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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Feb 28. 2024

무너져 내렸을 때 다시 나를 안아줬던 방법들

가슴을 당당하게 펴는 방법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작가로 글을 쓰기도 하지만 독자로서 여러 작가님들의 다양한 글들을 읽으면서 문득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한 마음을 보답해 드리고 싶단 생각이 올라왔어요.


그렇다면 우리 작가님과 독자님들께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내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됐어요.


작가와 독자님들이 건강하게 오랫동안 글을 쓰고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재능으로 그냥 자유롭게 쓰고 싶은 글 외에도 건강, 운동 동기부여를 시켜 드려야겠단 생각이 빼꼼 올라왔어요.[밑으로 내리면 가슴을 펴는 푸셥이 있어요.]


이번에는 가슴을 당당하게 펴지 못 하게 하는 마음가짐과 

자격지심, 관점을 바꾸는 방법, 자신감, 피드백 그 외  여러 잡다한 경험, 생각들을 주저리주저리 생각나는대로 유영을 하듯 산발적으로 나열해볼까 합니다.


얼마 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웰다잉 교육] 과정에서

사람들의 첫인상포스트잇에 정성껏 적어 드렸었는데 제가 써드린 첫인상 글들을 보고 신내림 받은 무당처럼 대부분 맞아 떨어졌다고 하고 칭찬을 한트럭으로 받은 것 같았다며 인상깊은 포스트잇 2장을 뽑는데 7분 중 5분이 제가 써드린 글을 뽑아주시는 신기 경험을 하게 됐. 

웰다잉 교육에서 받은 첫인상 글들_순수란 별명을 지어 사용했다.


감사하단 후기 덕분에 글쓰기가 쉽지 고 힘들게 느껴져도 다시 도전하고 지속기를 받게 어요. 내가 글을 받을 때도 감사했고 타인에게 써 드렸을 때 감사히 받아 주신 마음덕분 행복했어요. 예쁜 후기와 말들은 울컥한 감동을 선물해 주는 것을 느껴요.


 누굴 돕고 드러내기 창피하고 부족한 사람이란 생각에 글을 쓰고서 발행을 미루고는 했어요. 근데 첫인상 글쓰기에서 받은 칭찬과 [무브유어 마인드 40일 챌린지 모임]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대화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요.


그리고 브런치에서 제 글감을 보고 따뜻하게 관심을 귀울이고 좋아요.를 살포시 눌러 주신 따스함에 참 감사했어요. 그래서 글을 다시 써내리고 발행을 꾹 누를 용기를 얻게 됐어요. 글쓰기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했던 포스팅은 타인을 위한 말임과 동시에 나를 위한 말이기도 했어요.

태니지먼트 강점 검사_동기부여_치어리더

강점 검사인 태니지먼트 검사에 치어리더가 나왔어요. 오프라인 모임에서 응원하고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말하는 능력이 강점이라고 하더라고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완벽주의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완벽주의 성향이 나오고 자신감이 부족하다보니 세상에 드러내고 확신을 갖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었어요.


과거 상담에서 남들은 80을 하면 만족하지만 나는 90을 해도 10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란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90에도 만족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조언을 건내 받았죠. 상담 검사에서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좋게 발달됐는데 이상주의 성향이 강해서 주변에 현실적인 사람과 조언을 주고 받으라는 피드백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열정과 추진력, 완벽주의로 인한 번아웃을 주의하란 얘길 들었네요.


실제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언어 영역에서 두문제를 틀렸을 때도 틀린 두 문제만 눈에 들어 왔어요. 대학생 시절 전 과목에서 대부분 A+을 받고 뮤지컬 가창에서 연습과 달리 시험에서 넘 긴장해서 b-였나? c였나? 긴장을 너무 심하게 해서 한 과목에 낮은 점수를 받아 4.5에서 4.3학점받고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다른 좋았던 점수들은 사실 기억이 안 났어요. 


지금은 관점을 바꿔 장점을 보는 방법을 훈련했지만 과거에는 오점과 낮은 점수, 부정적인 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어요.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지만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한계를 느끼고 자신이 없었어요. "타고난 끼와(골격부터가 남다른)외모, 연기에 타고난 친구를 보며 재능이 없어. 성실함과 노력으로 받은 점수지. "라며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죠. 과거를 생각하면 노력으로 성취를 하기는 했지만 만족하지 못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타인에 업적은 높이 평가하면서 항상 스스로는 채우려고 변화시킬려고 뒤에서 아등바둥 발버둥치는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항상 열정적으로 매진하고 뒤에서도 남모르게 조용히 노력했어요. 도움을 구하는 걸 잘 못해서 혼자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번아웃에 취약했고 소진되는 사람이었어요. 한가지에 몰입할 땐 힘든 걸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올 정도로 혹사시키고 골병이 나서야 지쳤다는 것을 깨닫고는 했죠.


겸손이라는 좋은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수많은 책에서 접한 높은 롤모델에 비하면 '난 아무 것도 아니야.'라며 스스로를 깎으며 결과물에 집착하고 목숨을 걸고는 했어요.


근데 스스로를 깎아내린 결과 공연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부족하다면서 받아들이지 못했고 운동을 잘 한다고 피트니스 대회 선수로 서포트 해주시겠다는 제안에도 필라테스 강사 시절 트레이너라는 새로운 이직 제안에도 아직 부족하다면서 거절했고 호감이 가는 이성이 다가왔을 때도 내가 정서적으로 더 채워야 될 안정감과 경제적인 능력을 생각하면서 미뤄냈어요. 내 부족함이 민폐가 되고 관계가 틀어질까봐 도전하고 싶은 마음, 깊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 궁금증 음에도 지레 겁부터 먹고 기회를 잡지 못하고 놓쳐 버리는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능력이 없으면 난 버려질거야."


내가 능력이 없어서 돈을 더 많이 벌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가족과 헤어지며 혼자가 됐다는 생각이 모든 행동들을 함에 있어서 과도한 힘이 들어가고 발목을 잡은 적이 있어요.

가족의 개인 회생을 하는 이유가 내가 돈을 주지 않고 혼자 독립했기 때문이라는 부모님의 원망 어린 말에 죄책감에 시달렸었죠. 부모님이 동생이 입원했을 때 매달 200만원씩 드는 병원비를 달라고 요구하셨을 때 내가 그만한 능력이 없다는 한계에 자책을 했었죠.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내 솔직한 민낯과 가족사를 고백하니 사랑아닌 동정을 하고 함부로 했었죠. 가족과 끊어졌을 때 이 모든 사건들이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라면서 꽤 오랜 시간을 자책하면서 보냈어요.

장녀면서 가족의 일을 책임지지 못 했다는 부채감, 여러가지 복잡한 것들이 한되 뒤섞여 결국 안타까운 부모님도 동생도 세상도 윈망할 수 없었죠. 그렇게 참고 참다 쓰러져 울고 가장 만만했던 스스로를 탓하다 실신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시간들.

코로나로 일을 쉴 때 약속의 교회에 나오지 않아서 라며 받았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무력감, 가난해서 받았던 뒷담과 은근한 따돌림,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없던 어린 시절. 드라마 보다 드라마 같았던 짧은 연애와 이별. 종교에 무일푼으로 봉사를 했던 시간들, 그림에 악한 영이 느껴진다며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가고 싶던 학교 진학을 포기했던 일. 엄마의 묻지마 퍽치기 사고, 어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던 빈자리의 여백. 사기로 인한 가난, 스트레스로 인한 미주신경성실신으로 몇차례 응급실에 실려갔던 사건들. 그러니 생존을 위해서는 내가 능력을 갖추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족과의 이별은 능력이 없으면 난 버려질 것 같은 결핍감을 갖고 스스로를 항상 그림자처럼 갉아 먹고는 했죠. 덕분에 성취를 이룰 동력이 됐지만 결핍으로 인한 그림자를 수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근데 이 모든 상처와 스트레스, 결핍, 환경이 어때서요?

그게 뭐가 문제죠? 결핍이란 사건샅샅이 살펴 봅시다.


중학생 때 부모님의 반대로 학교 진학이 좌절된 덕분에 타인에 말을 따르면 한이 생기고 원망하는 마음이 자리잡는 걸 깨달았죠. 부모님 탓, 남 탓을 하고 싶지 않아서 고3  연기는 사기, 범죄라는 소릴 들었지만 혼자 알바를 했고 재수를 해서 대학에 진학을 했고 장학금을 받았어요. 내 욕망에 따라 선택을 하면 스스로 한 선택이 재수를 겪으며 힘들었던 실패 경험일지라도 온전히 감당하고 나를 책임질 힘이 생겨요. 그리고 후회로 남지 않아요.

 

무일푼으로 올인했던 종교 활동, 세상의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미친듯이 매진했던 순간도 있었죠. 종교적 고양감에 심취했고 신만을 위해 살겠다며 사랑을 하지 않고 평생 봉사하는 꿈을 꿨죠. 삶에 목적이었던 종교에 거리감을 둔 후 내 모든 삶의 목적을 잃고 무력감에 우울한 시기를 보냈죠. 종교에서는 인내와 끈기, 헌신을 배웠고 가족에게 경험하지 못 했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어요. 무일푼 봉사 덕분에 독기를 품고 이제는 남들 봉사가 아닌 나를 위해 살겠다며 돈에 미쳐 일만하는 기계처럼 일하게 했죠. 독기를 품고 2년반만에 전세를 갚을 수 있었어요. 무일푼으로 열정 페이로 일했던 사람이라 보상이 굉장히 달콤했죠.


가족은 독립하지 말라고 했지만 환경을 바꾸기 위해 청개구리가 됐어요. 혼자 대출을 받고 2년반 필라테스 강사로 빡쌔게 돈을 벌어 전세 대출금을 갚았어요. 코딱지만한 방이었지만 나만의 공간이 있고 없고는 삶의 질이 확실히 달라지는 걸 느꼈죠. 내가 원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고요를 선물해줬어요. 내가 먼저 살기 위해 도망갔던 거죠. 오은영 박사님 서적에도 가족과 분리를 이야기하니 당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셨으면 해요. 당신이 단단해지고 먼저 홀로 바로 서야 미래에 가족을 도울 수 있어요.


어릴 때 부터 겪은 가난과 여러가지 결핍은 많은 것을 성취할 강력한 동력이 되었어요. 나와 비슷한 사건을 겪었을 사람들, 열악함, 가난을 이해하게 됐고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을 공감할 힘이 생겼죠. 결핍은 사람을 자만하지 않고 사람을 겸손하게 해요.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자리잡고 안정되고 가정을 이룬다면 저처럼 어릴 때 교육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가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장학재단에 기부를 하고 자신의 아픔을 예술을 통해 적절한 승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예술치료 부분, 사회복지 청년 장학재단에 아주 조금 몇만원이라도 소박하게라도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꿈을 꾸게 했어요.


엄마의 퍽치기 사고, 몸의 신체의 예민함, 잘못된 운동을 배우면서 겪은 통증은 삶 속에서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죠. 필라테스 강사로서 교육을 받게 했고 필라테스뿐만 아니라 사도북 종주부터 스쿠버 다이빙까지 여러가지 다양한 경험들을 접하게 했죠. 사람들을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게 만들어 줬어요.


호르몬과 스트레스로 왔던 미주신경성실신과 응급실에 실려갔던 사건은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게 했어요.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누가 뭐라든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껏 도전하게 했죠. 그리고 상담과 표현예술치료를 공부하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삶을 연구하며 콘텐츠를 창작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었어요.


성적인 욕망은 철저히 금기시 여기고 통제된 삶, 혼전순결이라는 가치관 속에서 살았어서 정서적 교감에서 육체적 쾌락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내면 아이, 사랑, 육아 서적을 공부하고  종교와 보편적인 규칙이 욕망을 억압하며 인지부조화를 가져다주며 신체적 통증을 야기함을 알게 됐죠. 책을 읽으면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꼭 사랑을 해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건강과 올바른 자아경계 형성을 위해서 스킨십이 중요함을 깨달았고 접촉 즉흥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적절한 승화 방법과 예술치료를 탐구하게 됐어요. 연애와 이별 후 심리를 공부하고 여러 다양한 애착 유형과 자신의 깊은 심연을 마주하며 고통스럽고 순탄하지 않았지만 인생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어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라 성적인 이야기를 입에 담는 걸 금기시했는데 육체의 쾌락 또한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배우게 됐어요. 성을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양지로 드러내도 되는 것, 서로를 깊게 연결감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놀이, 교감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변하게 됐네요.


가족과의 이별  친척의 "너 자신만을 위해 살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유하게 제 자신을 위한 탐색과 모험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배우고 경험하며 많이 돌아닌 탓에 매주 마주했던 분이 다른 사람이 1년에 겪을 일을 1달 안에 겪은 것 같은 활동을 했다며 인생이  "압축 인생" 같다는 얘길 듣기도 했어요. 어린 아이같이 마냥 해맑은 것 같은데 깊이가 느껴져서 입체적이고 유연한 모순적인 사람이라는 얘길 듣게 됐어요.


책임에서 벗어난 덕분에 세상에 다양한 많은 사람을 만나게 고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됐어요.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나를 아껴줬고 응원해줬던 고마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냥 나를 든든히 응원해주기도 하고 적절한 현실적인 조언을 통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줬죠. 도움을 요청할 때 그 요청에 응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세상은 감사한 것 투성이며 내가 용기없는 겁쟁이라 두려워서 몰랐을 뿐이었죠. 결국 사람은 사람을 통해 치유할 수 있음을 느꼈어요.


이별 후 가족은 제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게 됐어요. 나는 능력이 없고 돈이 없어서 버려진게 아니라 그냥 각자 삶 속에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느껴요.


그러니 그 당시 가족의 선택을 원망하지 않고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히려 제게 자유를 선물해줬었고 표현방식과 줄 수 있는 능력의 한계일 뿐 어쩌면 가장 아팠던 건 연락을 끊었던 엄마일지도 몰라요. 가족은 여전히 나를 사랑했어요.


성인이 될 때까지 그래도 이혼하지 않고 어릴 때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클 수 있게 끼니를 먹여주셨으니 많이 아프긴 했어도 감사한거죠. 알아서 잘 큰다면서 울지도 않고 속썩이는 일없이 순둥했다고 했는데 사실 제 속은 매번 폭풍 전야 상태였음을 엄마는 모르더라고요. 앞에서 매번 웃으며 걱정끼치기 싫어서 괜찮아. 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까요.


어릴 때 애늙은이가 되어 버렸으니 나이가 들어서 어릴 때 못받은 사랑과 애정이 그렇게 고파서 눈물나게 불안했네요. 

흔하디 흔한 평범한 연애와 사랑이 영 쉽지 않았어요. 


스스로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하며 자신을 먼저 수용하고 사랑해주는 방법을 후천적으로라도 배우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평생 죽을 때가 되서야 깨닫고 자신을 찾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적당히 방황하고 빠르게 찾았단 생각이 드니 오히려 좋아! 하고 삶에 감사할 일인 것 같아요.


모든 인생의 아픔과 경험은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는 영감  덩어리라는 걸 그때는 나밖에 안 보이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지만 저는 그 과정을 겪어왔기에 지금에 내가 있다는 생각에 떳떳하고 당당하다는 걸 느낍니다. 결핍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관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했어요. 


그러니 그런 모든 사건, 환경들이 과연 문제일까요?

아니요. 문제와 사건들은 곧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였어요.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은 디딤돌이었어요. 

지금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도 그간 느꼈던 모든 여정들이 앞으로 펼쳐질 삶을 더 깊이있고 행복하게 채울 수 있는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을 전쟁터라고 가장해봅시다.

지금 외부에 적군이 나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근데 적군이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는 아군 때문이라면서

아군 하나가 분란을 일으키고 아군을 서로 죽이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이 상황이 납득이 가시나요?


Q 여기서 가장 큰 빌런은 누구일까요?

A) 외부에서 공격하는 적군

B) 분란을 일으키는 아군

외부의 적 A일까요? 분란을 일으키는 아군B일까요?


A: 외부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사건

B: 스스로를 공격하고 자책하는


둘 다 아닐까요?근데 더 큰 문제는 B라고 생각해요.

이미 A로 힘든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도록 진을 빼니까요.


내부에 분란을 일으키는 아군 B는 자책이에요.

바로 나 자신이 미쳐서 스스로를 공격하고 찌르는거에요. 삶을 살아보니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닌 내 안에 있더라고요.


자책하고 스스로를 찌르는 행위 만큼 빌런 짓이 있을까요?

스스로를 찌르는 빌런이 알고 보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외면하고 모른  넘어갈려고 했던 제 자신이었더라고요. 


내가 적이 되었을 때는 바로 망하는 자살이었지만

스스로를 돌봐 준 순간 세상에서 절대로

떠나지 않을 든든한 군을 얻을 수 있어요.


인생에서 나라는 아군을 뒀을 때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고 싸우고 나아갈 수 있어요.


그렇게 든든한 아군이 생기면 외부에 그 어떤 말도 나를

함부로 무너뜨리고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못 할거에요.

말들을 이제 나는 믿지 않으니까요.


나는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가장 든든한 내 마음 속 내 을 믿으니까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를 깊게 알고 마주했을 때 상대를 바라볼 여유가 생겨요.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사건을 해결 할 실마리가 생겨요.

모든 문제 속에 결국 답이 있음을 깨닫게 되요.


내가 바라고 바랬던 욕망 안에 정답이 있음을 알게 되요.

그러니 외부의 적을 원망하기 이전의 내부의 아군이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잘 정비하는 게 필요해요.


외부에 적들이 아무리 인신공격, 헛소리를 늘어 놓아도

조용히 들어주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거죠.


강의를 준비할 때 듣는 청자의 수준을 고려하듯 몇번

대화를 하고 다른 의견들을 이야기할 때 아직 자신만에 

편견에 사로 잡힌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응~ 그렇구나. 고마워~^-^"하고 웃어 넘기거나

가볍게 동의하지 않는 침묵을 하면 그만이죠.


굳이 변명할 필요도 없고 오해를 받아도

그 사람의 생각에 나는 딱히 동의하지 않으니까요.


가장 든든한 내 편인 자신을 믿고 떳떳하니까요.

굳이 에너지를 소모하며 반박할 가치를 못 느끼는거죠.


내가 내 자신을 든든한 내 편으로 믿는 확신, 자신감과

내 마음에 품을 말과 품지 않을 말에 대한 분별력이 생기면

상대를 위하는 피드백이나 해결책 제시없는 단순한 분풀이

인신 공격성 발언에 굳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요.


그래야 정말 내게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내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거죠.

함께 좋은 말을 해주고 응원해주고 지지해줄 관계를 위해 시간을 쓰고 삶을 살기에도 너무 아깝잖아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은 너무 한정적인데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해 열을 내고 에너지를 쏟으면 너무 아깝고 시간낭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소중한 사람에게 표현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에도 인생은 너무 소중하고 아까우니까요.


그래도 말과 언어라는 것은 무의식에 작용하면서 앞으로 내가 할 행동에 작게라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니 일부로 시간을 내서라도 혼자 노트에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반박문을 작성하거나 그 말을 토대로 내가 가진 결핍에 대한 성찰을 하고 스스로를 점검을 해봐요. 그럼 그 말은 내 감정, 생각을 알려줄 좋은 자원이 되는거죠. 일종의 관점을 바꾸는 나를 회복하는 내 안의 상담가. Self 인지치료인 셈이죠.


피드백인가? 인신공격인가? 말의 분별이 필요하다.

[건설적이지 않은 평가와 인신 공격, 판단의 말-> 반박문]

예시자료//당신의 가슴을 당당히 펴지 못하게 하는 말 기록

-완충하는 반박문,

-무조건 타인의 말을 모두 수용하고 맞아. 동의를 하면서 부정적인 것도 다 끌어 안으려 했기 때문에 반박도 필요하다.

-동의하지 않고 쌔한 느낌, 찝찝함을 느꼈다면 정리를 해보는 게 도움이 됐다.

-내가 왜 불편하지 원인 찾기, 내 결핍을 발견할 수 있다.

-머릿 속에 상대에 약점과 발작버튼을 누를 치명타가 보이지만 반박문이 그려질 때 모두 오픈할 수 없으니 반박하고 싶은 말을 머금고 상대에 이야기를 듣고 "그렇구나" 로 넘어간다. 웃으면서 그냥 침묵을 하고 혼자 정리를 하며 풀어낸다.

-정리를 하면 마음이 유해지고 상처주는 말을 덤덤히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반박문과 성찰을 하면 상대의 입장도 상대의 결핍 지점도 이해가 된다. 나의 결핍 지점도 모두 이해하고 객관화가 된다. 방어막이 생긴다. 보완점이 생기고 과거에 말에 매이지 않고 그 상황을 지나갈 수 있게 된다.


#솔직한 고백에 가족사 순탄치 않다고 비하했던 발언

풋.. 그래서 어쩌라구.

나도 너 줘도 안가져. 먼저 피해쥐서 고마워.

나도 꽤 소중하고 존중받을 만한 멋진 사람이거든. ^-^

-모두에게 오픈하지 않고 정말 중요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할 것을 교훈으로 가져 가기. 묻지 않는데 먼저 꺼내지 않기


#가난한 가정은 불행하다는 발언

뭐 없으면 내가 성취해서 만들면 되는거 아닌가?

응 관심 고마워. 지금 없어도 나중에 더 벌면 그만이야.

네가 끊임없이 욕망하니 그렇지 난 불행하지 않은데? ^-^

부자여도 불행한 사람은 있고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는데 타인의 행복을 함부로 판단하는 건 좀 아닌듯.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한심하게 보는 발언

응~지금 나한테 이게 필요한 때야.

어쩌면 하고 싶은 걸 못하는 자신과 달리 자유롭게 

행동하는 내가 부러운걸지도? 부러워해줘서 고마워 ^-^

이 나이에 결혼을 해야하고 이 나이에는 이런 걸 쌓아야 하고

모두가 따르는 것들을 맞추고 결과만이 정답이라며

과정을 무시하는 태도는 좀 아쉬운 듯..


#고집이 쌔다고?

~인정. 그게 내가 지속하고 살아남은 이유야. ^-^

타협하지 않을 이유와 신념. 그게 내 삶의 동력이거든.

그래서 나도 널 바꾸려고 하지 않고 다름을 존중해.

모든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맞는 정답을 스스로 찾아갈

힘을 지닌 답정너라고 생각하거든.

-그래도 어떤 부분을 보완할지 고집이 쌨는지 점검해본다.


#욕심이 많다고?

욕심은 생의 열정이고 하고 싶은게 많고 세상에 사랑하는 게 많다는 증거지. 남을 피해주지 않고 욕망하고 내가 원하는 거 내가 노력해서 정정당당하게 성취하는 게 나쁜가?

넌 무언가 간절히 갖고자 욕망 해봤던 적이 있니?

-어떤 지점에 욕심이 많고 과했는지도 점검해본다.


#이기적이라고?

맞아. 그럴 수도 있어. 그리고 원래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야.

그리고 이기적이라는 건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내가 볼 땐 너의 이기적이란 정의가 보편적이지 않은 것 같아. 난 착하지는 않은데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거든. 어쩌면 난 이기적인 청개구리라서 살아남을 수 있었어.

너무 남들을 전부 맞추려고 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보단 자신을 챙기는 게 먼저야. 내가 먼저 바로 서야 남을 도울 수 있는거야. 오히려 주관없이 너무 모든 것을 맞추려고만 하다가 섭섭하다면서 집착하는 거보다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난 적당히 착하고 좀 더 이기적으로 살아볼려고. 정말 내 삶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내 사람들을 챙길려고.

내 시간은 한정적이니까.

-나의 이기적인 부분과 행동을 점검해본다.


모든 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어요. 아무리 단점을 말하더라도 그 안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는거죠. 그러니 타인의 가시 돋힌 말 속에서도 나의 장점들을 잘 알고 확신이 있다면 반박하거나 그 말 속에서도 내 장점을 뽑아 낼 수 있어요.


결핍은 동정할게 아니에요.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삶에서 일어난 사건일 뿐이에요.


자신의 치부와 아픔으로 타인의 말에 의해서 멋지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데 꾸부정하게 잔뜩 주눅이 들어서 남들 눈치보고 아무 말도 못하던 과거의 저처럼 혼자 울다 지쳐 쓰러지고 답답한 화병으로 몸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수치심, 죄책감, 분노, 우울, 무력감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아픔들이요.

그거 감정이지 그거 당신 아니에요.

내가 관점을 바꿔 다르게 볼 수 있는 거였어요.

오히려 더 떳떳하게 멋지게 삶을 살 수 있는

앞으로 당신의 자산이자 발판이 될거니까요.

그게 이제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 무기에요.


그러니 당당하게 가슴을 활짝 고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멋진 삶을 만들고 반드시 살아낼거에요.

그러니 아픔을 가진 저와 같은 이름 모를 쭈구리 한 분

우리 누구보다도 더 멋지게 행복하게 살기 약속해요!


당신이 마주하고 직면하기 싫어서 모를 뿐

세상에 결핍이 없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요?


"능력이 없으면 난 버려질거야."


이 말은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 하게 만들었.

일만 하는 기계같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회피하게 만들었죠.

일을 완벽한 나의 정체성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힘이 들어가니 긴장감이 생기다 여유를 잃더라고요.

지금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꼭 비련의 여주인공같다며 웃어 넘길 수 있게 됐어요.

버리긴 뭘 버려. 각자 도생한거지 뭐.

버려질거란 말부터 오류였더라고요.

과거를 직면하고 나니 이제는 과거와

힘든 시기, 사건들, 아픔을 지워내고 싶지 않아요.


"심연을 통과하고 나면 더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에요."

2년 전 표현예술치료세션에서 얘기해주셨던 그 말의 의미를 이제서야 깨닫고 알게 되요. 과거는 나를 발목잡는 그림자가 아니라 내 삶의 디딤돌이자 창작할 영감의 원천이었단 걸.

오히려 지금의 단단한 나를 있게 한 하나의 사건이라는 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위안부 공연을 준비했던 팜플랫에 실었던

제가 참 좋아하는 한문장이에요. 아픈 과거 내 인생의 역사와 치부를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하고 마음껏 충분히 아파해야 과거에 매이지 않고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겠죠. 미래의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고 되내이지 않기 위해 창피한 내 삶의 역사도 그냥 드러내봅니다. 과거를 내 삶의 역사를 직면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릴거니까요.


직면하니 나를 지키면서 진짜 공감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그리고 실마리를 몰라 방황하는 한명의 저와 같은 쭈구리를 살릴 힘이 될거에요. 그러니 그 과거를 용기 있게 당당하게 드러내도 되요. 당신은 분명 달라졌고 기록으로 그걸 증명해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기대됩니다.


그렇게 과거 사건들을 보고 함부로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면 아싸! 오히려 좋아!하고

내가 먼저 거르면 되는거에요.


나랑 안맞네!오예! 하이패스!!

솔직하게 나를 드러냈을 때 그런 선입견 갖는 인간?


오예!백트럭 가져다줘도 필요 없으니 반품하면 그만이죠!

시간 단축하고 오히려 좋아! 입니다.

내 가치와 매력을 못 알아봐줬으니 끝인거.


안녕! 빠이찌엔 !

응 나도 너 필요없어. 관심 고마워 ^-^

하고 웃어주면 그만인거죠.


너도 네 인생 잘 살아라!

나도 내 인생 잘 살거야! 화이팅!!!

서로의 인생 쿨하게 응원해주자고요.

굳이 욕할게 있나 싶어요.

응 나랑 좀 안맞아. 헤헤 ^-^


그러니 전 제 인생에 다시 리셋버튼을 누르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의 모든 경험과 기억들을 토대로 가져갈 수 있다면 ok하고 누르겠지만 그 힘들었던 시간을 또 겪어내기는 싫더라고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과거를 바꾼답시고 굳이 돌아가도 이 경험과 기억없이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이 반복하고 이겨내야 되니 너무 아찔합니다.


그러한 사건들을 용케 다 겪고 나서도 한강의 자살

기도도 안 하고 범죄 한번 안 저지르고 잘 살아왔잖아요.


에프킬라 뿌려도 죽지 않고 아득바득 살아있는 바퀴벌레같은 생존력에 감탄해봅니다.  더 글로리에 멋지다! 연진아!! 짝짝짝 박수를 던 것처럼 그냥 겁내 나님! 멋있다! 짝짝짝!!캬캬캬 뿔 아무 것도 없어도 박수쳐주고 싶은 용케 살아있는 멋진 삶,  장하다!라고 이야기해주면 되는 거에요.


원래 또 주인공들이 무난하고 평범하게 못 살고 어릴 때 잦은 고생하며 산다잖아요. 나중에 크게 려고 성질 좀 죽이고 마음 그릇 넓히라고 어릴 때 난이도를 좀 빡쌔게 몰빵했나 보지! 어떻게 삶을 살아나갈지 앞으로의 미래가 두근두근 기대되고 설레는 삶이에요.


인생아! 네가 이기냐? 가 이기냐?

싸워서라도 살아남으면 되는거죠.

결국 살아 남았다는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 삶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나아질 라고 믿어요.

환경도 결국 내가 선택하고 바꿀 수 있어요.


용케 살아있는 그냥 존재 자체를 좀 리스펙해주자고요.

어쩌면 아무 것도 없음이 오히려 자유하게 아싸!

죽기밖에 더 하겠어! 하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실어 줬을지도 모르겠어요. 


건강한 몸뚱아리 있고

두다리 뻗고 누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온전히 숨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해요.


그냥 난 살아있는 거 자체가 기적이야!

지금 쥐뿔 아무것도 없어도 앞으로 가지면 되는거죠.

당신이 지금 고통스럽더라도 살아있으니 앞으로 행복

멋진 존재인데 왜 당신의 가치를 스스로 몰라줍니까?

지금 없다고요? 으이구!!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요!!


회복탄력성 책 속에 살아 숨쉬는 실체가

앞으로 내가 되면 되는거에요. 

이제 멋진 삶을 만들면서 함께 증명해보자고요.

당신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왜 그 책 속의 인물이 남이라고 생각하죠?

당신이 될 수 있음을 당신이 스스로 믿어주세요!

그리고 얼굴도 마주하지 않았지만 제가 그냥 믿어 줄게요!


드라마보다 드라마같은 극적인 사건들도 조금 겪고나인생 뭐 별거 있나? 싶기도 하고요. 

근데 가만 들여다보면 인생의 굴곡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어요. 평범한 하루가 지나가고

잔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음이 참 감사합니다.


행복은 멀리서 찾으려고 아등바둥거릴 땐 보이지 않아요.

행복은 빈도수라는 말이 있듯이 일상 곳곳에서 보물찾기를 하듯이 호기심을 갖고 사소한 곳을 탐색하다보면 발견할 수 있어요.


Q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일상에 작은 행복이 당신의 가슴을 당당하게

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안전지대가 되어줄거에요.


그냥 자연을 보다 좋다.

그냥 맛있는 빙수를 먹어서 좋다.

샤브샤브를 먹을 수 있으니 좋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 활동도

움직이는 것도 할 수 있으니 좋다.

혼자 있으면 방해 받지 않고 혼자 있으니 좋다.

같이 깊은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좋다.

건강한 몸뚱아리 사지가 잘 붙어 있으니 좋다.

주변에 좋은 사람 멋진 사람들이 있으니 좋다.

배우고 싶으면 새롭게 또 배우고 도전할 수 있으니 좋다.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들 그걸 겪고도 그냥 살아 있으니 좋다.

그냥 평범한 일상과 하루가 좋다.

인생 난이도 빡쌔게 살아서 남들보다

행복역치 낮으면 속된 말로 개이득!! 오히려 좋아!

아싸! 남들보다 몇배로 행복할 가능성이 높잖아!

남들 다들 힘들다고 자살하고 죽을 것 같다고 일상이 공허하고 지루하다고 하는데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니 이거 알고 

보니 완전 행운아 아냐?축배를 들 일 아닌가?

역시 인생은 불공평하지 않은 것 같기도?!

고통스러운 만큼 행복할 가능성은 높아지니까요.


끽해야 죽기 밖에 더하겠어요. 원래 잃을 게 별로 없는 사람은 아이처럼 인생을 해맑게 웃으며 살 수 있어요. 내가 다시 노력만 한다면 다시 뭐든지 할 수 있음을 믿어요. 살아 남았던 에너지와 독기가 있으니 성취는 좀 자신있거든요.


처음 결핍은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성취를 이룰 동력이 되어 줬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모르고 쫓아가는 불안한 삶을 살게 했어요. 근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면하고 수용하는 방법들을 공부하고 나니 결핍은 바꿔야 될게 아니라 나를 멋있다고 넌 좀 짱이야!라고 얘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음을 끌어안고 가야되는 것임을 이제서야 느껴요.


작년까 과거에 인생 그래프를 그리면 울음을 참지 못하면서 말 했는데 지금은 캬.. 인생 그래프를 이야기하는게 두렵지 않아요. 그냥  인생 참 재밌고 다이나믹하네. 드라마틱한 성장 드라마였단 생각에 코를 쓱하며 감탄을 하게 됩니다.


만약 앞으로 성공하게 된다면 성공 스토리 적립. 오예!

성공 못 해도 그냥 살아남았다는 거 존재 자체가 리스펙!

그리고 꼭 눈에 띄는 성공한 인생과 삶이 아니어도 인생 속에 행복한 요소를 찾았으니 남부럽지 않은 인생이 아닐까요?


나는 인생에서 동정받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쥐뿔 아무것도 없어도 용케 그냥 살아 숨쉬는 존재 자체가 리스펙한 인물이라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성장 드라마의 주인공이니까요.  할 수 있다!! 뭐 100번 실패? 뭐 죽는 거 아니면 까짓 거 해보지 뭐! 안 될게 뭐야?100번 하고 1번 성공하면 되는거 아니겠어? 오기랑 악바리 고집으로 해내면 된다!


지금 죽을 것 같죠?

그렇다면  그거 진짜 죽을 거 같은 거 맞아요.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거라도 아픈 건 그냥 아픈거에요.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뻥치지 않고 아프다고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잘 한거에요.  본인이 진짜 죽을 것 같다면 진짜 죽을 것처럼 숨쉬기 어려운 거 맞을거에요. 

그거 과호흡 온거임. 제가 그 과정 겪어 봤었거든요. 

원인 불명의 특발성 몸의 통증, 강사 생활하면서 스트레스

받아서 틀어진 회원님들을 통해서도 참 많이 접해 봤어요.


인간은 참 환경에 연약한 존재더라고요.

버틸 수 있다. 괜찮다 자신만만했는데 막상 닥칠 때면

완전히 리셋된 것처럼 영 쉽지 않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사건이 처음 들이닥쳤을 땐 참 무력했죠.

온 세상에 의지할 곳 없이 사고무탁같단 생각이 먼저 나를

뒤덮고요. 감정이 나를 휩쓸어 주변을 못 보게 할거에요.

근데 그거 괜찮다면서 웃고 뻥치고 자꾸 외면하면 답답한 신체적인 화병으로 오기도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감정 자체에 무뎌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냥 이유도 모를 실신으로 몸의 신체적 증상으로 찾아올 수도 있더라고요.


반대로 무의식과 심연에 머물러 제대로 느끼고 직면하면 감정이 휩쓸고 간 자릴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태가 오더라고요. 꺽꺽대며 드라마에서 보는 미친년처럼 오열하는 순간도 찾아오더라고요. 근데요. 한가지 확실한건요. 살아만 있는다면 그 순간들이 언젠가 반드시 지나가더라고요.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은 흘러가고 상황은 변하더라고요.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제가 생존자. 살아있는 증인이거든요. 무너지면 무너진대로 일로 도피하고 싶으면 그렇게 회피해서라도 그냥 어떻게든 한번 악착같이 살아보세요.


제가 간절히 부탁할게요.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그냥 믿어주세요. 그러면 누구보다 해맑게 세상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 행복이 반드시 찾아 올거에요. 

모든 것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처럼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결국 지나가는 순간이 오니까요. 괴로워 죽을 것 같을 때 마음 속에 깊이 새긴 한마디가 당신을 죽지 않게 하고 다시 살릴거에요. 얼른 적고 기억하세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제가 선생 놀이 하는 거 좋아해서 좀 시키고 싶었거든요. 

다시 한번 따라 해볼래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두번 얘기하면 섭섭하니까 3번 얘기했어요. 반복 학습이 뇌새김 학습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가장 많이 노출된 말이나 효과는 [자동화된 무의식]에 영향을 줘요. 자동화된 무의식은 평탄할 때보다 외부에서 방해 문제를 받을 때 더 활성화가 된다고 해요. 스트레스가 오히려 도움을 주는거죠. 글을 기록하고 반복 학습하고 말하고 듣는 행위는 무의식에 내가 원하고 바라는 인생을 집어넣으며 자동화된 무의식을 형성하는 행위인 죠. 일종의 세뇌랑 비슷해요.


그래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이든 법전이든 경서를 반복하고 자신의 무의식에 새기니 물질이 없어도 고차원적인 것들을 추구하며 행동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불교의 (옴)이니 (아멘)을 무수히 반복하는 행위가 동의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감탄사와 이루어지길 원하는 염원을 내포하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옴이라는 글자 자체를 소리를 낼 때   목에 있는 미주신경을 깨우는 효과가 있어요. 목의 진동감과 떨림을 통해 감각들을 활성화하고 부교감 신경계를 깨워 안정감을 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으니 잦은 스마트폰으로 과각성된 현대인에게 요가나 명상, 종교에서 이런 말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건강에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삶 속에서 당신을 일으킬 수 있는 말을 반복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당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말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아니더라도 기록하고 마음에 꼭 각인시켰으면 좋겠어.


우리 행동들은 결국 무의식을 바탕으로 나오는거니까요.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읽고 말하는 행위는 내 무의식을 바꿔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기초가 되는거죠.

그래서 할머니처럼 똑같은 말, 긍정적인 말을 새기라고

주저리주저리 계속 반복 할려고요. 


자동화가 잘 되는 기업이나 커뮤니티 그룹, 돈버는 법 강의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마치 사이비 종교와 굉장히 닮았어요.

어쩌면 비전을 제시하고 계속 반복하는 행위 자체가 모든 행동의 동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에 의존하고 따르려고 하기 이전에 나에게 맞는 것을 분별하고 스스로 선택했으면 해요. 맹목적으로 따르려고 하기 이전에 내 안에 잠재된 욕망을 먼저 듣는 것, 내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이 기초로 자리잡고 그 이후에 개인의 행복에 

방향성에 맞춰 롤모델을 선택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 뿐이라는 것, 당신이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는 걸 기억하세요. 무엇도 절대로 쉽고 빠르게 얻을 순 없어요. 그건 사기꾼이죠. 타인의 경험을 듣고 소비할 수 있겠지만 결국 실제로 행동해야 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니까요.

 

수많은 돈버는 법 강의를 보며 그 사람의 업적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행동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추종자가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점검해 볼 필요성도 있는 것 같아요.


행동없이 불안해서 하는 무조건적인 인풋은 결국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맹목적으로 의존하게 할 수도 있겠죠?

스승에게 집착하며 결국 광신도, 충성 고객이 되는거죠.


불안함을 한 가지 대체물로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 집착하고 의존한 결과 결국 끝은 공허해질 뿐이에요. 정답을 스스로 찾지 않고 직접 부딪혀 겪어보지 않고 허황된 환상에 속아 이상은 하염없이 높고 눈만 높아졌으니 실행력이 더뎌지더라도 그렇게 인풋을 받는 것만으로 만족할 가능성이 있는거죠.


물론 뭐든 과하고 집착을 하니 문제일 뿐 내가 지킬 수 있는 한도에서 받아들일 말을 선택해서 행동하고 배우는 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 결국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자신의 고요한 시간과 분별력,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대단한 롤모델과 의인도 당신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못해요. 결국 당신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문제에요. 가장 소중한 자신을 위한 한문장을 몸이 기억하게 마음에 새기세요.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고요?

내가 그 환경에서 벗어나면 그만이에요.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당신이 전부 책임지지 않아도 되요. 도망가지 말고 버티는 것만이 능사라고요? 내가 전부 책임져야만 한다고요?


섭섭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당신이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요. 그러니까 어거지로 버티고 당신이 할 수 없는 일까지 무리하면서 전부 감당하려고 고집 부리지 마세요.


그거 내가 세상을 다 통제할 수 있으리란 일종의 오만이더라고요. 당신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될 것 같다고요? 아니더라고요. 작전상 후퇴하는 거죠. 평생 쉬고 도망갈거 아니잖아요. 감당 못 할 것 같으면 애기하시고 잠깐 거릴 두셔도 됩니다.


그리고 멀리 거리를 둔 상태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객관화해보세요. 그럼 실마리가 보일 거에요. 객관화가 안된다고요? 그럼 주변에 지혜로운 어른,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보세요.


너무 좁은 시야로만 바라볼 땐 감당할 수 없던 것이 한 뼘 멀리 떨어져 봤을 때 문제 속에 답이 보이는 경우도 꽤 있더라고요. 그리고 냅두니 결국 각자도생으로 알아서 살더라고요.


그러니 무리하면서 저처럼 길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괜찮다."하고 버티다가 응급실 실려가 짓은 비추입니다.

회복하기까지 텐션을 끌어 올리는데 시간이 정말 오래 소요되니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책임감을 짊어 지시길 추천해요. 


자기 몸뚱아리  챙기고 남 챙기며 전부 책임을 감당할려다가 내가 먼저 골로 가는 수가 있어요. 꼰대 안하고 싶었는데 글을 쓰고 보니 이거 영 꼬라지가 젊은 꼰대같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이니 헛소린지 아닌지 잘 판단해보고 따져 보면서 본인한테 해당되서 맞을 경우에 제 말을 받아 들이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것 또한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겪은 제 경험담, 개인적인 사견일 뿐이니까요. 결국 모든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 정답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방어기제가 나를 보호해주는 수단이라는거 그땐 도망가는게 맞았던 거죠. 어떻게 사람이 완벽하겠어요. 사람이란게 참 불안정하니 인생이 예측 불가능하고 재밌는거 아닐까요?


꺽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꺽였으면 충분히 쉬고 나만의 속도대로

일어나서 다시 하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포기하고 헤어지는 용기도 필요했고요.


삶 속에서 단단한 막대기 하나로 억지로 버티려 들 수록

부러질 때 충격이 크니 삶의 유연함이 필요하더라고요.


막대기 곁에 묶어 줄 지지대와 주변의 손길들이 린 나무를

무너지지 않고 살게 하죠. 어린 나무는 살아있으니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땅에 리를 지지하고 더 크게 자라날 수 있었어요.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적당한 안전지대가 필요해요.


고정된 하나의 정답, 원씽만을 주장하며 경주마처럼 한 곳만을 볼 땐 목표를 이루기 좋았지만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행복들을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 1가지의 목표에만 올인하고 집착하고 매진했던 만큼

그 목표를 이루거나 그 목표가 사라지고 무너졌을 때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 삶의 의미를 잃고 피폐해지더라고요.


성공과 부를 원한다면 원씽만을 쫓는 게 정답일 수도 있겠지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내 주변에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결국 본질은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 아닌가요?

주객이 전도되지 않았는지 밸런스 점검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것도 지금까지 제 삶 속에서 현재 내가 찾아냈던 하나의 방식일 뿐 앞으로 또 변할지도 몰라요. 결국 각자 행복의 답은 모두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과정들을 나는 100프로

확신했고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나만에 정답으로 가져가고 있고 현재 도움을 받은 방식이지만 각자의 때와 시기에 따라 자신에게 필요한 정답다를 수 있어요. 그러다보니 분명 나아지고 좋아진 방식이었음에도 100프로 믿고 따라오라는 말을 하기는 싫더라고요. 결국 각자의 정답에 맞춰 스승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닌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셜링 호스트로 섰을 때 굳이 내 발자취 쫓겠다는 소릴

하는 사람을 보면 너나 나나 똑같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요.


먼저 경험해봤으니 말할 소스가 많을 뿐 그냥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사유하는 사람인걸요. 사람을 높고 낮음을 구분짓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소셜링을 할 때도 어쩐지 "돈을 버는 소셜링"보다는 "사람을 얻는 소셜링"이란 말에 끌림을 느낍니다. 그냥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행복한 것 같아요.


사실 돈을 벌려면 "내가 정답이야. 나를 전부 따라 와"

필요할텐데 세부적인 모든 것과 사람들의 다양성을 고려하니 진실과 마음의 양심을 선택해 말을 뱉게 됩니다. 


돈을 잘 벌기 위해서 허황된 환상을 심어주고 불안을 자극해서 빠르게 해결하며 커다란 수익을 얻는 방법을 얘기하던 돈과 양심을 맞바꿔 마음이 피폐해질 것 같아요. 이상이 높다보니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도 

현실감이 떨어져 고집을 부리고했던 것 같아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아니고

근데 다른 사람의 정답보다 내가 내린 정답을 따랐기에 누가 뭐라고 해도 지속할 수 있었더라고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어려운 시도를 도전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었어요.


덕분에 문토라는 1회성의 소셜링 플랫폼에서 호스트로

[아티스트웨이 12주]를 오프라인 워크숍으로 열었어요. 

안 될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지속을 했죠. 그래서 얼마 전에 10주차 오프라인 모임을 끝냈고 현재 마지막 2주차를 남겨두고 있어요.


현대인들은 바빠서 온라인 zoom으로 돌리거나 오프라인 12주 모임은 안 될거라는 말, 읽지 않고 읽은 것 같은 효과를 드려요. 같은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1회성 독서 모임이 주를 이루는 곳에서 오프라인 12주 모임을 결국 열었네요.


쉽고 편하게 보편적인 대중적인 방식을 따르면 효율도 좋고 참 편할텐데..알고는 있는데 돈 잘버는 법이나 모객하는 법을 익히 들었지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했어요.

예술가 기질이 강한 infj/enfj 반반이고집스럽습니다.


다양한 소셜링에 가도 카피하지 않는 이유. 내가 하고 싶은 건 뚜렷했다.


[아티스트웨이 12주 모임]

쥐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의 발자취를 따르겠다는 이야기에 썩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내가 밟은 길은 썩 유쾌하지도 않고 돈도 안되고 가난하고 드럽게 힘든 길이었는데 마음이 복잡해져요. 근데 따르지 말라고 해도 고집스럽게 나의 발자취를 따라 살고 싶다는 사람을 마주하니 묘해요.  사람 덕분에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슴도치를 깨웠다는 문구에 마음을 일렁거려요. 과거의 전 제가 사람을 상처주는 고슴도치였다생각했어.


가족의 아픈 그림자를 가지고 있으니 나와 함께 하면 같이 불행해지고 상처를 받아서 나는 함께 하면 안되는 혼자 살아야되는 고슴도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고슴도치의 가시를 수용하니 예민함이나 상처가 타인의 감정을 알아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재능임을 알게 됐어요.고슴도치를 깨웠다는 말에 마음이 일렁입니다. 꿈에 도전하고 있는 참여자의 현재 모습을 떠올리게 하니 참 묘해요.


상담을 받았을 때 도움이 안됐고 상처가 됐다고 했었는데 나와 함께 한 대화에서 힘과 위로가 됐었다고 하니 고마워요.

좋은 상담사분도 너무 많지만 내게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니 이것도 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처를 회복하러 가서 어떤 도움도 못 받고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고 하니 예민함을 수용받기 어려운 지점이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상담을 찾아가는 사람을 보면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은 정상적이고 멀쩡한 사람이 앉아 있는 느낌이었어요. 이미 충분한 사람을 두고 낙인을 찍고 판단을 내리니 별 도움이 안 되고 앞서서 경험을 해보지 못 했으니 피상적인 겉핥기 상담에 도움을 못 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난 들어주고 지지했을 뿐인데 혼자 너무 알아서 잘 성장했는데 이미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작은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 하게 만드는 환경이 안타까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식도 아닌데 뭔가 내가 키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사람같아요.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해요. 마음으로 키운 자식처럼 애정이 가는 멋진 동료라고 생각해요. 그냥 너무 사랑스럽고 멋지고 다해요.


퇴사를 하고 자신의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시를 쓰고 자신도 호스트로 모임을 열고 있는 성장기가 그저 예쁩니다. 꿈을 향해 나아지고 달라지는 성장기를 엿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소셜링 호스트로 콘텐츠를 진행하며 나를 따라줬던 한 사람이 소중한 뮤즈이자 내가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었어요.

내가 소셜링을 열 수 있었던 이유는 지속해줬던 사람들 덕분이었고 참여자분은 제 삶의 영감이었어요.


리더로 이끌면서 서로 상호 작용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어요. 참여자의 존재가 고맙습니다. 따르지 말라고 했는데 따르고 싶다는 한 사람을 마주하니 앞서서 본을 보일 수 있도록 정말 행복하게 앞으로의 삶을 멋지게 살아야겠어요.


만나주셔서 함께 해주셔서 고마워요. 당신의 존재가 제가 지속할 수 있는 힘이었어요. 당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일렁이는 기쁨을 느꼈어오. 함께 해주셔서 고맙고 사랑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할게요.

아티스트웨이 참여자의 시_마음이 일렁인다.


누군가에게는 불안을 자극해 빠르게 돈을 버는 방식이 행복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무식하고 미련한 양심적인 방식을 선택하고 싶어요. 허황된 환상보다는 내가 마주했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곧은 사람이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내린 정답을 함부로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스스로 답을 찾게 질문을 던지고 듣고 싶고 같이 수평적인 관계로 오랫동안 함께 성장하길 지속하기를 꿈꿉니다. 함께 하는 이들이 행복했으면 해요.


[과거의 쭈구리에게 이런 얘길 들려 줘도 좋았어요.]

좀 별로일 때도 있지만 그게 의 모습인 걸?

근데 관점을 바꾸면 그게 의 큰 장점이기도 해

나는 그런 별로라고 하는 너의 모습도 꽤 좋아.


모두가 별로라고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너를 믿어.

별 이유 없어. 그냥 너니까 너라서 좋은거야.


버려진 게 아니고 그냥 시간이 흘러서 떠난 인연인거야.

각자 삶 속에서 최선을 다했으니 너를 찌르며 더 이상

자책하고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찌르는 모습을 보면 나도 많이 아프거든.


그러니까 더 채우려고 안달복달하기 보다 그냥 좀 

믿고 의심하지 말고 용기내어 자신감을 가져보는거 어때?


다른 사람들은 이 말을 못 해주고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더라도 너 자신한테는 이 말을 건내 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너를 꽤 사랑하거든.


의외로 변화해! 성장해! 강요할 때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해쥤을 때 새로운

많은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됐어요.


욕망과 감정 생각, 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따뜻하게 수용해주고

계속 끓임없이 생각해주고

앞으로 더 나아질 모습을 기대하고

좋아하는 걸 시켜주고

아픔과 고통을 알아주고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타인의 공격에 경계를 세우고

원하는 환경에 머물게 하고

힘이 되는 말을 하고 믿어주고


어쩌면 본인을 자책하고 미워한다는 건

자신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잔뜩 부푼 기대를 품고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했기에

그만큼 실망했고 미웠던거죠. 자신이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에 그만큼 못미쳤으니까요. 그러니 자신을 더더더

닥달하고 쏘아됐던거죠. 하나도 안 괜찮은데..

괜찮다며 손과 발과 입을 묶고 버티라며 자신의

긍정적이지 못한 실수, 욕망을 모두 참으라며 고문한 셈이죠. 감정에 무뎌졌다면 그간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닫아두고 살아냈던 셈이죠. 그러니 그 모든 과정들로 고통스러웠을

나를 애도하고 바라봐주고 아이처럼 사랑해주는게 필요하더라고요. 결국 너무 뜨거운 잘못된 사랑 표현 방식이 스스로를 찌르고 공격하며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지로 내몰게 했고

마음의 아픔을 넘어 신체까지 아프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사람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따뜻한 사랑에 있었어요.

 따뜻한 말과 온기를 통해 들어주는 작은 귀기울임이 강압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아도 바꿀 수 있도록 도와 준 거죠.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해준만큼 누군가와 주고

받는 자연스러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스스로가 충족되고 채워진 만큼

상대에게 바라지 않고 따스히 온기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겠죠.


삶이란 참 모순적이더라고요.

간절히 원했던 것들은 더 멀리 달아났고

바꾸려고 그렇게 안달복달했을 때는 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바꾸려는 모습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알아주고

별로인 모습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품어주니 한 순간에

변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더라고요.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건네주었을 때 타인의 피드백을 그냥 피드백으로 받고 분리하고 보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걸 느껴요.


평가나 판단이 제 자신을 흔들지 못 하고 고민을 하게 만들지만 모두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았으까요. 


다른 의견은 공격이 아니라 그냥 다른 생각일 뿐이에요.

아무리 타인이 나를 잘 안다고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사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게의치 않아도 되는거죠. 그 사람은 나의 단편적인 일부를 보고 판단하는데

얼마나 나를 잘 알까요? 그 사람의 렌즈로 보는 나인거죠.

그러니 그냥 이제는 웃어 넘기고 듣고서 쳐낼 것과

받을 것을 적당히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나는 무엇에 마음을 열고 닫을 것인가?"

2년전 표현예술치료 세션에서 받았던 질문이에요.


동생을 치료하겠다고 표현예술치료 워크숍에 치료사 선생님을 직접 찾아 갔어요. 동생이나 가족 타인이 아닌 먼저 나를 회복해야 되는 자각하고 저를 마주했던 시간이었죠.


 물음에 대해 2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서야 이제는 

온전히 나만의 답을 어느 정도 정리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나에게 정말 소중한 반드시 지켜야 될 것과

내가 수용하지 말고 거절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요.


경계없이 모든 걸 수용하고 다 믿다 보니 속아 넘어가는 일이 잦았고 불안형 애착 짓을 하며 모든 것을 전부 수용하려고 활짝 열었다가 날카로운 상처에 깊이 찔려서 모든 것을 닫아놓고 철저한 회피형에 사람을 믿지 못 하고 외로워 하며 정말 양극단의 대환장 파티를 경험하다가 이제야 겨우 안정감이 생기고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는 상태를 마주하게 됐네요.


그렇게 양극단을 경험하면서 중간의 덤덤한 평범한 일상 속의 행복찾아가는게 삶 아닐까? 싶어요.

돌이켜 보면 남들 모두 쉽게 하는 관계란 것이 가장 어려웠고 참 미움받고 아픈거 드럽게 싫어하는 사람이었더라고요.


그 깊고 깊은 근본 마음에는 가까워졌다가 아플까봐 무서워하는 마음이 있었고요. 근데 이제는 집착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으니 주변에 따스한 사람이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무서웠던 세상이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다는 걸

나뭇가지에 비춘 그림자를 보고서 날카로운 괴물을 마주한 것처럼 시작 전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던거죠.


많고 많은 사람들의 사는 모양을 보니 별다를 바 없는 그냥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냥 그렇게 조금 더 관계를 두드려보는 용기, 조금 더 솔직하게 드러내 보일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생각보다 헤어져도 죽지 않고 별거 없었네.

너무 미워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그냥

저마다 소중한 그냥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어요.


사람 사는 모양새가 다 천차만별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다 똑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결국에는 인간이니까요. 뭐 떠나면 떠난대로 각자 거리감 속에 행복하면 그만이지. 싶네요.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되니 나를 마주하게 하는 질문들이

참 소중했음을 이제는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아졌음을 느껴요.


불안과 결핍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했을 때는 성취를 이뤘음에도 헛헛하고 공허함이 밀려오죠. 어쩌면 그 성취는 내가 진정 원했던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성취라는 것은 순간 짧게는 행복하지만 끊임없이 욕망하면서 더더더 나아질 것을 부추기죠. 그러니 밑 빠진 독에 물을 한가득 채우기 이전에 깊게 어두운 독 안쪽을 샅샅이 파헤쳐서 살펴보고 밑빠진 독의 가장 깊은 바닥을 찾아 고치고 구멍을 덮어주는 것이 중요함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나를 수용하는 행위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그냥 앞으로 미래에 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더 큰 동력이 되어 주고 절대 떠나지 않는 셀프 지지자가 되어 주자거죠.


과거 위안부 문제니 피트니스 업계의 문제니 시위도 하고 가족의 문제나 남들 문제에는 같이 공감하고 싸워 주고 편이 되어줄 있었죠. 그렇게 온 힘을 다할 수 있었는데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 있어서 그렇게 아둥바둥 노력하면서 살았음에도 "아직 난 준비되지 않았어." 라며 정작 기회를 놓치고 빛을 발하지 못했어요. 끊임없이 채울려고만 하다보니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더라고요. 그러다보니 호감이 가는 이성이 다가왔을 때 내가 아직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더 채워야 기준들을 생각하며 밀어내고는 했던 것 같아요.


내 가슴을 당당히 펴지 못 하게 했던 낮은 자존은 돌이켜 보면 겉으로 보여지는 일과 성취물, 결과물에 집착하게도 만들었어요. 새로운 경험과 기회가 다가왔을 때 현실적인 대안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놓고는 했었죠.


뒤에서 죽을똥 살똥 그렇게 준비하고 노력했음에도 자신감이 없으니 생색도 못냈죠. 무리한 업무 요구에도 "괜찮다."면서 떠넘기는 일을 도맡아 하고 밤을 새서 스스로를 갈아넣으려고 최고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았어요. 항상 애썼지만 항상 부족해보였으니까요. 과거를 돌이켜보면 거절을 잘 못 하는 모든 걸 맞춰주는 예스맨이었네요.


아직 부족하다면서 겸손이라는 좋은 이름으로 포장하고는 했죠. 그러다보니 비단 깊은 연인 관계에서도 매력없는 선택적 을을 자처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타인을 중심으로 맞춰주며 내가 없는 을의 연애를 할려고 했던 것 같아요.


배우는 것에는 항상 과감했고 수많은 도전을 했고 경험을 했지만 두려움이 많은 겁쟁이였어. 용기가 부족했던 서툰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끊임없이 배우려 고 채우려 들었지만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듯 했죠. 


기존에 내 성과나 노력을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 줬음에도 스스로를 믿지 못 했어요. 항상 목이 말라 갈급해서 새로운 배움을 찾아나서고는 했어요. 물론 그냥 배우는 게 순수하게 재밌고 호기심이 많은 열정 부자이기도 했어요. 근데 깊은 이면에는 무조건 채우려드는 갈급함이 숨어 있었죠. 새로 만난 사람에게 자신감있게 나를 어필하지 못했어요.

항상 내 한계와 부족한 모습보였거든요.


그래서 소셜링의 참여자였던 타인에게 "그대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말을 건내면서 스스로에게 먼저 그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존재가 될려고 의식적으로 부단히 노력하게 됐어요.


과거에는 단점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면 계속 그것만 보여서 다른 잘했던 것 마저 망각하고 의욕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여러 장점과 재능을 참 많이 가지고 있다는 소릴 들었지활용할 방법을 몰랐어요. 항상 자신감이 부족하고 채우려욕구가 강했으니까요. 지금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이 아프지 않을 땐 피드백을 그냥 보완할 것, 관심으로 받고 바로 적용이 가능했지만 몸이 아프면 그때 그 말들도 굉장히 아프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상처처럼 맴돌고 스스로를 욱신거리도록 찌르면서 무력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기회가 다가왔을 때 좋은 제안이 들어왔을 때 저를

못 믿고 선뜻 잡지 못했었어요. 항상 밑빠진 독처럼 아쉬운 갈급함끊임없이 채우고 싶어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소한 디테일이 거슬려 약간의 아쉬운 지점들이 눈에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피드백을 들을 수록 보완할 방법을 고민하며 행동은 더욱 느려지고 계속 붙잡고 있어도 끝이 나지 않는 지루한 싸움을 반복하고 타이밍을 놓쳐서 신뢰를 잃었던 경험도 있었어요.


혼자 만들어 내는 작품이나 결과물은 몇개윌을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으니 자신이 있었지만 같이 하는 협업에 있어서 시간이 더디 걸리고 답답한 사람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결국 같이 하는 것에 있어서 실수하기 싫어서 더 부담감과 중압감에 잘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마감이 더 디 결렸던 것 같아요.


특히 소셜링의 소개글이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남들에게 보여진다." "오랜 모객 실패" 속에 학습된 무기력을 경험했었죠. 거기서부터 긴장을 하기 시작했던거죠.

그리고 혼자는 상관없지만 같이 하는 거니 잘해야 된다는

중압감은 배로 늘어났던 것 같아요.


남들은 쉽게 써내리는 피드 후기와 댓글이 쉽지 않았어요.

마케팅을 하고 플랫폼과 인스타의 브랜딩을 해야 된다라는 얘길 들었지만 드러내기 부담스러워서 쉽게 올리지 못했죠.


자꾸 눈치를 보게 됐어요. 그냥 바로 고마움을 표시하면 되고 표현하면 되는건데 제겐 큰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었어요. 완벽하게 보여줄 게 아니라면 과정 자체를 드러내기 싫어했죠.


고민을 하다보니 제 때 답을 못해 타이밍을 놓쳐버린 인연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객되지 않는 소개글은 나와 함께 하면 모객이 되지 않는걸까?라면서 협업 자체에 불안감, 두려움이 느껴지게 만들었어요. 미안한 마음이 항상 뒤따라 올라 오고 부채감에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을 보내게 어요.


그럼에도 다시 용기내서 다일님과 함께 했던 새로운 협업 작업 [따뜻따습 드로잉 토크] 덕분에 함께 하는 작업에 마음에 부채감을 덜어내고 이겨낼 수 있었어요. 소셜링을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을 성공적인 행복한 기억으로 다시 채워질 수 있었어요. 아크릴 물감 위에 다른 색깔의 아크릴 물감을 덧대어 새롭게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처럼 이전 작업은 다시 새로운 작업을 그 위에 덧대면서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지금의 실패 경험들이 영원한 실패 경험은 아니니까요. 아무리 두드리고 노력해도 여전히 제자리같이 느껴지더라도 끊임없이 나아간다면 아직 겉으로 보여지는 확실한 변화가 없더라도 내 마음이 스스로 변했다는 떳떳함을 깨닫게 되요. 


천천히 나의 속도감으로 나아가는 것도 가슴을 피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심어줬어요. 남들이 안 될거라고 얘기해도 내 속도로 지속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나만 나를 깊게 들여다 보느라 몰랐을 뿐 사실은 정말 많이 변했음을 어느 순간 확연히 느끼는 날을 마주할거에요. 이건 정말 확신해요. 그러니 당신의 가능성을 아주 조금만 아주 사소한거라도 그냥 믿어 주셨으면 해요. 당신이 아직 스스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제가 먼저 느끼고 경험했던 만큼 그냥 믿어 줄게요. 누군가 나를 그냥 믿어줬다는 그 따뜻함을 잘 간직하고 자신에게도 그런 따스함을 삶 속에 녹여내셨으면 해요. 당신의 삶을 응원할게요. 모진 피드백에 괴로워 할 때도 자신감을 상실하게 어깨가 축 무겁게 늘어질 때도 있지타인의 말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 


저는 참 복잡하지만 단순한 사람임을 느껴요.

말에 한없이 민감하니 칭찬의 말을 툭 건내주니 자신감과 용기를 얻고 바로 글을 써내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요. 피드백은 단순히 이거 고쳐!라며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장점과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의 보완점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 줄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을 느껴요.


정말 그 사람을 이롭게 할 방향은 무엇인가?

고맙다. 라는 말. 정말 도움이 됐다는 말에 다시 글을 신나서 써내리는 모습을 보게 되요. 다시 한번 상대에게 어떻게 말을 건내면 이로울지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세상은 따뜻한 말 한마디와 고맙다는 표현을 건낼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따스히 표현해주는 존재는  소중하고 고마운 것 같아요.

난 완벽함과 영 거리가 먼 서툰 사람인데 매번 따라다니는 완벽.

칭찬을 들으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브런치 플랫폼에서도 오늘 만큼은 작가님들과 독자님들건강을 회복시켜 주고 응원해주는 가슴을 당당히 펼 수 있게 도와 줄 치어리더가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받은게 많으니 그냥 신나게 생각의 유영을 펼치며 떠돌아다니고 싶더라고요.


말 한마디 "우쭈쭈"를 해주면 헤실헤실 거리면서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과거의 글만 보면 세상 진지하고 복잡한데 은근 다루기 쉬운 말에 민감한 단순한 사람인 것 같아요.


피드백을 받으면 "맞는 말이지."수용을 하지만 자신감이 떨어져서 쭈구리 모멘트로 동굴 시기를 보내고 마음이 약해졌던 순간  있었어요. 일에 집착하다보니 나를 분리하지 못 해 공격처럼 아프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죠. 물론 수용하고 보완을 해서 세상에 드러내기는 하지만 자신감이 떨어져서 회복 시간이 좀 걸리고 그때부턴 상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소심하고 심약한 사람이었더라고요.


근데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 나가다보니 이젠 피드백을 그냥 피드백으로 받을 수 있는 힘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어요. 피드백도 나를 위한 관심이고 오히려 이런 위기가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게 됐어요. 근데 단순 공격과 피드백은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내가 무엇에 마음을 열고 닫을 것인가?

경계 설정과 수용에 대한 해답이었던거죠. 이 구분을 잘 할 수록 나를 위한 에너지 효율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일종의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기억할 사람만 기억하는거죠. 모두를 기억하는 천재였으면 좋겠지만 한계를 지닌 사람이니 어쩔 수 없죠.


보완하고 좀 더 나아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좀 더 연결이 매끄러운 만족스러운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실마리라는 생각이 요. 그래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나를 마주할 수 있으니 뭔가 삶이 크게 달라지거나 변한 것은 없지만 피드백도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옵니다.


예전처럼 불안함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걸 줘도 불평불만을 쏟아낼 사람이 있고 감사로 받을 사람이 있으니 그냥 너무 타인에 목매기보다 꼴리는대로 하기로 해요. 타인을 적당히 맞추는 것도 좋지만 전부 맞추려고 모든 걸 다 세부적으로 완벽히 맞추려다가 소진되서 아무 것도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때로는 적당한 선에서 주관을 갖고 멈추고 마감짓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완벽할 수 없다. 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필요했어요.


삶 속에서 들키고 싶지 않았고 자신감없던 내 치부들을 긴호흡으로 당당히 글로 드러내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해요. 내가 알지 못 하는 사람들이 읽고 공감해주는 모습이 낯간지러우면서 기분 좋은 상호 작용을 재미를 조금씩 느껴요.


"좋아요. "표시에 집착하기보다 그냥  심정을 공감해주는 것 같아 따스하고 뭉클한 마음이 어요. 울컥한 마음에 괜히 눈시울이 붉그스름해집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당당하게 드러내는 수많은 글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됐어요. 그냥 나의 아픔과 힘듦을 드러내도 되는구나.를 알게 됐죠. 가족에 아픔을 들어주는 일에는 익숙했는데 내가 실수하면 멀어질 것 같다는 것이 막연히 무서웠죠. 아픔을 드러낸다는 것, 내 깊은 것을 드러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한 때는 글감이 참 쓰레기같이 느껴지고 적어 놓고 놔서도 불태워 버리고 싶을만큼 모질게 미웠던 것 같아요. 에세이 문집을 쓸 때 내 삶을 정리하고 싶다고 드러냈지만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는지 후회됐는지 몰라요. 내가 왜 이 작업을 시작한 걸까? 참 많은 생각에 잠겼어요.


근데 이제는 그런 과거의 글조차 그냥 나였음을 최악의 경험이 아닌 그냥 하나의 삶이었음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수백명의 사람 중에 단 하나. 그냥 나와 같은 쭈구리 한명이라도 힘을 받고 용기를 얻고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의 모든 치부처럼 느껴졌던 순간도 다 드러내며 솔직하게 글을 풀어내보기로 해요. 그렇게 나를 드러내고 그 글을 읽는 이를 생각하면서 그냥 서로가 서로의 치유가 되어주는 거에요. 그렇게 글을 써내리며 연결감을 느끼고 굳이 많은 표현과 댓글을 남기며 강박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따뜻한 시선 한줌에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느낍니다. 그렇게 글을 쓰고 읽어내며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지니 가슴을 당당하게 펴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너무 쉽게 가볍게 펴져 있는 자연스러운 순간들을 삶 속에 마주할 날들을 기대합니다.


그렇게 저는 글을 쓰면서 위로와 치유를 받게 되는 것을 느꼈어요.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나를 드러낼 용기를 조금씩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글쓰기를 지속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감을 하나씩 읽으면서 조금씩 단단해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니 별거없는 소박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따스함이 참 고맙습니다.


신체적으로 가슴을 당당하게 펴는 방법


작가님들은 대부분 브런치로 글을 작성할 때 모니터를 바라보고 글을 쓰거나 저처럼 핸드폰에 브런치 어플을 통해 글을 쓰고 연재하시겠죠?그러다보면 대부분 어깨가 말리기 좋고 잦은 블루스크린 노출로 인해 시력도 저하될 일이 잦을 것 같아요. 후두하근 부근에 시신경이 눌리면서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리기 좋은 상태가 예상되요.


대부분 사람들이 집중을 하게 되면 중립 자세에서 벗어나 대상을 바라 보며 몸의 무게 중심점이 앞쪽으로 쏠리게 되요. 그렇게 내 고개가 앞으로 빠져 나올 수록 머리와 목에 덤벨을 하나 둘씩 추가하는 것 같은 상태에 오랫동안 노출되겠죠.

내가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일에 미친듯이 매진했던 책임감의 무게처럼 목과 어깨에 긴장감이 생길거에요.


내 일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잘 하고 싶단 마음,

멋지게 해내고 싶단 마음을 한번씩은 품어보셨잖아요.


비단 업무뿐만 아니라 글쓰기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요.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니 그만큼 중압감도 느끼고 마음 한켠에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모든 걱정이 써내리고 드러내고 표현하고 나니 사실생각보다 별 게 아니었음을 그냥 해봐도 되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느끼는 것 같아요. 이미 난 충분히 가진게 많은 좀 용기를 내고 자신감있게 당당히 드러내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에요. 그렇게 기회를 떠나 보내고 나서야 후회하면서 그때 용기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아요.


우리 몸은 움직임을 위해 구성되었다고 도 과언이 아니죠.

움직이기 위해 구성된 몸으로 뭐든 그냥 조금만 용기내서 행동하면 되는거였어요. 현대인 편리한 삶을 위해 정해지고 막혀있는 업무 환경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의 여러 기회를 빼았아 갔어요.


몸을 그렇게 정해진 틀 안에 가두고 익숙한 똑같은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고  있죠. 근데 하나의 고정된 동작을 오래 지속을 하기만 하면 몸의 무리가 가요. 그러니 몸에 새로운 자유도 있는 움직임을 주는 것은 중요해요. 계속 구부정한 자세에 고정된 화면에 집중된 시선을  소중한 내 몸으로 옮겨보면 어떨까요?제가 좋아하는 좋은 글들을 오랫동안 써주셨으면 하는 마음, 조금  더 건강하게 체력을 잘 유지하셨으면 는 바램에 집에서 하기 좋은 5분 푸셥 루틴을 살짝 가져왔어요.


잠깐 글쓰기를 멈추고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할 독자를 위해 5분 푸셥 어떠신가요?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으로 오른 손 검지를 빠르게 슥슥 움직이며 글을 읽고 좋아요! 를 열심히 눌러주시는 사랑스러운 독자님들도 함께 5분 푸셥 어떠세요? 우리 같이 운동을 통해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오랫동안 글쓰기를 지속해보자고요. 짧은 푸셥 동작이니까 조금만 용기내서 같이 따라해 보실래요?뭐든 시작이 어렵고 괴롭지 조금만 용기내면 조금씩 힘이 생기는게 느껴질거에요.


설사 환경은 바꿀 수 없더라도 저처럼 자신감도 부족하고 용기가 없던 사람도 운동을 통해 말렸던 어깨가 자연스럽게 펴지고 몽글몽글 송이송이 맺힌 땀방울 위에 뿌듯한 마음과 용기가 조금씩 샘솟 올라오는게 느껴질 거에요. 사는게 영 순탄치는 않아도 ".. 그래도 해냈구나." 하고 말이에요.


나는 내 몸 하나만큼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 그거 진짜 큰거더라고요. 정말 부족하고 못 할 것 같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당당하게 펼쳐진 어깨와 함께 자신감이 서서히 올라올거에요.


자신감은 다른 외부적인 결과물을 통해서 온다기보다 그냥 내가 쌓아올린 무수한 노력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음느낄 수 있게 될거에요. 몸을 통해 머리가 가벼이 비워지면 자신감이 자라난 나를 체감하는 순간을 분명 마주할거에요.


운동을 하고 고통스럽고 힘들었는데 조금 더 가뿐해지고

체력이 붙어 있는 나, 어제보다 당당하게 바로 선 나를 마주하면 실패하는 일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만 이겨낼 수 있어요.


감정에 휩싸이고 많은 생각들에 사로잡힐 때 머릿 속을 고요하게 잠재워줄 수 있던 게 바로 운동이더라고요. 그러니 내 삶을 조금 더 건강하게 용기를 내기 위해서 손바닥으로 밑바닥에 머물러 있던 무거운  몸을 있는 힘껏 밀어내고 중심을 바로 잡고 일으켜 세워 보는 거에요. 내 신체가 달라지는 변화를 그렇게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짧은 5분 푸셥속는 셈치고 매일 조금씩 실천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용기없고 찌질한 겁쟁이를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할 수 있게 만들어줬운동. 

몸을 스스로 일으키는 움직임에서 시작됐던 것 같아요.


삶이 퍽퍽하고 괴롭고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내 삶을 직면하고 마주할 수 있도록 운동을 실천해보셨으면 해요.


"나를 멋있다!"스스로에게 칭찬할 수 있는 뿌듯함을 선물로 가져가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모두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존재니까요. 누구보다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자신감있게 살아가도 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니까요.


요즘 트렌드를 모르는 sns를 안 하는 할매재질이라 굉장히

옛스럽고 오글거리는 표현을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꺅꺅.

캬캬캬. 익숙해지시죠. 그대들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5분 루틴_빨리감기(×) 원본/ 보정x

1단계_ 날개뼈 움직임 인지 + 미니 푸셥 ×10

2단계_ 푸셥 정석 자세 ×10


3단계_트라패즈 이용해 부하 높이기_코어 활성화 x10

(트라패즈 대신 쇼파 위에 다리를 올리고 가능)


4단계_날개 뼈, 견갑 움직임 인지 ×10


5단계_ 매달려서 캐들락 푸셥하기 ×10


6단계_척추 움직임 만들기


#호흡을 통한 코어 활성화

#가슴에 자극점에 집중하며 천천히 진행하기

#내 몸에 맞는 난이도 조절하기


#웨이트 루틴처럼 단일 근육에 집중.

"가슴 근육"에 집중한 근무 중 쉬는 시간에

빠르게 하기 좋은 짧고 굵은 5분 푸셥 루틴


현대인들은 대부분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지 않으만성적인 목, 어깨 통증에 시달리기 좋다.


#손목 통증 있으신 분들 벽에서 폼롤러로

전거근 활성화 시켜 주는 동작부터 선행하기

손바닥 위치, 토크 거는 거 확인해주기


푸셥 초보자는

1단계에서 손을 바닥에 대고 전거근 활성화부터 시작.

네발 기기에서 코어를 전체적으로 쓰는 것부터 활성화 

롤바를 이용한 푸셥으로 부하를 줄인 후 시작.

가슴 근육 쓰는 느낌을 디테일하게 교육 시켜주기.


2단계 정석 푸셥에서는

다리 들어 올려서 앞뒤로 버티면서 발목 움직이는

시퀀스를 추가로 넣어 줘도 좋아요.

몸통이 일자로 안 펴질 경우 하복부 운동 선행하기


3단계 트라패즈 푸셥

매달리고 버티는  연습부터 선행하기.

푸셥 전 단계에서 손으로 어깨 터치하는 동작을 넣어

코어를 좀 더 활성화하고 깨워줘도 좋음.


[5분 루틴 전후로 주변부 긴장을 풀고

  가슴에 집중하기 좋은 동작들]


->목스트레칭

->흉추 가동성 동작, T스파인

->푸셥 5분 루틴[영상]

->가슴 스트레칭

->등근육, 중하부 승모근 쓰는 시퀀스


트라패즈가 없는 집에서 파에 다리를

걸쳐서 올려 두고 응용할 수 있어요.


가끔 가슴 근육보다 상부승모근 목, 어깨를 더 쓴다고 느껴진다면 서 있는 자세에서 점점 바닥으로 내려오며 점진적으로 부하를 높이는 방식으로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요.


#1 승모근이 약해서 긴장하신 분들을 벽에 등을 붙이고 두팔을 만세~~!!하고 어깨를 으쓱으쓱해서 슈로그 동작을 진행하면 평상시 약해서 긴장이 되어 있던 상부승모근을 활성화시켜주고 부하가 덜 들어오게 중하부 승모근을 쓰도록 y레이즈 동작을 해주시면 좋아요.


근력 운동 전 후로 해당 부위에 스트레칭을 셋트 사이 사이에 넣어주면 근막들이 자극되어 근육의 질이 좋아지고 근육의 모양도 예쁘게 잡히니 평소 근력 운동만 했다면 셋트 사이 휴식에 스트레칭을 추가해주면 좋아요. 부상 예방을 위해 운동 후 단축성 수축으로 짧게 긴장된 근육을 신장성 수축의 스트레칭 움직임을 추가하면 근질이 좋아질거에요.


그리고 운동을 한 만큼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영양분을 섭취해줘야 한다는 거 잊지 말고 글을 쓸 때 바로 먹기 좋게 모니터 주변에 커다란 텀블러를 두고 자주 손이 가게 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백날 운동해도 일상과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운동을 한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일상에서의 습관 운동보다 움직임 리셋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드리는 편인데요. 컴퓨터 셋팅 자체를 내 시선과 모니터 중앙이 위치하게 셋팅을 높게 하는 것만으로 요통과 어깨, 목의 통증을 경감 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운동을 통해 말려 있던 가슴이 펴지면 자신감도 뿜뿜!!

몸과 마음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줄다리기 관계에요.

가슴이 펴지면 폐로 숨을 확보할 공간이 많아지고 호흡의 질이 좋아지죠. 그럼 과호흡을 할 소지도 줄어드니 깊고 안정감있는 호흡을 통해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을  수 있어요.


깊은 호흡은 몸의 부교감 신경계를 깨워 각성 상태에 놓여있는 스마트폰 기기와 잦은 기기로 인해 도파민에 절여진 현대인에게 긴장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죠. 뇌로 들어오는 과한 자극들을 몸의 주변부로 보내 주면 실존하는 내 몸을 느끼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그러니 운동은 단순히 다이어트뿐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건강과 안정감을 위해서도 중요해요.


단단하게 휘둘리지 않는 중심을 잡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건강한 삶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하고 내 몸을 챙기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지하철에 사람들을 관찰하면 대부분 두손에 핸드폰을 꼭 쥐고 시선은 화면에 고정되서 뒷목에 간장감을 주기 딱 좋은

자세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목격해요.


스마트폰을 하며 방금 글을 읽고 남의 일인 것처럼 스크롤을 내리고 있던 당신! 뜨끔하셨다면 손에서 폰을 내려놓고 5분 푸셥 루틴 어떠신가요?트라패즈나 캐딜락을 없더라도 집에서도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동작들을 앞에 활성화 동작으로 넣어 놨으니 한번 바로 따라해보세요.


[주의 사항을 지키며 따라 해보기]

-손바닥을 바닥에 밀 때 가슴 자극 인지하기

-상부 승모근 너무 개입되지 않게 손의 방향 조절하기

(긴장도 심하다면 #1을 따라해 볼 것)

-호흡을 통해 코어 컨트롤하고 활성화 시키기

(호흡의 기술을 읽어보시면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될 거에요. 건강을 위한 추천도서!! )

-겨드랑이 아래쪽 전거근 활성화 선행하기

(팔꿈치 구부려서 폼롤러에 대고 밀 때, 전인 동작에서 인지)

-손의 각도에 따른 가슴 근육 위치 조절하기

-무게 중심점 힘점으로 조절하기


#푸셥을 하면서 궁금하신 점이 있거나 불편한 부근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셔도 좋아요. 저도 한번 더 정리하는 계기가 되니 피드백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요새 감기가  독하더라고요. 콜럭콜럭 인후염이 독해서 넘 아픕니다. 찡찡찡..ㅠㅠ


이제는 표현하는 찡찡이도 좀 해볼려고요. 아이고. 나 죽네. 하면서 괜찮아 보이고 싶은데 잔뜩 엄살도 부리고 싶어요. 

다들 저처럼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모두가 몸과 마음이 단단한 중심을 잡고 바로 서서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내 삶을 마주하시길 응원합니다.

몸과 마음의 안녕을 바라며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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