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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Dec 22. 2023

응원할게, 그 말에 담긴 섭섭함.

이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naymore/496



‘조직을 이동하여 다른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긴 방황과 고민 끝에 내렸던 결론에 대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상무님은 잘 했다며 가볍게 박수치는 모습을 보였다. 잘 할 수 있어, 괜찮아!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것이 조직 운영에 대한 그 분의 기본적인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서 나오는 뒤통수에는 ’섭섭함‘이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랬다.

나도 후배들에게 그런 말을 들은 경험이 있었다.


잡지도 않는 냉정한 사람.

요즘 말로, '너 T야?'에 해당하는 그런 리더. 

실제로 T 맞아서 더 뼈 아프긴 하다만. 


그동안 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 중 같이 일하던 후배가 조직이나 직무를 바꾸고 싶다고 했을 때 나 역시 흔쾌히 그리고 정말 응원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잡지 않는 이유? 나만의 방어 기제는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니 원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 일 하는 것이 맞지’였다. 스스로 내린 결정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일을 당해보니, '아 이런 기분이 드는구나' 알 수 있었다. 


굳이 나를 조금 더 항변하자면 나에게 조직 이동을 선언했던 후배들은 아직 낮은 연차였고, 조직의 다양한 부서에서 해보지 못한 경력을 새롭게 쌓을 기회를 찾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판단했었다(당사자들에겐 비겁한 변명일 수도). 어쩌다보니 자의 반 타의 반 하나의 부서에서만 일을 해오지 않았던 나였고, 새롭게 해 봤던 많은 경험들을 통해 내 성장이 방해되기는 커녕 큰 도움이 되었다는 믿음이 있었다. 새로운 연구 주제를 탐색하면서 고민한 시간들, 해외 연구소에서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쳐 가며 돌파해 온 경험, 체계를 갖추며 정교화된 업무 프로세스를 다듬는 노력들.. 나름 경험에서 오는 인사이트였다. 따라서 그렇게 도전해 보고 싶다는 후배가, 동료가 있다면 비록 그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쿨하게 보내주는 것이 제법 괜찮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후에 다른 이를 통해 전해들은 그들의 마음은 ‘잡는 시늉’도 안하더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일종의 오해였다. 그랬는데 내가 당해보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상무님은 예전에 내게 주재원 신청을 추천하였고, 새로운 포지션이나 직무를 대하는 적극적 태도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이해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해의 한 켠에는 나처럼 20년 차인 사람이 갑자기 조직과 직무 변경을 말한다면, 응원도 좋지만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조직장으로서 진지하게 인터뷰를 해주는 것이 더 맞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또 다른 아쉬움은 그래도 조직에서 역량과 성과를 인정 받고 있다는 자존심이 있었는데 아무 반문 없이 내보낸다는 것은, 나의 쓸모에 대한 간접적 대답일 수 있다. 게다가 걱정말라는 뜻이었겠지만, 후임으로 누가 와도 좋다는 말 또한 위로 보다는 내 역할이 그렇게 밖에 안보였나 싶은 허무함도 없지 않았다. 결국엔 나만의 착각이었나 싶었다. 


쓸모가 없거나 대안이 있다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 나처럼 애매한 위치에서 일하는 중간 매니징 영역의 사람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같은 위치에 있었던 선배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서 내려왔는지 지난 해 목격했기에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실천하는 것이 맞을 터였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당신 인생 책임져 줄 것 아니니까‘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섭섭한 건 지울 수 없었다.


한편으로 만약 그가 달콤한 사탕을 건내면서, 무엇이 문제냐, 다음에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 꼬셨다면 난 결정을 바꾸었을까? 그랬다면 정말 내가 바란 건 현 직무에 대한 매너리즘이나 새로운 직무를 찾기 위한 용기와 도전이 아니라 인정과 승진에 대한 욕망 뿐이었을 것이다. 아아 내 마음은 간사하고 처절하고 그래서 애써 독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복잡한 심경을 착착 접어서 마음 속 한 켠에 개어두었다. 


(다음에 또 이어집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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