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워서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긴 밤을 버티고 마침내 버스를 탈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새벽의 공기가 오히려 머리를 맑게 했다. 이른 시간이라 텅 빈 거리를 내 캐리어 가방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터미널에 들어가자마자 대형 스크린에 표시되는 버스 시간표부터 확인했다. 플랫폼으로 나가는 출구 바로 옆에 서서 버스가 오는지를 지켜보다 멀리서 ‘럭스 익스프레스’ 사의 회색 버스가 터미널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이자 바로 내가 탈 플랫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버스에 올라타고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터미널을 바라보는데 이제 바르샤바까지 무사히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전날 아침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탈린행 버스를 놓치면서 시작된 온갖 쇼를 떠올리는 중에 버스가 터미널을 출발했다.
스쳐 지나가는 탈린 시내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깐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버스는 평야를 달리고 있었다. 사방에 안개가 자욱했다. 집과 나무들, 들판에 마치 구름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버스가 달려가는 도로 앞 멀리 숲 사이로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 어떤 일들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전날 벌어진 일처럼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중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여행을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 용기를 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모든 불확실성의 한가운데로 나 자신을 던지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