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니우스의 맥도널드

by 히다이드

밤 9 시까지 버스 회사 사무실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뭘 좀 먹고 싶었다. 아침, 점심을 버스 안에서 빵이랑 과자, 물로 때워서 배가 고팠다. 인터넷도 써야 했는데 맥도널드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마침 근처에 맥도널드가 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맥도널드의 도움을 받는 게 재미있었다.


터미널에서 나와 맥도널드 매장까지 걸어가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도 쌀쌀하고 거리가 음산했다. 원래 이동할 때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느라 바쁜데 이 때는 버스를 놓치고 표를 다시 구하느라 진을 다 빼버려서 그럴 힘이 없었다. 걸으면서도 그저 쉬고 싶을 뿐이었다. 맥도널드에 도착해 따뜻한 커피와 햄버거를 먹고 나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도 그랬는데 이곳의 맥도널드도 인기가 참 많았다. 밖의 거리는 썰렁했지만 매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중에 중학생 나이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지나가던 게 생각난다. 요란한 짐 꾸러미와 전날 씻지를 못해 꾀죄죄한 행색이 이목을 끌었던 것 같다. 내 행색이 말끔했다면 버스기사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진 않았을 거다.


식사를 마치고 예약해 뒀던 바르샤바 숙소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메일을 보냈다. 환불을 받으면 좋겠지만 너무 늦게 얘기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일정표를 꺼내 바르샤바 역에서 해야 할 일들을 다시 확인했다. 함부르크행 기차를 타는 게 가장 중요했는데 기차를 타기 전에 유레일패스를 개시해야 했다. 개시라는 게 별 거는 아니고 유레일패스를 사용하기 전에 도장을 받는 거였는데 도장을 못 받으면 유레일패스를 쓸 수 없었다. 새벽 5시 50분에 함부르크행 기차가 출발하니까 그전에 도장을 받아야 했다. 다음날 일정을 확인하고 나서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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