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Nov 13. 2023

이직 말고 전직

업무가 뾰족해질수록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전문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남이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조직에서 살아남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대체 불가능성,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걸 굳이 내려놓거나 바꿀 이유는 많지 않다.


분명히 그런 업무들이 있다. 배경 지식이 없으면 쉽사리 뛰어들 수 없는 것들. 연구소에 근무하는 입장에서 학부나 대학원 전공이 특히 그렇다. 생물학을 공부한 나로서는 유기 합성이라든가, 물리학, 인공지능 연구 같은 것은 지금 도전하기에 조금 무리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뜻을 갖고 도전하면 이룰 수 있으리라는 믿음 정도는 가질 수 있지 싶지만, 그래도 분명히 때가 있고 배워야 하는 시기가 있다. 기본부터 다져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아니 끝내주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의 영역은 존재한다. 무릇 전공 분야가 아닌 곳으로 뛰어들어 대체자가 되겠습니다, 하고 뛰어드는 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그에 비해 - 업무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 그냥 배워서 하면 되는 일들 또한 존재한다. 전문적인 이해가 뒷받침되면 더 잘하고 뛰어날 수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소싯적에 배운 배경 지식과 무관하게 그냥 자꾸 하다 보면 숙달되는 성격의 업무가 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라도 열심히 익히면 그럭저럭 ‘일’이란 걸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일이 있다.


지금 내 일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물어보면, 대답은 ‘아니요’라고 분명히 그리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물론, 현시점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하는 수준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후배나 동료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언제까지나 최고의 적임자로 0순위인 사람이 내가 될 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적당한 때에 적절하게 후임을 양성하는 것이 내가 조직에 기여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 손뼉 칠 때 떠나라는 말은, 남들의 시선과 판단 같은 것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자기를 돌아볼 줄 알라는 조언일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나는 언젠가부터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극한의 전문성 때문에 경쟁력은커녕 적응 조차 하기 어려운 분야에 발을 뻗어 볼 생각은 없다. 대신 조직에서 분명히 필요한 일인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도 되지만, 나처럼 그래도 이 경험 저 경험 쌓아가며 버텨온 인력이 나름 (경험에 의한)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면 분명해 볼 만한 그런 성격의 일을 마치 사냥감을 찾아다니듯 보고 있다. 갑자기 든 생각이 아니다. 몇 년 동안 갖고 있었다. 조직이 큰 회사에서 일을 하는 장점이 뭘까? 좋은 복지나 시스템, 잘 갖춰진 업무 프로세스, 괜찮은 동료들이 떠오를 것이다. 내가 찾은 큰 회사의 장점은 바로 전직이다. 내가 말하는 전직이란, 조직 안에서 업무 전문성의 pivotting을 시도하는 것이다. 


일의 격 저자 신수정 님이 링크드인에 쓴 글이 있다.


“지루하거나 익숙하거나 편하다는 것은 자신의 성장이 정체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너무 성장에 매몰되거나 높은 목표로 인해 자신의 생활을 무너뜨리거나 스트레스로 지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텐션이 필요하다. 성장은 회사가 시켜주지 않는다. 조금 어려운 일, 해보지 않은 일을 도전하라”


하지만 연구원이라는 특성상 대안이 될 업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어쨌든 생각만 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작정하고 몇몇 리더에게 미팅을 요청했다. 조심스레 불러 내어 물어보았다.


‘혹시 거기 가서 제가 기여할 일이 있을까요?’


짐짓 놀라는 사람, 왜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려 하느냐 버티라고 조언하는 사람, 자기도 자기 부서가 어찌 될지 모르니 불안하다는 사람 등 반응은 다양했다. 그들의 반응과 조언이 모두 이해가 된다. 혹자는 와주면 너무 고맙죠라고 한다. 손만 들었으면 당장 옮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그 순간 나의 용기가 부족했고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다. 쿨하고 싶었지만 정작 결단의 순간엔 멈칫 물러나는 나. 


조금 치사하게 변명을 하자면 전직이라는 명분과 질문을 통해, 다시 한 번 나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