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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01. 2023

이해를 위해서는 때가 필요한 법.

지금은 다른 부서에 있지만 몇 년 전에 같이 일했던 후배랑 업무 얘기를 하다가, 책 출간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글쓰기로 주제가 이동했다가, 커리어에 관한 것까지..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가 이어졌다. 리더의 역할을 한 지가 거의 15년 가까이 되는데, 함께 일하는 조직 구성원들과 1 on 1 (일대 일) 미팅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바로 이 후배를 포함한 서너 명과 일을 하게 된 때부터다. 4년 정도 함께 TF 조직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지냈던 까닭에 항상 만나면 반가움과 미안함이 묘하게 섞이는 편이다. 애틋함 같은 것도 있다.


후배는 요즘 들어 책을 읽기 시작했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예전에 1 on 1 하면서 내가 해줬던 말이나 질문이 생각난다며 이제와 돌이켜 보면 고마운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당시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서,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떠올려 보니 내가 주로 던진 질문들이 이런 식이었다. ‘당신은 이 조직/회사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가요’ 라든가, ‘커리어를 어떻게 확장하고 싶은가요’처럼 다소 형이상학적이긴 했다. 석사만 마쳤던 친구에겐 박사 과정을 권하기도 했고, 각자 이력서를 매년 잘 정리해 보라고 안내한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나는 11년 차, 이 친구는 3-4년 차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나 조차도 답이 없는 질문을 후배들에게 마구 던진 셈이다. 괜히 멋있어 보이는 선배 마냥 떠들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잠시 들어 조금 쑥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항변하자면 어차피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겪게 될 고민을 미리 해보라는, 나름대로는 선배로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질문이기도 했다.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질문의 힘을 빌어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건 옳다고 본다. TF 조직을 맡으면서 나는 원래 하던 연구의 영역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도전에 놓여 있었다. 그걸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맞닥뜨린 고민의 주제들이 생겼다. 그건 커리어에 대한 생각과 내적 갈등, 다양한 부서 간 관계에 대한 이해와 공부 같은 것이었다. 보통은 조직 안에서 성장해 가는 과정 중에 ‘커리어 관리’라던가, ‘조직 간 갈등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방안’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사나 노하우를 알려 준 선배는 없었다. 그건 그냥 일하다 보면 알게 되거나 알아서 습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각자도생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도 나의 견해는 변함이 없지만, 적어도 선배/상사라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의 성과만 따질 것이 아니라, 후배나 동료의 성장 전략과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쩌면 그게 첫 책인 <나는 연구하는 회사원입니다>의 본질적인 출판 의도이기도 했다.


지금의 이 친구가 그때의 내 연차와 비슷해졌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그때 왜 자기에게 그런 질문들을 했는지 이해가 간다며, 지금 만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하였다. 이 대화의 끝에 생각해 보니 지식과 달리 경험에서 오는 일종의 삶의 지혜라는 건, 적절한 이해를 위해 무르익을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흔히 어르신들이 말하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는 보통 인생의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지만, 다르게 해석해 보면 우리가 누군가의 행동이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물리적인 시간의 누적도 필요하다는 것일지 모르겠다.


헤어지면서 후베에게 이렇게 말해 줬다.

내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다면 혼자 알고 있지 말고 당신의 후배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라고, 나처럼 질문을 하고 생각할 기회를 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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