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내부 행사로 성과 발표회가 있었다. 발표 내용 중 하나는 임시 조직의 매니저로 있던 시절, 내가 제안해서 시작된 과제였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2016년 정도니까 상당히 오래되었다. 고비도 많았기에 어쩌면 진즉에 서랍 속에 고이 들어갔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포지션을 이동하며 과제와 멀어졌고 대신 과제 리더를 했던 후배가 잘 꾸려서 끌고 왔고, 드디어 발표의 자리에도 서게 된 것이다.
발표자였던 후배를 알고 지낸 건 10년 정도다. 만났을 당시 난 10년 차, 그녀는 주니어였다. 의욕이 넘치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회사가 충분히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건방지게 판단하자면 내가 보기에 그땐 과제를 끌고 갈 역량은 아직 부족했던 그런 기억.
오늘 발표하는 것을 보니 아, 내 기억이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었구나 싶었다. 중간중간 좀 더 쉽게 설명해도 좋을 기술적인 부분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야기를 전개하고 청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꽤 좋아졌음을 느꼈다. 전달자로서도 좋았지만 진짜 감동은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그녀에게서 직접 한동안 정서적으로 어려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이고 뭐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리더였던 내가 떠난 자리에 때로는 본인이 직접, 때로는 다른 리더가 조언과 참견과 제재를 하면서 표류했기 때문이다. 막말로 때려치우려고 했을 상황에서도 잘 견뎌내며 - 참아가며 - 연구를 이끌어 갔다. 그 사이에 1인의 탐색성 업무는 3-4인을 거쳐, 조직 단위의 큰 규모로 성장했다. 따라서 오늘 발표가 온전히 그녀만의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중심을 유지하고 잡는 역할을 충분히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단 한 장으로 요약된 슬라이드에도 사실은 수많은 비하인드가 섞여 있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있어서 새삼 대견하게 느꼈다.
보여주는 결과가 어떤 수준의 연구와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발표가 끝나고 꼭 코멘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당신의 노력이 이제야 완성된 결과로 마무리될 수 있게 되었군요,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해주는 것은 수고했다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따로 보내는 것과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기술적인 걸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과제를 시작할 때, 두피나 탈모의 기술에 대해 저의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제안했던 것이고, 그러다 보니 진행이 원만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일종의 원죄의식을 갖고 있었거든요. 사실 제가 자리를 비우기도 했었고(주재원 생활) 챙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 과제가 이렇게 커질지 몰랐는데, 이 정도 규모로 진행된 것을 보니 제가 다 감개무량합니다.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오늘 발표할 수 있도록 잘 운영해 주셔서 축하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 과제를 운영하면서 겪은 내용에 대해서도 나중에 회고해 보신다면, 다음에 과제를 하게 될 때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배경을 모르는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난 내 말을 듣고 있는 후배의 표정을 보며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느낌을 전달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자마자 감동받았다며 눈물 날 뻔했다는 후배의 메신저가 곧 도착했다. 나는 그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안다.
좋은 과제로 멋진 성과를 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또한 사람들 앞에서 성과를 자랑하고 칭찬받는 것도 회사 생활의 기쁨이다. 나는 보통 이런 과정에서 성취를 이루어왔고 동기부여를 받았다. 다만 개인적인 즐거움을 벗어나긴 힘들었다. 이번에 발표를 보면서 후배나 동료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으로는 전혀 다른 방향의 성취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은 잘 모르는 그녀의 개인적 서사까지 겹쳤던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인기는 그 안에서 성장하는 캐릭터를 지켜보는 재미에 있다. 회사에서도 그런 일을 겪으니 생경하기도 하면서 어쩐지 내가 괜히 뿌듯해지는, 그런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