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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n 16. 2023

조직 개편을 기다리는 마음가짐

회사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팀장님이 바뀌었다. 난 8월 입사자였는데 그 해 12월이 되니 이번엔 조직 개편이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쪼랩의 나를 보며 선배들은 별 것 아니란 듯 말했고, ‘회사란 이런 곳인가'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많은 변화가 매년, 아니 어떨 때는 분기에도 생기고 반기에도 일어났다. 어디 조직장이 어제 전화를 받았다더라, 이번에 누가 어디로 발령 난다더라, 조직이 없어진다더라 등등. 연말은 카더라와 뇌피셜 같은 확인되지 않고 근거도 불분명한 사내 소설가들의 대환장 파티였다. 처음엔 매번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 있었지만 그것도 몇 번 하고 나면 시큰둥해졌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먹이를 좇는 참새들 마냥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대는 것이 부질없어 보였다.


뉴스 퍼다 나르고 귀 쫑긋 세워두는 시기가 지나가자 다른 임무가 생겼다. 새로운 사람이 상사가 되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뭔지 교육시키고, 이해를 도모하고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는 과정이 몇 년에 한 번씩 반복되어 갔다. 그게 일상화되다 보니 바꿔 봤자 거기서 거기지, 이런 패배주의적 생각이 든 적도 있고, 기대에 차서 새로운 사람을 환영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도 했었다.


내게 있어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바로 임원의 발령이나 조직 개편이다. 20여 년 가까이 회사를 다녀보니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음을 깨닫는다. 모자란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고(최소한 반면교사라도), 유능했던 사람이 총명함을 잃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자기에게 맞는 그릇의 크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에, 누구를 위한 승진과 발탁인가, 좋은 성장 시스템이란 어떤 것이며 회사는 그걸 잘 준비하고 있는가처럼 형이상학적 질문도 해보게 되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만 하는 욕심쟁이가 될 것이 아니라 후배를 육성하고 언제든 나를 대체할 인력과 시스템을 갖춰 놓는 선배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또한 내가 하면 잘할 것 같은데 기회를 주지 않음에 상심했던 치기를 버리고, 의사 결정권자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는 내가, 꽤 성숙해졌다고 스스로 칭찬도 한다.


상황 논리가 때론 중요한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조직 생활에서 어찌 내 의견만 고집하고 반영되기를 바라겠는가? 그래서 얼마 전 개편에 대한 가안을 받았을 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상사가 대충 마음 가는 대로 흩어 놓았을 리 없을 것이다. 물론 개인별 업무의 성향이나 개개인 사이 관계의 좋고 나쁨까지는 정보가 닿지 않는 구석이 있어서, 그걸 알려 줄 의무는 있었다. 그래서 당신이 짠 판에 적어도 이런 부분은 걱정이 되니 고려해서 다시 고민하시라 말씀드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절대 안 된다라고 했을 법한 일임에도, 의사 결정권자를 존중하려는 생각에 가급적 딴지 걸기보다는 그 안에서 최선의 방향을 찾으려고 하게 되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이상적인 그림은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벌써 했겠지. 대신 유달리 이번에는 어떻게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지배적 이어서일까, 신입 사원 때 마냥 다양한 소설과 뉴스 속을 일부러 뒤지고 다녔다. 결정되지 않은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들의 놀라운 상상력을 보았다. 가설이 100개쯤 되면 그 중 하나는 들어맞기 마련이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가고 발령일 마감이 다가올수록 결정은 이뤄진다. 최악보다는 차악의 기로에서 선택된 답지로 올해 하반기를 시작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이상한 생각을 해 본다. 너무 오래 다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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