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행 버스를 놓치다

by 히다이드

탈린을 떠난 버스는 별 탈 없이 라트비아의 리가에 도착했다. 리가의 버스 터미널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바로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로 출발했는데 터미널에서 버스기사와 있었던 일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새 버스로 짐을 옮겨 실으면서 빌니우스로 가는 게 맞는지를 물어봤는데 나한테 신경질을 내는 것이다. 바쁠 때 물어본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었다. 무안하기도 하고 약간 불쾌했지만 사소한 일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창밖을 내다보며 기분 전환을 하고 있었다.


리가에서 맑았던 하늘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점점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한참 동안 달렸는데 비가 잠시 멈춘 틈을 타 버스가 도로 옆에 멈춰 섰다. 휴식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있느라 힘들었던지 버스가 멈추자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나도 밖으로 나가 쉬고 있었는데 주변을 카메라로 찍다 몸을 돌려보니 버스기사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담배를 피우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버스기사는 시선을 피해버리며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버스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버스가 출발했다. 빌니우스가 가까워지면서 구글 지도로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의 위치와 주변 정보를 계속 확인했다. 정류장의 이름은 ‘파노라마 쇼핑센터’였고 거기에서 바르샤바행 버스를 타야 했다. 빌니우스 시내로 들어서면서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집중해서 들었다. 영어로 안내하는 내용을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파노라마’라는 영어 단어가 들렸고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체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이번 정류장도 쇼핑센터 주차장 옆 인도에 안내판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지만 이번에는 속아줄 생각이 없었다. 버스 짐칸에서 짐을 빼는 걸 기다리며 비가 내리는 주차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표를 보니 버스를 탈 플랫폼 번호가 안 적혀 있었다. 안 그래도 동네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국경을 넘는 버스를 탄다는 게 찜찜했는데 확실히 하는 의미에서 버스기사에게 티켓에 플랫폼 번호가 안 적혀 있다고 했다. 그러자 버스기사는 내 표를 보지도 않고 화를 내면서 여기가 아니라 ‘빌니우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몇 번을 물어봤는데 버스기사는 화만 냈다. 티켓에 ‘파노라마 쇼핑센터’라고 적혀 있었지만 다음에 탈 버스도 같은 회사의 버스인데 이 사람이 잘못 알고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만약 버스를 놓치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동네 주차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불쾌했지만 그래도 전문가의 말을 믿기로 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바로 다음 정류장이 ‘빌니우스 버스 터미널’이었다. ‘파노라마 쇼핑센터’에서 몇 분 정도 더 가서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꽤 큰 터미널이었다. 사람들도 많고 여러 회사의 버스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제대로 왔다고 생각하고 버스기사에게 “Thank you”라고 인사한 후에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승강장에서 바르샤바행 ‘럭스 익스프레스’ 버스를 기다렸는데, 오후 3시를 조금 넘어 출발하는 버스가 3시를 넘어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불길한 마음이 들었는데 마침 주차장 구석에 내가 타고 온 버스가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버스로 가서 안에 있던 기사에게 바르샤바행 버스가 여기로 오는 게 맞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버럭 화를 내면서 “I don’t know!”하고 외치는 것이다. 가슴에서 뭐가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좋은 아시아인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Thank you”라고 하고 돌아섰다.


앞이 막막해지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밀려왔다. 승강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데 그 버스기사가 동료와 함께 비웃듯이 웃으며 내 앞을 지나갔다. 한 어리바리한 아시아인을 혼내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화가 났지만 운전기사한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바르샤바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기차가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원래 바르샤바에 밤늦게 도착해서 이미 예약한 숙소에서 몇 시간이라도 쉴 계획이었지만 이제는 숙소에서 쉬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 날 새벽 기차를 놓치면 함부르크에서의 일정도 엉망이 될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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