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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Feb 14. 2024

글쓰기(창작/첫 시작)가 두려운 이에게

생각의 유영

제약된 틀 안에서 쓸려고 하니 도저히 글감이 써지지 않고 그대로 글쓰기를 멈추게 됐었다. 그냥 굳이 바꾸지도 말고 그냥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즉흥극 입문기를 지우고 좀 더 제약 없이 자유롭게 생각들을 펼치기 위해 생각의 유영이라고 명명한다.


내가 다시 예술을 시작했던 것은 자유로움과 즐거움이었으니 틀 속에 가두는 것을 벗어나 그냥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한다. 타인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냥 나는 나일뿐이다.


지금의 생각도 찰나일 뿐 내일이 되면 내일의 경험으로 덧입혀져 팔레트의 흰색 물감처럼 다른 색깔로 생각은 번져있을 것이다. 생각과 감정들이 지나가는 것이며 내가 아님을 안다. 감정과 생각을 분리하는 연습을 해본다. 그러니 그냥 써 내려가도 된다.


여기 안에 모인 사람들 모두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인 플랫폼인데..

나는 왜 그리 두려워했던 걸까?


깊게 파고들면 저마다 다른 모양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걸 드러내지 않고 잘 포장하고 살아갈 뿐 어떠한 결핍 없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을 텐데 연결되지 못할까 봐. 지레 먹고 두려웠다. 내가 이전에 겪은 경험이 흔치 않았고 동정받거나 선입견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까 봐 두려웠다. 메모장에 200개가 넘는 글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저장하고 지워내기를 반복했다.


도움을 받는 것도 사랑을 받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한때는 나를 바꿔가면서 타인만을 바라보면서 주는 것만이 사랑인 줄 착각했다. 사랑을 받는 방법을 몰랐던 나, 내 전부를 드러내지 못하는 반쪽자리 사랑이었다.


평범함이라는 틀 안에 나를 가두고자 안달복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공감받지 못하고 이상한 취급 당하며 손가락질을 당할까 두려웠구나. 솔직하게 드러낼 용기가 부족했다. 상처받을까봐 무서웠고 겁이 많았다.


아티스트웨이의 리더로 이끌면서도 함께하는 사람들의 말들을 들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치어리더가 됐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인색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드러내고 바라봐주는 것 자체가 힘이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읽어주는 것 자체가 치유가 됐다.


그러니 이 글을 마주하고 위로를 받는 이가 있고 그냥 나를 드러냈을 때 읽어주는 한 명이 있음이 그냥 고마운 것이다.


글을 쓰는데 혼자가 아니라 1명의 스치는 독자가 있으니 감사한 것이다. 그게 내가 글을 쓰는 본질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 연결되고 뭔가 내가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므로 일어나는 연결되는 지점들이 떠오르는 것들.


아.. 나는 예술로 연결감을 느끼고 싶었구나.

감정과 생각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그냥 표현할 뿐이다. 연결감을 느끼고 싶기에 다름이 싫었다. 근데 돌아보니 다르다는 것은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배울만한 것이 많았다. 세상을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근데 굳이 틀 안에 나를 짜맞출려고 아둥바둥거릴 필요가 없었다. 예민함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예민함은 히어로물의 초능력 같은 것이다. 나쁜 게 아니고 그냥 다양한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이들보다 몇 배로 더 극적인 감정을 느끼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무기이다. 그러니 당신의 예민함이 때때로 힘들지만 그런 당신은 초능력자라고 생각하면 어떨까?누군가의 이야기를 깊이있게 들어주며 삶을 살릴 히어로가 될 재능을 가진 거라고.


그냥 당신이 글을 써 내렸을 뿐인데 누군가는 과거의 나와 같이 연결감을 느낀다. 그렇게 삶을 다시 살아갈 힘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내 삶이 무너졌을 때 글이 없었다면 나는 이런 복잡한 존재가

자신밖에 없는 같다며 오랜 시간을 더 괴로워했을 것이다. 나를 살아가게 했던 글들이 꽤나 소중했다.


당신의 예민함은 다듬어야 할 초능력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스스로의 예민함을 탓하고 두려워 숨지 말고 조금만 소중한 당신의 이야기를 드러내 줄 용기 한 줌을 내어줬으면 좋겠다. 용기를 내어 글이 드러났을 때 누군가는 위로가 되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림으로 글로 움직임으로 연기로.

나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모두 굉장히 제각각 다른 생각과 모양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다. 저마다 다르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는 동일한 울림과 진동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러 가지 다채로운 표현 방식 중 하나가 글쓰기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너무 위대하게 완벽하게 생각하지 말자.

조금만 가볍게 먼저 익숙해져 보자.


글을 쓸 때 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내려놓고 처음 사람을 만나 사귀듯이 가볍게 서로 물어보는 호기심이 필요하다. 

틀에 가두려고 하고 강제로 바꾸려고 할 경우 사람은 멀리 달아나버린다. 그냥 첫 느낌 그대로 관심을 갖고 써내려 보면 어떨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상대에게 바라지 않는 것이다. 상대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내가 좋으니까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주고 싶은 것이다.

강요할수록 바꾸려고 요구할수록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난다.

숙련되지 않은 초보자의 경우도 비난은 글을 쓸 용기를 놓치게 만든다. 전문 지식들을 나열하는 정보성 글이나 홍보성을 가진 글과 달리 나를 보여주는 글은 굉장히 얄팍한 투명 유리구슬 같은 존재이다. 


어쩌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상대를 고치려 들고  채우려 드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시간을 내어주면 된다. 계속 글쓰기 강좌를 찾아서 듣고 브랜딩 전자책 챌린지를 수강하며 나를 고치려 들수록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글쓰기는 해야만 하는 업무가 되는 것이다.


must have to 반드시~해야 한다. (x) 창조성은 모순적이라서 참 재밌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작업이다. 이상하게 간절하게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힘이 들어가고 멀어지는 예술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예술은 놀이처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연기 작업을 할 때 나는 일처럼 했었다. 매일 연습실에 가서 대본을 무한 반복해서 분석하고 기계처럼 말로 뱉고 연습했다. 하지만 연기는 감정을 다루는 영역이라 오히려 엉뚱한 쪼가 생겼다. 연습을 거듭 반복하면 할수록 어색해졌다.


오히려 상대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고 다른 이색적인 체험과 취미를 통해 시선을 다른 곳에 뒀을 때, 나를 탐색하는 글감을 써 내려갔을 때, 자신에게 여유를 줬을 때 더 풍성한 영감을 바탕으로 몰입감 있는 연기를 펼치게 됐다. 주변에서 연기가 달라졌다는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잘해야 된다.라는 강박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타인에게 다 맞추려고 할 수록 오히려 영감은 멀어진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노력하되 마지막에는 하늘에 맡기듯 내려놓고 내 시선을 상대에게로 옮겨 그냥 믿는 내맡김이 필요했다.


실용적인 지식이나 시험의 경우 입시처럼 1가지를 무한 반복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예술은 경험하고 던져지는 과정이 중요했다. 1가지의 원싱을 픽해서 달려가는 것이 부와 성취, 성공을 이루기에는 좋다.


하지만 창조적인 작업에는 살짝 아쉽다. 창작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지식을 깊이 있게 습하고 몰입하며 폴리매스처럼 융합하는 결합을 했을  좋았다. 근데 너무 융합하면 보편적이고 익숙한 선택하는 대중에게는 선택받기 어려운 측면이 다. 일단 첫 시작은 호기심을 가진 아이처럼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는게 좋다. 즐겁게 놀이하듯 접근하고 지속할 힘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첫 경험이 즐거워야 무너지더라도 정답없는 창조 속에 다시 일어날 힘을 받게 된다.


아직 친밀해지지 않은 상대가 원치 않는 선물과 도움, 호의를 더해준들 만족스럽지 다. 원하지 않았던 호의와 친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을 더해주는 것, 멋대로 추측하고 채우려 하기보다 살펴볼 여유가 필요하다. 어떤 도움은 사람에 따라 감사함으로 받기도 하고 부담으로 받기도 한다. 오지랖이었던 것 같아 먼저 요청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개입하지 말아야지. 하는 반성하는 마음이 올라왔던 적이 있다.


타인의 조언을 듣고 휘둘리는 연애가 잘 풀리지 않듯이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원하는 걸 채워주는 것이 중요하지 내 선물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글쓰기도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억지로 고쳐야 돼. 라고 말하지 않는데 글을  안에 가둬서 완벽히 써 내려가야 돼. 라고 강요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틀에 가두고 고쳐내는 것은 나중 문제고 일단 자유롭게 꺼내고 풀어내야 한다. 고치고 퇴고하는 건 나중 일이니 일단 꺼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듯이 다른 글과 비교할게 아니라 그냥 우리 조금 친해져 볼까?관심을 갖는 물음이 필요하다. 그렇게 물음 속에 글쓰기도 다시 내게 놀자고 설레는 마음으로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올 것이다.


항상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고퀄리티의 글들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은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럴 땐 첫 글을 쓰며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내 글이 가진 장점들을 나열하고 함께 따뜻하게 이야기해 보자.


내가 가진 글이 지닌 장점들을 살펴보고 이야기해보자.

글을 응원하고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결국 타인의 글을 계속 비교하고 바라봤기에 내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결코 게을러서 글을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내고 수용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이다.어쩌면 연결되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인정받기를 원하니 너무 주변을 맞추다보니 행동에 제약이 걸린 셈이다. 그럴 땐 외면했던 마음, 감정을 들여다 볼 필요성이 있다.


물론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다. 근데 가끔은 아예 글 읽기와 sns쇼츠(외부의 가치관)를 중단하고 행동을 시작할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무수히 많이 읽다 보니 대립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소용돌이쳤던 순간이 있다. 그럴 땐 내면으로 깊게 들어가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생각을 바꾸려 하기보다 실존하는 몸의 집중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게 큰 힘이 다. 답답함이 올라올 때 고강도로 웨이트나 필라테스같은 조절하는 움직임에 집중하고 글로 다시 정리를 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 무력감이 생겼을 때 답답할 때 다시 실행하는 힘이 더해지는 걸 많이 느꼈다.


다른 사람의 글과 이야기가 아닌 마음에서 올라오는 그냥 내 생각을 표현할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드러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안전한 공간에서 피드백 이전에 따스한 응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의 장점에 대해 충분히 듣고 자신감을 가져야 다시 무너져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던 상처가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은 그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인데 선뜻 깊어지면 아플까봐 괜히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을 바꾸고 고치고 계속해서 더 채우려고 아등바등한다. 사랑받고 싶어서 채우려고 할수록 여유 없는 모습에 상대는 더 멀어진다.


상대와 시간을 내어 줄 여유를 주지 못한다. 그렇게 깊어질 수 있고 친밀해질 수 있는 관계도 스스로를 너무 채우기 급급해 상대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잃어 버리고 나서야 상대에게 시간의 여백을 내어주지 못했음에 후회하게 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근거 없는 피드백은 이전 사랑에서 받았던 치유되지 못 한 상처다. 앞으로 써 내려갈 나의 글은 이전의 글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시간이 흘렀고 생각과 경험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금 더 드러낼 용기를 내도 된다.


일단은 그냥 자유롭게 놀이하듯 기분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 시작이다. 즐겁고 유익한 경험을 해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 함께 할 때 계속 괴롭기만 하고 고치려 든다면 누가 좋아하겠나? 그런 피드백들은 바쁜 사회에서 충분히 받고 살고 있는데 글을 쓸 때도 물론 외부에서 피드백을 지만 적절히 수용하고 쳐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쓰고 싶은 가슴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 뜨거운 것이 있어야 결국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다.


창작이 제약이 걸렸던 이유도 내가 너무 사랑하고 애정을 가진 탓이었다. 애정을 넘어 집착을 했다. 나의 창작물을 자신처럼 생각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자신의 분신처럼 동일시한다. 자녀는 자신과는 다른 존재인데 동일시 여기며 바꾸려 든다. 너무 사랑하다 보니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생채기를 남긴다. 너무 뜨거운 사랑은 따뜻한 온기가 아닌 화상을 입힌다. 사랑하니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완벽을 만들고 싶어 진다. 그렇게 매진했고 소진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집착을 내려놓고 그냥 조금 더 무겁지 않게 가볍게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다.


영 글감이 써내려 지지 않는다면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면 그립고 화목하다. 너무 사랑하는 것도 때로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결국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창작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관계의 총합이다. 모든 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창작물 작업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먼저 사람이 될 것을 이야기한다. 내가 빈그릇으로서 담을 수 있는 중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은 단순히 감정의 표출이 아닌 사람과 삶을 배우는 일종의 수련인 셈이다. 그러니 절간에만 들어가 있지 않을 뿐 수도승과 같은 것이 예술가란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는 작업을 해야 창작물로서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었다.


써야 된다고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강박적으로 할수록 즐거운 글쓰기의 본질을 잊고 일이 된다. 창작이 놀이가 됐을 때 관객들은 자유로운 놀이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게 된다.

그러니 예술을 놀이처럼 조금은 바보처럼 아이처럼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자기 계발러들이 살아온 삶과는 다른 유연함이 필요하다. 물 흐르듯이 따라가는 생각을 써 내려갔을 때 나만의 독특한 색깔, 고유성을 갖게 된다.


백날 타인의 색깔을 따라 한들 본연의 색깔이 아닌 짜 맞춰진 형식의 글이 매력적일까? 따라 하기가 아닌 그냥 나를 당당히 드러내본다. 당신은 누구보다 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가 필요했다. 안전하게 응원받을 공간이 필요하다.


흩어지고 산발되는 생각을 그냥 적어내려 다. 치 모닝페이지를 쓰듯. 솔직하게 그냥 다 드러낸다. 개썅 마이웨이다. 창작 과정은 나만의 길을 따라 걸어가며 세상에 시각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비꼬고 실험할 용기가 필요하다.


다르더라도 눈치 보지 고 그냥 저지르고 표현할 용기가 필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아무리 공감을 한들 타인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도 되는 것이다.


아무리 창작자가 의도와 의미부여를 하더라도 관객들의 해석은 재각각이다. 결국 모든 것은 투사였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다줘도 그날 사람의 마음 상태따라 달라질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써 내려가도 된다. 용기를 주는 말이었. 글에 제동이 걸렸을 다시 있게 해 준 말이었다.


용기가 필요했다. 곱씹고 곱씹었을 때 가장 도움이 됐다.

잠깐의 스치는 인연이었는데 그때 그 말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줬던 말이라 참 고맙다. 창작자의 의도와 달리 관객들의 해석은 재각각이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계속 고려하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행동하지 못하고 정체되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너무 맞추다 보니 실행 제약이 걸렸다. 개방성이 높아 모든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전부 각자의 상황에 맞는 말들이라서  끄덕이며 수용하다보니 줏대없이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그러니 이곳에서만큼은 유영하듯이 자유롭게 흐르는 생각들을 그냥 흐름대로 제멋대로 적어내기로 한다.  것 그대로를 세상에 드러낼 용기를 내본다. 다수를 타깃으로 하는 것보다 솔직하고 질한 나를 온전히 드러냈을 연결되고 위로가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의미가 있다. 뭐 아무도 공감하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알아줬으니 그걸로 만족스럽다.

호흡의 글을 쓰며 나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작업은 일종의 아티스트 데이트였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생각을 따스하게 들어주는 작업이다.

그냥 드러내는 연습을 해본다.  그렇게 공감받고 연결되길 원했을까? 애초에 사람은 제각각 다른 존재인데 내가 터무니없는 기대를 불특정 다수에게 품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왜 나를 자유롭게 하는 공간에서도 인정받고 싶어 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인데 어리석었다. 한동안 지레

겁부터 먹고 드러내기를 두려웠음을 자각한다.


예술을 지속하는 이들은 예술이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줬던 은인인 경우가 많았다. 예술은 남들이 들어주지 않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였다. 예술을 통해 돈이 되지 않아도 결과에 상관없이 마냥 좋은 것, 사랑스럽고 애정이 가는 행위이다. 


근데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던 예술을 형식과 틀에 가두려 하니 숨통을 조인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어 예술을 했는데 상업 예술, 돈을 버는 예술을 강의를 들으며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할바에는 그냥 다른 일로 돈을 벌지. 그래서 돈벌이와 순수하게 자유로이 즐기고 싶은 예술을 돈벌이가 아닌 행복한 취미로 남기고자 한다. 돈을 벌려면 타인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 대중성이 짙은 것보다 취향을 타는 소수에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인디나 판소리 순수 예술 장르를 좋아했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부류는 대부분 고차원적인 것들, 마음을 생각하며 물질을 등한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들을 대상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렵겠다.


예술은 어리석은 놀이다. 일부 지식인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한심한 짓거리다. 근데 그 어리석은 놀이를 통한 쉼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치유한다. 예술은 그런 점에서 ai로 대체할 없는 힘과 따스한 온기를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지레 시작하기 전부터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많은 변수를 고려해 사전에 안전한 것을 선택하려고 했다. 관계에 있어서도 그랬고 글에 있어서도 그랬다.


이상을 꿈꾸지만 타협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다가오는 기회에도 아직 부족하다며 스스로 채우기 급급해서 놓치고 살았다. 내가 돈을 먼저 갖추고 실력을 조금 더 갖추고를 되내이며 그렇게 미뤄뒀던 것이다.


근데 글을 쓰든 글을 쓰지 않든 당신은 계속 나이가 들 것이다. 그러니 조금은 상처받을 용기를 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유독 잘하고 싶은 것들은 시작하기 전에 두려움이 앞서고는 한다. 오랫동안 숙련된 지식들을 수업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자신이 있었지만 내가 만든 소중한 것들은 세상에 드러내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만든 콘텐츠에 애정을 갖고 사랑한 나머지 상처가 다. 예술가 기질을 가진 친구들은 실리적인 것보다 무형의 보이지 않는 가치. 자신이 하는 것에 완벽을 구하고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이 많았다.


작품과 자신을 분리하고 집착하지 않는 연습 할 필요성이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공을 들이고 열정을 다해 토해내듯 만들다보니 그렇게까지 한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이윤을 남기는 것보다 그냥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더 완벽하게 구현하는 걸 좋아하는 장인 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는 창작물과 콘텐츠를 만드는 게 맞고 마케팅과 홍보는 다른 실무자가 해줄 때 훨씬 적합하단 생각이 든다.

 

협업을 할 때 관계와 연관된 것이니 잘하고 싶어서 자꾸 미루게 됐다. 마감 짓지 못하고 신뢰를 잃었던 적이 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혼자 하는 것은 안 되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으로 가볍지만 같이 하는 작업은 부담감이 . 모객 되지 않으면 계속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내 색을 전부 지우더라고 타인에 의견에 따르려고 했다. 

최대한 상대방에 맞춰서 진행하고자 노력하는 나를 발견했다. 부담감과 중압감에 잔뜩 노력하고 써 내려갔음에도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다. 내 생각들은 이중 삼중으로 꽁꽁 싸매서 박스 안에 박스를 계속 넣은 포장처럼 꽁꽁 숨겨서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나를 표현하고 싶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순 덩어리였다.


타인에게 그대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라고 하면서 나에게는 그 말은 건네주지 못하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더 잘하기를 강요했다. 숨이 막힐 듯이 힘들어도 버텨! 라며 스스로를 닦달하는 모습이 어리석었다.


과거의 수용받지 못한 두려움이 새로운 시작에 불안함이란 그림자로 제약이 걸렸다. 결국 과거 기억이 몸이 끌림에도 머리로는 아니야. 라며 빠른 판단을 내리고 내가 정해놓은 현실적인 틀 안에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아와 초자아 두 가지의 생각이 무수히 대립되어 소용돌이 치니 아직 나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드러내고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양가적인 감정,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는 행위는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나는 매번 무너지고 잠시 쉴 수는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도전을 포기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오늘 받았던 용기에 힘입어서 다시 글을 쓰고자 한다.


모든 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사랑도 창작도 내가 애정하는 것들을 지켜낼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두려움이 많았고 지레 겁먹었다. 글 속에서 수용받지 못할까 봐 치부를 드러내고 깊어지는 것이 꽤나 두려웠다. 드러내지 못하고 회피를 한 것 모두 너무 타인을 의식하고 고려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다 보니 자꾸 미루게 됐다. 그렇게 신뢰를 잃었다. 그래서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나의 멋진 장점들을 먼저 발견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칭찬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냥 솔직하게 툭 털어놓으면 되는 것을 어렵게 생각했다.


말 하나하나에 신중하고 상처를 받으니 역지사지로 생각했을 때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봐 조심스러워서 미뤄냈다. 상대는 거부하는 걸로 느끼고 그렇게 멀어졌다.


배우는 것은 바로 추진하면서 관계에 있어서는 돌다리를 두드리다가 깨부수는 신중함을 지녔다. 조심성을 내려놓고 그냥 가볍게 툭 건너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해보자. 조금만 가볍게 무게감과 의미를 내려놓고 즐거움을 느껴보자.


글을 툭툭 써내려 가다 보면 숙련되고 친근해질 것이다. 그렇게 독자와 함께 하는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글쓰기가 일이 아닌 독자들과 연결감을 느끼는 설레는 데이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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