의도가 좀 아니지.라는 양심의 반발심이 올라온다. 에라이.. 난 마인드셋이 부자 되기는 글러먹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양심을 논하는 비영리 마인드셋이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냥 하라면 하라는 대로 따라오면 되는 걸.. 이런 고민을 안고 정체되어 있는 자신이 답답했다. 답은 결코 타인이 쥐어주지 않는다. 결국 내가 내 답을 찾아서 선택하고 새롭게 만들어 내야 했다.


간절함, 불안함을 이용해 고단가의 돈을 번다는 방식이 영 거슬렸다. 그게 나쁜 거라고 하기보다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는 나와는 안 맞는다. 양심에 걸린다. 


나는 상대방의 불안과 결핍을 이용하는 마케팅 방식이 다. 브랜딩 전자책의 30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 강의는 나의 트리거와 결핍을 건드렸다. 새벽 3시가 넘도록 글을 쓰려고 계속 붙잡고 있었지만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팠다. 양심통이다.


나는 상대를 바꿀 수 있는 은 따스한 시선과 안아줄 수 있는 온기에서 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방식으로 사람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고 건강한 삶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굿윌 헌팅에서 나온 심리 상담사처럼 사람을 문제적 인간으로 낙인찍지 않을 때 그냥 따스하게 있는 그대로 수용해 줄 때 사람은 바뀌고는 했다.


근데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보다는 불안함을 건드리며 허황된 빠르고 명확한 정답만을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속상했다. 나는 이 지점을 어떻게 표현해야 되는가? 고민이 짙어진다.


학업 성취도가 높은 그룹을 비교한 예시가 있었다.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교수 A, B가 있었다.


 A교수는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이야기했고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듯 더 부풀리고 확신에 찬 발언을 했다. 그런 당당함에 학생들은 매력을 느끼고 교수 평가의 점수가 높았다. 학업 성취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반대로 B교수는 명확한 답보다는 진실을 이야기했다. 사실 본질을 파다 보면 정답이 없는 것 같은 굉장히 애매모한 지점들이 있다. 지금 이렇다. 하지만 이게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겸손한 태도는 학생들에게 인기도 없고 교수 평가에서도 학업 성취도 면에서도 점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플라시보 효과처럼 더 나은 효과를 위해 조금 더 과장된 표현을 명확하게 제시하면서 당당한 태도로 신뢰감을 얻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걸까? 강사의 신뢰도에 따라오는 참여자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니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진실은 사실 정답이 없는 애매모호함이지만 자신만만하게 나을 있다는 말과 신뢰감 하나만으로도 통증이 사라지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모호한 진실이 아닌 약간의 가스라이팅적인 요소를 가미해야 되는 걸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계속 진실을 추구했는데 부딪힐수록 어려웠다.


내가 생각한 진실이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혼란스러웠다. 글에 비해 운동은 참 쉽다. 생각 없이 복잡한 머릿속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근데 타인이 제시해 준 정답을 토대로 써 내려가는 글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고 맞춰나가려고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속도에 제동이 걸렸다. 내가 진실은 각자 개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답은 없었다. 근데 그냥 뭘 해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나아지기는 다.


대중적인 것에 포커스를 맞춘 영상이나 글들이 도움을 수도 있다. 근데 개인차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해로움을 안겨줄 있다. 모든 사람이 신체의 인지 능력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너무 열심히 잘 못된 자세로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수보다 불편하게 통증을 겪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 걸림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과 한마디조심스러워졌다. 브랜딩은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를 기록하고 표현하고 쌓아야 되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과정들을 드러내고 써 내려가지 못하고 조심스러워졌다.


한마디책임의 무게감을 느끼니 조심스럽다. 그래서

명확한 확신을 가진 답을 하길 주저했다. 나한테는 이게 정답이지만 당신에게는 100프로 정답이 아닐 수도 다.

조금 더 테일한 세분화와 타깃이 필요했다.


모든 살펴보기 위해서는 1:1로 세세하게 보고 계속 소통하고 상호 작용을 하면서 수업을 이어나가야 했다. 하지만 다수를 상대로 하는 일방적인 수업어느 정도 건강하다는 전제하에 하는 수업이기에 연약한 사람과 아픈 사람에 대한 고려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나는 멀쩡한 손가락보다 아픈 손가락에 눈길이 갔다.

어쩌면 아픈 손가락에 눈길이 가는 것도 역차별일 수 있다.

잘하는 멀쩡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케어해 주고

레드오션이라는 생각에 나는 굳이 힘든 길, 아무도 하지 않을 어려운 길, 블루오션에 눈길이 가고는 했다.


내가 통증에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기에 조심스러웠나 보다. 부디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결핍과 섬세한 공감능력이 싫었다. 결핍과 섬세한 공감 능력은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남발할 경우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너무 민감하고 조심스러웠기에 쉽사리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외로웠다. 이런 공감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돈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소진되지 않기 위해 공감하는 스위치를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할수록 힘들어진다.


바운더리 밖에 사람에게는 비교적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고 매쳐가 되길 원한다. 너무 친절하게 귀 기울여 공감을 하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오해를 사고 고백을 받아 땐땐한 사이가 되고 틀어진 경험이 있었다. 상대가 괜히 김칫국 마시는 일이 없도록 여지를 줄 일들은 칼같이 차단하게 됐다.  예전에 내가 희망고문을 당해보니 너무 친절하게 대한게 미안함으로 남았다. 한때는 모두에게 친절한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아등바등하며 기버를 자처했지만 지금은 내 그룹 안에 사람들에게만 선택적 기버가 되길 원한다.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으니 굳이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한두 사람이면 족하다. 너무 관심을 기울이기보단 적당한 거리감을 존중해 주는 것이 선을 지키는 것이 예의란 생각을 하게 됐다.


의미 있고 내 마음이 하고 싶은 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제적, 정서적으로도 모든 면에서 높아지고 잘 되어야 될 필요성이 있었다. 먼저는 대중적인 것에 접점을 이뤄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내가 돈을 열심히 벌어 좋아하는 일, 내가 가치를 느끼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항상 고유성에 몰두하는 것만을 얘기했지만 내 고집을 내려놓 고유성을 잘 살리면서 안정감을 살리기 위해 시대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고집쟁이,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다. 고민을 안고 최근 눈에 들어온 것은 비영리 스타트업 단체였다. 비영리 스타트업 대표님을 만났다. 대상자와 참여자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펼칠 수 있는 구조는 정부의 사업 지원금을 받는 구조였고 눈길이 다. 비영리 스타트업은 후원을 받거나 사업 지원금을 따내는 형식이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잡고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한 방안이 무엇일까? 대중적인 플랫폼에서 나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방안에 대한 고민들을 해보게 됐다.


나는 큰돈이 아니어도 마음이 풍족한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돈에 있어서 천상 예술가 타입이었다. 쓸데없이 사서 고생을 하는 바보 같은 타입이지만 나는 이런 무모한 나 또한 사랑한다. 뭐 최선을 다해 도전해 보고 안 되면 그냥 현실에 돈벌이를 택하면 되지.라는 생각이다. 일단 해 볼만큼은 해봐야 후회가 없다. 매번 보이지 않는 가치만을 추구하다 보니 돈 공부는 영 관심이 없었다. 구두쇠 기질이 있어서 아끼는 건 잘했는데 최근에는 관심이 없던 돈을 대하는 태도와 기치관, 활용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진실 또한 정답이 아니고 틀릴 수 있음을 기억한다. 열린 태도로 설득이 가고 납득이 가면 받아들이고 새롭게 배우려는 시도를 해본다. 근데 워낙 고집이 있는 탓에 한 번에 확 바뀌지는 않아서 스스로도 답답한 면이 있다.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 조금 더 양심적이고 진실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며 일단 써 내려가길 연습한다.


사실 진실은 명확하지 않다. 모든 사람의 몸은 보편적인 게 아니라 굉장히 개별적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답이 수학문제 풀이처럼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몸과 건강은 그러했다.


내가 책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불안하게 통증을 유발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원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강의를 들으니 대중들은 모호하고 애매한 답보다는 명확한 정답을 원하는 것 같았다. 진실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자꾸 괴리감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독자에게 닿고 싶은 작가인데 양심적인 불편감에 도저히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꾸 더뎌지고 정체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쓸데없는 철학과 나의 신념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쥐뿔 아무것도 없으면서 스스로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브랜딩 전자책 쓰기를 잠시 멈추고

내가 행동이 제약이 걸렸는가? 대해 끝없이 꼬리물기 질문을 모닝페이지로 써 내려가면서 직면하니 해답을 얻었다.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내 가치관, 신념의 대립이었다.


소메틱과 심리를 배우지 않았다면 후킹적인 요소를 첨가해서 그냥 챌린지에 쓰라는 대로 시원하게 글을 써 내려갔을 것 같다. 근데 모호한 진실이라는 부분을 배우고 이후로는 자꾸 고집을 부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모닝페이지를 휘갈기며 써 내려갔다. 아침에 순식간에 미친 듯이 4~5페이지를 써 내려갔다. 마지막 "연기"라는 한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닝 페이지를 쓰다 보니 작년 배우로 제안을 받았던 플래이백 시어터의 상황극 워크숍이 떠올랐다. 플래이백 시어터의 상황극 배우는 관객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메타포적인 상징적인 표현으로 그들의 음을 치유해 주는 일종의 심리극 과정이었다.


플래이백 시어터의 상황극 워크숍이 열리는 당일 아침.

나도 모르는 힘에 이끌리듯이 마음의 욕망에 따라 "젠젠"에게 문자를 보내는 나를 발견했다. 충동적이었다. 


직관은 내 모든 경험의 축적이다.

끌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이 이야기하는 욕망을 따라가 본다.


모닝 페이지 마음의 욕망에 따른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추진력을 심어줬다. 진짜 욕망은 나를 무모한 도전으로 이끌어 놓았다.


연기는 현실적이지 않아.

불안정하고 안정적이지 않잖아.

나는 다시 현실을 열심히 살아갈 거야.

라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내 마음의 소리에 따라

험난한 상황극 배우라는 길을 선택했다.


내가 처음 연기를 시작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표현하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말을 대변해 주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어린 나는 지금과는 달리 그런 결핍감을 가진 보호받지 못한 아이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위안부나 임금을 잘 못 받았던 사회에서 억압된 소외된 사람들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기를 통해 대변해주고 싶었다. 어릴 때

나는 참는 것에 익숙했다. 누군가에게 토로하지 않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며 연신 "괜찮아"를 중얼거리고는 했다.


예술로 세상에 불편한 지점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억한 심정을 위로해 주고 공감해주고 싶었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내가 듣고 있다며 힘을 실어 주고 양심에 무감한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싶었다.


불편한 진실을 통해 감정적 변화를 주고 마음을 움직여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감정을 건드리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단 꿈을 꿨던 철없던 20살의 내가 떠올랐다.


사실 이 작업은 돈과는 거리가 먼 모험이다.

내가 작업하려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봉사에 가까웠고 감정적으로 쓰이는 에너지는 정말 많은 고된 작업이었다. 시간도 굉장히 많이 쓰이는 작업이다. 이걸 선택하면 내가 하고 싶은 돈벌이와 거리감이 생긴다.


근데 연기를 할 때 시간이 사라진 것 같이 몸이 그냥 따라가는 묘한 경험을 잊지 못한다. 무대에서 관객과 마주할 때의 긴장을 사랑했다. 연기는 살면서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 중에 가장 어려웠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고되고 어려웠지만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과정은 길었고 무대 위에서는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결과가 남지 않고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 같은 것이지만 내게는 의미가 있었다.


나는 이제는 돈을 벌고 조금 더 현실을 살아낼 것이라는 얘기를 했지만 예술을 선택했다. 그렇게 내 나이 계란 한 판 무모한 연기를 도전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 되지 않을까?

내가 이 작업을 과연 이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지금의 내 진짜 욕망은 브랜딩 전자책에는 NO를 외쳤고 무모한 상황극 배우에는 Yes를 외쳤다. 좀 더 나이가

들면 내가 현장을 뛰기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은 상태에서 옳은 일을 하는  이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포지션이 되길 꿈꾼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carpe diem

한마디처럼 내 마음속 욕망을 따라 꽤나 충동적인 무모한 선택이었다. 사실 연기는 꽤 오랫동안 염원했지만 미뤄둔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처럼 지금의 생각과

감정도 한 때 머물다 가는 흐름처럼 변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찰나의 순간일 뿐 슬픔도

기쁨도 영원하지 않듯이 지금 생각도 변하겠지만 일단은

그냥 무모한 도전을 즐겨보기로 한다.


글을 쓰면서 느낀 건 실제로 말하는 거와 달랐다. 글은 영 익숙하지 않고 어려웠다. 글쓰기는 내게 도전이다.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 다듬고 쓰고 싶은 것. 모닝 페이지처럼 주저리주저리 늘어났는데 점점 줄여서 핵심을 담는 연습을 해야겠다.










무브유어마인드 대화카드& 40일 기록 챌린지
블로그 브랜딩 강의
후킹에 대한 고민에 추천받은 도서

Ps. 최근 피트니스 업계에서 진행한 [허창현] 대표님의

브랜딩 블로그 강의를 듣고 시야가 열리는 경험을 했다. 진심이 담긴 브랜딩. 내가 따르고 싶은 마음에 닿는 강의였다.


[무브유어마인드] 양심에 불편한 지점에 대한 고민점, 대화가 가능했다. 앞서서 개척하고 마음을 알아가는 비영리사업단체를 만드신 분들이라 만남만으로 힘이 됐다.


[무브유어마인드] 대표님이 열었던 40일 글쓰기 챌린지에서 참여자분께 추천받은 퍼스널 브랜딩 서적, [모닝 프렌즈]에서 비영리사업을 영리 목적의 사업 지원금을 준비하시는 리더님께도 좋은 영감을 받았다. 


돈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능적인 브랜딩이 아닌 나다움과 인간 중심의 가치를 담은 진심이 담긴 브랜딩과 콘텐츠에 대한 실마리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브런치에서 하고 현실적인 안정감을 줄 기능적인 글과 스포츠 업계에 관한 현실적인 일은 블로그로 트랙을 나눠 다양한 글쓰기를 이어 나가야겠다.

일단 그냥 부딪히며 써보기!


[글쓰기 3 포지션_계획]

1) 개인의 회복(내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쓰는 모닝 페이지, 회복하는 글쓰기, 내 모든 생각, 감정 가감 없이 

나의 무의식을 직면하는 글쓰기

(내 마음의 욕망, 알아차림, 계획, 정리, 해우소)


2) 브런치: 에세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낸 글쓰기, 독자와의 접점을 이루고 마음이 연결되는 글쓰기. 나와 감정을 드러내는 글. 아직 에세이보단 일기 같은데 간결함이 필요하다.(예술, 연기, 콘텐츠, 몸과 마음, 심리, 문집 에세이)


3) 블로그 브랜딩(적절한 포장): 세상과의 접점을 이루며

가치를 주고 나를 잃지 않고 중심을 쌓은 상태의 글쓰기,

전자책 준비하기, 미래의 수익화, 현실과 안정감을 위해.

핵심을 담은 간결함 연습. 전문 칼럼  연습.

(필라테스 강사, 스포츠, 재활, 건강)


무브유어마인드 40일 기록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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