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앞 식당

by 히다이드

터미널 밖은 추웠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버스를 놓치고 하루 종일 고생하느라 몸이 너무 피곤했다. 어디 들어가서 좀 쉬고 싶었는데 불 켜진 가게가 없었다. 밤새 거리에서 떨면서 있을 생각을 하니까 앞이 막막했는데 마침 나보고 터미널에서 나가라고 하셨던 할아버지가 보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변에 24시간 카페가 있냐고 물었는데 할아버지께서 길 건너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는데 뭘 가리키나 했더니 불이 켜진 곳이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고 불이 켜진 곳을 향해 걸어갔다.


허름한 1층짜리 건물에는 제대로 된 간판도 없었다. 한국에서 밤이 되면 불이 켜지는 간판만 봐서 그런지 밖에서 보기엔 가게 같지가 않았다. 카페라기보다 슈퍼마켓처럼 보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음식도 팔고, 술과 차, 커피 등을 파는 작은 식당이었다.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학교 도서관에서 봤던 딱딱한 나무 의자라 편히 쉬기에는 불편했지만 밖에서 보내는 것과 비교하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배가 고팠다. 옆의 테이블에서 한 남자가 먹고 있는 돈가스와 알감자, 으깬 야채가 나오는 음식이 맛있어 보였는데 메뉴판이 에스토니아어로 쓰여 있어서 뭘 시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식당 주인에게 남자가 먹고 있는 것을 슬쩍 가리켜 보이니까 다행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채고 메뉴 이름을 말해줬다. “Yes”라고 말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먹었다. 어차피 24 시간 영업이라 계속 앉아 있어도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녹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30 분이 지나자 다 먹어버렸다. 차 한 잔을 시켜 놓고 앉아 있었다.


아침이 될 때까지 5 시간 정도를 그렇게 앉아 있어야 했다. 배가 차니까 그날 쌓여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잠이 왔는데 테이블에 엎드려서 자려고 하니까 주인아주머니가 와서 무서운 표정으로 자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눈이 자꾸 감기면서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데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있으려니까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새벽 시간인데도 간간이 손님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갔다. 그중에는 한 무리의 경찰관들도 있었는데 야근 중에 출출하니까 온 것 같았다. 무리 중 한 명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는데 나 역시 그 사람들이 흥미로웠다. 근무 중 순찰하는 모습이야 늘 볼 수 있는 거지만 한 밤중에 같이 야식을 먹는 모습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몇 무리의 손님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구경하며 가끔 기도를 하듯 두 손을 모으고 이마를 기댄 채 졸기도 하다 마침내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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