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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Feb 19. 2024

다시 일어나게 했던 움직임

감기 걸린 날의 사색

최근 스케줄과 스트레스로 몸에 무리가 왔는지 감기에 제대로 걸렸어요. 목소리가 아예 나가버렸어요. 감기에 걸리면 기운이 바뀌는 때!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좋아" 남들 앞에서 괜찮지 않아도 멀쩡하게 씩씩하게 보이고 싶더라고요.

아프거나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찡찡거리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순적인 나를 마주해요.


힘들고 아파도 무식하게 참는 건 자신있었어요. 현대 무용을 처음 배울 때 다리를 찢느라고 허벅지 안쪽이 보랗빛 피멍으로 물들었을 때도 비명 한번 안지르고 이를 꽉 물고 버텼어요. 요새는 티를 내는 편인데 그땐 찍 소릴 안 하고 오기랑 악바리로 버텨내고 참아내니 독하단 소릴 꽤 들었어요.


어렸을 땐 아프면 "넌 왜 네 몸을 스스로 관리 못 해!" 라며

스스로를 몇 배로 찌르고는 했어요. 아픈 척하고 못난 모습을 보이면 멀어질까 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아이고 겁내 아프구먼. 아고 죽겠네 "하고 바로 스스로에게 맛있는 걸 잔뜩 먹일 생각을 하고 챙기는 나를 마주하게 됐어요.



몸이 아프면 괜히 외롭고 서러워서 혼자 폭풍 오열을 했어요. 지금은 밀푀유 나베 키트를 사서 연신 콜록거리고 뜨끈한 국물에 혼밥을 준비하는 덤덤한 나를 발견해요. 울어 봐야 아픈 목이 2배 3배로 더 아프니 그냥 맛있는 거 실컷 먹고 잠이나 디비 자야겠다.


"아.. 아파도 맛있는 거 보니 살만하네. "


머리는 쪼개질 것 같고 먹으면서 기침을 연신 반복해서 괴롭지만 쫌 잘 만든 것 같아 뿌듯해요. 밀푀유 나베에 칼국수까지 야무지게 제대로 만들어 먹었어요. 


"겨울엔 역시 국물이지."


자취방에서 홀로 아프니 괜히 서럽긴 한데 뜨끈한 국물이 헛헛한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줍니다. 아프다고 동네방네 티 내는 것도 괜히 애매하고 진짜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으면 혼자 회복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길바닥에서 기절하고 응급실 실려갔던 거 생각하면 이 정도는 손톱에 피난 정도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뭐 죽은 것도 아닌데.. 그지 같은 감기 따위에게 질까 보냐! 꺼져!! 내가 너 이 감기 시키 이기고 만다.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해보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조금 살만하니 타인에게 좀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지. 진짜 사람이 힘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너지겠다는 그런 생각. 그러니 주변에 그런 조짐이 보였을 때 칼같이 거절하고 자르기보단 내 말이 혹시 모를 동아줄이나 희망일지 모르니 내가 여유가 있다면 사람을 외면하지 말아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게 어렵고 수고가 드다음에 행동할 수 있도록 다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파서 집에 고립되어 있는 나를 보니 코로나 시기 겪은 여러 고립과 무력감이 떠올라서 몇 가지 꺼내볼까 해요.


과거 여러 운동을 접하며 필라테스나 등산, 따릉이, 무용 클래스는 좋아했는데 러닝은 유독 죽을 것 같이 힘들었어요. 근데 고통스러운 러닝은 머리를 가볍게 하고 코로나 시기를 

이겨낼 힘이 됐어요.


"러닝"하면 4년 전 코로나 시국 정부 규제로 인해 체육 업계가 강제 휴무를 했던 경험이 떠올리게 해요.


센터에서 GX(그룹수업) 수업을 하는 프리랜서 강사다 보니 일을 쉬면 월급이 있는 직장인들과 달리 수입이 0원이었죠. 우울을 넘어 무력감을 경험했어요. 센터에 소속되어 있는 입장이라 언제 일을 다시 시작할지 모르니 다른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웠죠.


경제적으로 힘드니 괜히 타인에게 하소연하며 힘듦을 내비치기 싫어 혼자 동굴로 들어갔어요. 먹는 걸 진짜 좋아했는데 밥 한 끼조차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군요. 그래도 살고는 싶어서 억지로 겨우 하루 1끼를 입에 욱여넣고 씻고 대부분의 시간을 잠만 자며 살았죠. 거의 반쯤 죽은 시체처럼 보냈어요.


타인의 말 한마디, 감정에 쉽게 물들었어요. 지금은 방어막이 생겼지만 원하지 않아도  강제 공감을 할 만큼 꽤 섬세한 편이었어요. 때때로 원치 않는 강제 공감으로 몸이 아프기도 했어요. 자극에 민감도가 높은 만큼 행동 하나에도 많은 정보값이 떠오르기 때문에 의외로 사소한 것을 기억 못 하더라고요.


사람을 좋아하고 개방성이 높은데 민감도도 높고 실행력도 높은 편이라 머릿속이 복잡했고 복잡함을 움직임을 통해 풀었어요. 보통 아프고 힘들면 잠자코 혼자 시간을 보낼 텐데 무식하게 세상에 나오곤 했죠.


민감한 사람이니 많은 사람보단 내게 맡겨진 소수의 사람에게만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해요. 마음에 들어온 사람과는 너무 깊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다보니 깊이 있게 연결되는 연애에 굉장히 신중하고 두렵더라고요. 친밀해지면 타인의 즐거움도 슬픔도 감정적으로 크게 물들었어요. 그러다보니 타인도 나처럼 힘들까봐 좋을 땐 타인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내가 힘들 땐 괜히 다른 사람도 나처럼 물들어 힘들어질까 봐 걱정스러웠어요. ​그러다 보니 힘들 때 진짜 힘들다. 가 아니라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오히려 웃으면서 

"괜찮다."라고 돼 내고 더 혼자가 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달 뒤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갑자기 한 달 단위로 몇 개월씩 연장되는 기약 없는 휴무는 불안함과 무력감을 불러왔어요. 당장 생계의 위협이었어요.


힘들수록 더욱 "괜찮다." 억지웃음 지으면서 철저히 혼자가 되려고 했죠. 타인에게 부담을 주며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 무력감을 극복하고 세상에 다시 나와 소통하게 했던 것이 "운동"이었어요.


그 당시 몇 개월씩 강제 휴무를 반복하는 탓에 버티지 못한 일부 대표님은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후 세상과의 이별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많은 피트니스 종사자와 필라테스 강사가 버티지 못하고 업계를 떠났던 걸로 기억해요. 기약이 없으니까요.



코로나로 인한 정부의 규제, 시스템적인 문제를 바꾸겠다며 피트니스 연대와 함께 국회 의사당 앞에 찾아가 정부가 내린 방역 수칙을 지키며 조용한 1인 시위에 동참했어요.


나는 대표가 아니라 책임질 식구 없이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입장이었지만 많은 식구를 거느린 대표님의 자살 일화는 슬프고 안타까웠거든요. 그래서 넋 놓고 무시할 수 없었어요. 사업자들 사이에 껴서 프리랜서 강사지만 같이 국회에 팻말을 들고 시위에 참여했어요. 일을 쉬어도 월급이 나오는 직장인과 달리 강제 휴업으로 수익이 0원이 됐어요.


정의론에서 얼핏 들었던 "사회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을 최소한의 자유"를 위해 적절하게 사회에 불평등을 표현하는 움직임들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불평등을 표현하는 시위를 통해 당장 현실이 바뀐다는 보장은 없지만 묵묵히 동참했어요. 지금의 일을 무시하고 방관자가 되면 내가 대표가 돼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모른 척하고 지나갈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언젠가 내게 되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집합이 풀릴 무렵 강제로 일을 쉬면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기를 위해 소규모 집합 시위도 참여했어요.


시위를 할 당시 피트니스 연맹 외에도 여러 연대가 엮여서 각자의 이야기를 내비쳤어요. 근데 여러 연대가 섞이다 보니 불공정함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정권과 엮어 비방을 하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꽤 있더라고요.


특정 정치 성향 없이 중립이었는데 그냥 호기심이 많아서 사람들이 말하는 걸 유심히 관찰해보고는 했어요. 자극적인 어그로를 끌어 매스컴을 타고 이슈를 만들어 원래의 순수한 목적과 본질, 권리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물질을 채우려 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시위도 정의롭거나 이상적이지 않구나.


그때 시위를 참여하는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고 바로 잡으려 한다기보다는 이곳 역시 개인의 이익이 중요했고 약자가 꼭 선하지만은 않다.라는 생각이 맴돌았어요.


위안부나 세월호 사건의 시위도 가봤는데 약자를 핑계 삼아 개인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보이는 게 속상했어요. 왜 순수한 의도는 퇴색되는 걸까?


보편적인 것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들 또한 보편적인 것을 존중하지 못하며 다름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기 바빠 보였어요. 경청과 소통이 부재한 사회란 생각이 들었어요.


공동체의 불행을 무시하고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산다면 지금은 괜찮아도 언젠가 그 불행이 나에게 내 자손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너무 세상을 순수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은데 여러 시위의 현장 속에서 몸으로 부딪혀 보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순수한 몽상가였음을 느꼈어요.


아무리 외친 들 시스템은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내가 하는 행위가 의미 없는 바보짓, 허공에 하는 헛발질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표현하는 것만으로 자유로웠어요.


그래서 그런지 시대를 풍자했던 연극과 예술을 좋아했나 봐요. 싸우지 않고 감정을 건드리는 예술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단 꿈을 꿨어요.


상업적인, 대중적인 단순 재미와 유희, 대다수가 관심을 가지는 돈이 되는 예술보다는 순수한 의견과 주장을 표현할 수 있는 독립 영화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직면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에 끌렸어요.


대중적인 것은 남들이 충분히 잘 다루고 있으니 누군가는 남들이 무관심한 소외된 곳, 독창적인 영역, 새롭게 창조하는 일에 사명을 갖고 힘을 실어줘야 되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혼자 자문 자답하고는 했죠. 그러다 보니 대학생 때 위안부들의 일화를 다룬 희곡을 찾게 됐어요. 졸업 작품으로 진행하기도 했었죠. 소외된 사람들의 말을 대변해주고 싶었어요. 억울함,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그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고 예술을 통해 위로하고 싶었어요.


이익을 내세우며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드는 일은 너무 억울하고 슬펐거든요. 위안부 할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고 싶어서 나눔의 집에 찾아가 할머니가 만드신 작품들을 구매하고 이야기를 들으러 갔어요. 그 후 우연히 나눔의 집에 기부했던 금액이 할머니께 돌아가지 않았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허탈하더라고요. 내가 능력을 갖춰서 돈으로 기부를 하더라도 쓰임이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무엇을 믿어야 되는 걸까? 복잡해졌어요. 내가 직접 그 현장에 가서 겪어보기 전까지 진실은 모르는 거지만 답답했어요. 아무리 예술로 진실을 외친 들 진짜 들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정작 관심 없고 닿을 수 없는 소리 없는 메아리 같고 허무했어요.

다수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아픔, 어려움에 눈길이 갔어요. 내가 아픔에 민감한 탓이었죠. 힘들지만 누군가는 기억해야 될 사회의 아픔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 들어주거나 알아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면 힘듦을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질문하게 됐어요.


타인의 이야기를 알아버리고 공감하다 보니 어릴 땐 나보다 주변 사람들한테 시선이 분산되고는 했어요. 때로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남 일에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는 생각도 들었죠.


아픔을 공감했다는 이유로 에너지가 있다면 누군가는 잊지 않고 함께 표현해야 세상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고는 했어요. 당장 여유치 않아서 행동하지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 잊지 않고 기억해야 양심에 따라서 살지 않을까? 방관하며 악의 평범성을 따르지 않고 떳떳한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빙빙 돌고 돌아서 나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를 묻다 보니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중 통증으로부터 건강한 삶을 지켜주는 일에 가치를 느꼈어요. 몸을 공부하면서 필라테스 강사가 됐어요.


그렇게 필라테스 일을 지키고 싶어서 추운 겨울 목도리와 모자를 꽁꽁 싸매고 시위에 동참했어요. 고통받는 대표님과 동종업계의 종사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운동을 지도하는 강사로서 내 일을 사랑했어요. 내가 하는 필라테스라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고 싶었어요.


자유와 공정함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최소한의 것을 지켜내기 위함이라고 봐요. 표현하는 것은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각자도생 핵개인의 시대라고 이야기하지만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더라고요.


나 혼자 잘 사는 것 만으로는 행복하지 않아요. 주변이 아프면 그 감정에 동화되고 쉽게 물드는 탓에 내 마음속에 자리 잡힌 사람들이 모두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결국 내가 통증에 민감하고 예민하니 주변인의 아픔을 사회에 아픔을 쉽게 외면하기에는 방관자 같더라고요. 그래서 운동을 가르칠 때도 그냥 돈을 벌기 위해 대충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마음 중심에 두고 진심으로 운동을 지도하고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도했어요. 그러다 보니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항상 배우려고 노력하게 됐던 것 같아요.


만약 글로벌 6k 버추런을 신청해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몰아넣고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시간 동안 세상을 탓하면서 무력감이 이어졌을 거예요. 그러니 움직임, 운동은 저를 다시 살게 한 은인이에요.


바뀌지 않는 환경을 원망하기보다는 일단 내 몸을 움직여 달리기를 하고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열었어요. 그렇게 계속 찾아서 움직이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무언가 다른 도전들을 시작할 수 있더라고요. ​​


당장 현실은 바뀌지 않더라도 내 몸과 관점은 쉽게 통제할 수 있어요. 마음 근력을 키우고 자신을 잘 보듬어 주는 것이 모든 것의 기초라고 생각해요.


나를 먼저 채우면 주변과 사회에 좋은 에너지가 확장이 되고 언젠가 세상에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꿈꿔요.


가장 먼저 1순위로 해야 될 것은 내 몸과 마음을 챙기기 위해 움직이기란 생각이 들어요. 같이 몸을 움직이며 함께 긍정적인 동기와 에너지를 받는 것이 중요했어요.


잘 뛰지 못하고 서툴러도 그냥 하는 거죠. 내 삶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환경에 몰아넣고서 그냥 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냥 시작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예요.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어요. 우린 선수가 아니잖아요. 그건 욕심이죠. Sns 속에 화려한 기록을 보유한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아가면 돼요. 내 속도가 느리면 느린 대로 그냥 나아가면 되더라고요.


인생은 100m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긴 호흡으로 지속해야 하는 마라톤과 같아요. 삶은 속도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목표나 결과물보다 삶의 대부분을 이루는 시간은 과정인데 그 과정이 목표와 결과 하나로 인해 즐기지 못하고 마냥 괴롭고 고통스럽다면 조금 슬프잖아요. 결과를 막상 이뤘을 때도 목표만 목매면 공허하고 헛헛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운동이 단순히 다이어트를 위한 괴로운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활력을 심어주는 즐거운 습관이 됐으면 좋겠어요. 움직이는 시간만큼은 나를 소중히 아껴주고 챙겨주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닌 앞으로 삶을 더 행복하게 가꾸기 위해 운동을 지속하는 거죠.


가끔 주변 경관도 바라보고 같이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사람과 함께 힘들지만 웃으면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해요. 러닝을 할 때 매 순간이 고통스럽지만 타는 듯한 갈증 끝에 달콤한 물과 "힘내!" 라며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완주할 수 있더라고요. 아무리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삶 속에도 당신을 응원하는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해요.


내가 너무 고통스럽다 보면 주변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기 힘들더라고요. 때때로 삶 속에 어쩔 수 없는 아픔이 찾아와 고통스럽고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가 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나만 몰랐을 뿐 조금만 되돌아보면 내 주변에는 참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많았어요.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용기 내어 마음을 열지 못했을 뿐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살만한 것 같아요.


우리는 쫌 멋지니까 나아갈 수 있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혹시 주변에 아직 그런 사람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책을 통해서 유튜브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고 또 세상에 나가 용기 내어 주변에 문을 두드리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먼저 나 자신이 되어줄 수 있더라고요.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당신을 알고 찾아 줄 거예요. 그러니 삶 속에 어려움 속에서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해요.


추가로 글쓰기로 솔직한 내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자신과 친해지기 좋더라고요. "괜찮아" 라며 웃음 짓고 숨기지 말고 스스로에게만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 저처럼 예민한 성향과 도덕적인 기준이 높은 사람들은 뒷담 하는 현장에서 듣고 있거나 남을 나쁜 사람이라 낙인찍고 나쁘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책하기 쉽더라고요.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면 굳이 타인에게 얘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타인을 평가하고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 볼 기회를 박탈한다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말은 상대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굳이 말로 옮기지 않는 편이에요.


타블로 때도 거짓임이 밝혀졌고 이번에 이선균 사건도 소문만으로 남을 판단하고 말의 무게를 가볍게 놀렸기 때문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설사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충분히 알고 반성할 텐데 굳이 남의 허물을 밝히고 언급해서 좋을 건 없는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죄가 없고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은 선한 면과 악한 면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입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무성한 소문을 평가하거나 판단하기 보기보다는 사람을 직접 겪어보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이상 함부로 밝히며 언급하기는 꺼려지더라고요. 조용히 피합니다. 굳이 소중한 내 에너지를 낭비하기 아까우니까요.


그럴 땐 나만 보는 모닝 페이지를 기록하고 시각화하면 도움이 돼요. 모닝 페이지를 기록하다 보면 타인과 외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객관화해서 바라볼 힘이 생겨요. 자신의 좌절된 욕망을 살피는데 도움이 돼요. 모든 원인을 상호작용 쌍방의 문제로 보고 남 탓이 아닌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예시 자료]


"으아아. 1도 괜찮지 않아. 그지 같아!! 죽을 것 같아!! 너 1도 괜찮지 않잖아! 괜찮기는 개뿔! 난 쿨하지 않은 뒤끝 저는 찌질한 뇨자라고!!빡쳐!! 속상해!!!"


[주의 사항]_모닝 페이지는 세상에 공개하지 않고 묻어두는 게 원칙이다. 생각과 상상은 자유니 까요.


그렇게 내 감정을 들어주고 털어놓고 나면 다시 밝고 해맑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더라고요.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사람들을 다시 마주할 힘이 생기더라고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냥 내 속도대로 천천히 나아가면 돼요. 넘어지면 충분히 보듬고 다시 일어나서 또 나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내 삶을 포기하지 말아요. 그냥 같이 일어나서 움직여 봐요.​


지금 당장 취직을 하지 못했어도

관계에서 상처를 입었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어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예전과 같은 건강을 잃었을지라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나아지더라고요.


인생사는 새옹지마라잖아요.

내가 눈물짓고 울었던 만큼 타인을 공감할 수 있고 내가 아프고 힘들었던 만큼 환하게 웃을 수 있더라고요. 고통은 나를 성장시키고 앞으로의 삶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자원이 되는 거죠.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시 나아갈 수 있어요.

다시금 원하는 행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어요.


함께라서 극복할 수 있다!!! 꺅꺅!

함께 뛰어준 사람들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어요.

오늘 하루 힘차게 죽을 것 같이 차오르는 숨을 고르고

움직이면서 내 삶을 같이 이겨내고 극복해 봐요.


당신은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재기할 수 있는 힘, 꿈을 위해 나와 주변의 행복한 삶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자질을 이미 충분히 가졌어요. 발견해서 끄집어내 줄 일만 남았을 뿐!


​그러니까 아주 조금만 용기를 내봐요.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일단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함께 해봐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일도 불행한 날도 언젠가는 끝이 오더라고요.

코로나라는 긴 악몽이 끝났던 것처럼요.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이다. "

지금까지 험난한 세상을 살아왔다는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요.



그냥 포기하지만 말고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남들 보지 말고 그냥 내 속도대로 쉬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포기만 하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새로운 기회들이 또 찾아오더라고요.


이겨낼 수 있는 힘, 인성도 체력에서 나오는 걸 느꼈어요. 작은 도전을 실천할 용기도 건강에서 나오더라고요. 움직임은 무력한 감정들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 힘을 더해줬어요. 작은 행동은 성취를 만들어주고 여러 도전을 하며 많은 꿈을 실천할 기회를 열어주더라고요.


저는 여러분의 가능성 하나만 믿고 응원할게요.

그러니까 용기 내어 함께 움직여 봐요.


결국 사람들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어요. 돌아보니 자각하지 못했을 뿐 고마운 것 투성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 함께 하나씩 용기를 내봐요. 운동을 한다고 당장 빠르게 큰돈을 번다.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한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체력을 키워 드릴 수 있어요.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현재의 내 관점을 100프로 바꿀 수 있는 첫 시작을 움직임이란 작은 성취 경험을 통해 경험시켜 드릴게요.


통증에 민감했고 가난이란 결핍을 겪다 보니 결핍은 폭발적인 성취를 이룰 동력이 되기도 했었죠.


근데 불안과 결핍을 건드려 제가 겪은 정답을 강요하며 큰돈을 버는 방식을 적용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사기꾼"과 "선한 영향력"은 한 끗 차이인 것 같았어요.


먼저 내 마음 중심을 "사람"으로 두면 더 나은 걸 나눠주고 싶어서 계속 공부를 지속하게 돼요. 도움이 되는 부분을 연구하고 실력이 갖춰지면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죠. 그렇게 어제보다 좀 더 달라진 나를 마주할 수 있어요. 건강한 몸과 삶에 행동할 수 있는 실행력, 체력 관리만큼은 확실히 도와 드릴게요.


자기 계발서를 100권을 읽고 돈 잘 버는 법 강의를 듣고 운동 유튜브를 백날 들여다봐도 내 삶에 적용할 실행력이 없고 일상에 녹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잖아요.


허황된 꿈이 아닌 지금 당장 함께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움직임을 통해 삶의 변화를 맛볼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작은 실천을 통해 꿈에 도달한 건강한 나를 만날 수 있어요.


무너졌다면 다시 세상에 뛰어나갈 수 있도록! 작심삼일이어도 괜찮아요. 내 속도대로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걸로 여러분은 충분히 강한 사람이니까요. 우리 모두 아프지 말고 삶 속의 여러 모양의 움직임을 만들어가면서 행복하자고요. 여러분은 이미 있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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